35. 내 기분 맞춰주기 정말 피곤하다

너 오늘은 왜 기분이 안 좋은 거니? 아무 일도 없는데 말이야.

by 최서연



병원 진료실 밖에서 진료시간을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나는 나한테 물어보았다.


‘너 오늘은 왜 기분이 안 좋은 거니? 아무 일도 없는데 말이야.’


나는 내가 소화하지 못할 정도의 감정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그것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게 어디서 나온 건지, 괜히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쪼잔한 질투심? 열등감? 그 기분의 뿌리가 무엇이든, 그것이 조금 인정하기 창피하고 부끄러운 감정이더라도 제대로 마주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을 연습해왔고, 그렇게 하면 그게 결국은 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요즘 나쁜 일이 별로 없었다. 생활 반경도 넓지 않고 만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집과 일하는 곳 모두 좋았고, 다른 외부 상황에 영향을 받는 일도 별로 없었다. 조금은 평화롭고 무미건조한 생활일 수도 있었지만, 대게는 아침에 집 밖으로 나와 햇살을 맞을 때마다 ‘아 행복하고, 평화롭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우울했던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그 사람이 내 옆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만 해결되면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서 빨리 행복해지려고 했다. 우울한 나는 그 사람이 다시 찾아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건강하고 즐거운 상태의 나로 돌아가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많은 생각들을 지나고 나니 지금은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돌아오지 않을 것도 알고, 그리고 어쩌면 또 나를 망쳐놓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이 차라리 절대 안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는 우울해질 명확한 이유가 없었다.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일도 잘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받을 것 같은 관계는 다 정리했고, 엄마와도 잘 지내고,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더 이상 바라지도 않았고, 병원도 계속 다니고 있었다.


2 주에 한번, 30 분에서 40 분가량의 대화를 선생님과 나눌 때, 사실 이제는 병원 안 다녀도 되지 않나 싶을 만큼 별로 할 얘기가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따금씩 기분이 안 좋아졌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하진 않은데,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지루하고 의미 없는 기분이 들었다. 왜 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고,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왜 사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내가 오늘 아침에도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그냥 눈을 뜬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의미가 중요한가? 좋은 사람들과 쓸데없이 웃고 떠들면서 낭비하는 그 시간이 행복한 거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작고 소박한 의미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에는 또 다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진 건지, 기분이 안 좋아져서 의미가 없는 거 같이 느껴지는 건지.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나를 위해서 생각했다. ‘뭘 해야 조금 기분이 나아질까?’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을까? 평소에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볼까? 그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저장해 두었던 유튜브 영상을 볼까? 지금 갑자기 떠오르는 것, 갑자기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자!’ 보통은 그런 방법으로 살짝 침체된 기분이 나아졌다. 무엇을 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지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었고, 그렇게 나는 내 기분을 잘 관리해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우울한 것을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내가 애초부터 잘 못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 아니라 살다 보면 나를 스쳐 지나가기도 하는 ‘상태’ 일뿐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감기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온실에 키우는 화초를 위해 맞춰주는 실내 온도처럼, 내가 편한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잘 조절해 나가는 거라고. 추워졌다고 해서 내 탓도 아니고, 더워진 것 역시 내 탓이 아니다. 온실에서 살아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그 화초의 탓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나에게 적정한 온도가 아닌 것 같으면 약도 먹고 병원을 다니면서 상담도 하고, 왜 그런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생각도 해보고, 글로 정리해보기도 하면서 나에게 적정한 온도로 맞추면 된다. 그렇게 점점 나를 알아가고 그렇게 나에게 맞는 온도에서 건강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관리하는 법을 나는 좀 더 일찍, 제 대로, 배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진료실에 앉아서 바라본 창문으로 햇살이 비친 풍경은 너무 지친 모습이었다. 지친 기분이 들었다. 나무로 되어 있는 깔끔한 의자에, 큰 창문으로 항상 햇살이 잘 들어와서 따뜻하고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바라본 창문 밖에는 하나같이 뾰족하게 각진 회색 빛 건물들과 도로 위에 재미없게 기계처럼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보였고, 그날따라 하늘은 너무 멀고 막막해 보였다.


이런 기분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도 모르는데,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내 감정을 조심조심 잘 살펴주어야 한다. 그냥 갑자기 오늘은 피자가 먹고 싶으면 거기에 맞춰서 피자를 먹어줘야 하는 것이 피곤해졌다.


