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보통의 날로 돌아왔다

인생은 평화와는 거리가 먼지 조금 평화로울라치면 돌을 던지고 난리다

by 최서연



진짜 내가 전 세계에서 제일 맘 편하고 행복한 것 같다고 생각하던, 조증에 가까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때, 다시금 현실의 문제가 슬금슬금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인간은 정말 간사한 존재인 것 같다. 이를테면 구직을 할 때는 취직만 하면 다 해결될 것 같고, 행복할 것 같았는데, 그 회사에 취직만 할 수 있으면 내 간이라도 꺼내놓을 것 같은데, 막상 취직하면 그게 아니다.


친구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한창 힘들어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친구를 조금 도와주었다. 자기소개서 쓰는 것도 도와주고, 면접 연습 상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망가진 이어폰을 가지고 다니기에 이어폰을 사주고, 밥도 사주고. 사실 돈 벌고 나면 그게 몇 푼 안 되는 건데, 수입이 없는 입장에서는 그런 게 얼마나 아쉽고 아까운지 알기 때문에.


친구가 취업을 하고 나서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내가 물어보았다.


“취직하면 뭔가 다 해결될 것 같았는데, 막상 일하고 보니까 별거 없지?”


“응.”


그리고 같이 웃었다. 나는 친구가 그걸 취업 준비할 때 깨닫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거 별거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든 흘러가서 자기 자리에 앉아 일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걸. 근데 자기가 아쉬울 때는 그런 대