‘내가 피자 먹을 시간이 되고, 피자 먹을 돈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것도 아니면? 어디서 나오는 건지도 모르는 바람인데, 내가 일일이 눈치 보고, 비위를 맞춰가며 돈을 벌고, 생활을 유지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해줘야 하나? 대체 오늘은 갑자기 피자가 먹고 싶다는 기분은 대체 어디서부터, 무슨 이유로 나오는 건데?’



그런 기분조차 들지 않을 때, 그러니까 아무것도 나한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할 때에는 이유 없이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라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생기면 그런 거라도 하고 잠깐이나마 기분이 나아질 텐데.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먹고 싶지도 느껴지지도 않고 죽고 싶기만 했으니까.


유일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걸어 나갈 기운이라도 생겼던 것은 그 사람한테 전화를 해보기 위해서 밖에 없었다. 더 이상 전화할 수도 없을 때가 되어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도, 기운도, 의지도 없어서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제발. 그래서 뭐라도 느껴지면 그게 무엇이든 해볼 텐데.


그래서 상태가 조금 나아지고 얼마간은 나한테 찾아오는 감정들이 반가웠다. 커피가 먹고 싶어, 시원한 물에 얼음을 띄워서 먹고 싶어, 베이글이 먹고 싶어, 떡볶이가 먹고 싶어, 피자가 먹고 싶어, 친구와 얘기하고 싶어, 산책을 하고 싶어, 자전거를 타고 싶어, 등등.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생긴 것을 반가워하며 꼭 그렇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어디서 나온지도 모르는 감정을 맞춰주느라고 지쳐버린 날, 선생님은 나한테 애를 썼다고 했다. 떠오르는 감정들을, 찾아오는 감정들을 만족시켜주려고 애를 썼다고. 괜찮아지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고, 그냥 기다려도 조금씩 회복될 텐데, 애를 쓰다 보니 또 지친 것 같다고.


이제는 좋아하는 게 생기는 것이 짐처럼 느껴졌다. 좋아하는 사람이든 대상이든. 좋아하면 그만큼 노력하고 투자하고 내 마음처럼 되기를 바라는데 내 마음처럼 되는 일이 아니니까. 선생님은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결국은 나를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다.


나는 좋아하는 게 생긴다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만큼 아쉽고 속상하고 섭섭한 감정도 함께 오니까. 뭔가를 좋아하는 것은 두렵고, 그렇다고 나의 안온한 울타리 안에 콕 박혀서 변할 것 없는 일상을 사는 것도 의미가 없는 거 같고.


이제 더 이상 내 깊은 내면을 모르는 척하면서 그저 평화롭게만 살 수는 없는 순간이 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어떻게든 결정을 해야 했다. 선생님은 좋아하는 것이 생겼을 때,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그리고 그것이 깊어질 때, 내 모습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라고 하셨다. 왔다 갔다 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결국은 좋아질 거라고.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면 좋은 만큼 꼭 그만큼의 대가성 고통이 따라오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일도 그랬고, 친구도 그랬고, 사랑도 그랬다.


계속 평화롭고 싶은데, 평화로우면서도 조금은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뭔가를 좋아해서 기쁜 만큼 슬퍼지는 건 무섭고 싫다. 그렇다면 나는 변할 것 없는 삶을 나머지 시간 동안 살아가야 하는 건지. 내가 그저 우연히 탄생되어버린 나의 생명을 그저 부지해 나가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아닌 거 같은데.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에 나는, 나를 대면하고 싶지 않아서, 이제는 어떤 것에도 그렇게 대단한 애정과 욕심이 없고 흘러가는 대로 흐를 뿐이라며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 소위 쿨-한 사람이고 싶었지만 나는 원래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몰입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다 따라다니기도 하고,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온갖 책과 자료, 그걸로 성에 안차면 관련 학회의 논문까지 찾아보곤 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에 무덤덤하고, 좋지도, 관심이 가지도, 열정이 생기지도 않던 권태기 같은 시간을 지나 다시 좋아하는 것이 생길 것 같아져서 두려웠다. 나는 그 전처럼 솔직하게 좋아할 수 있을까? 거기에 따라오는 고통을 이번에는 감당할 수 있을까?




keyword
이전 13화34. 평안에 이르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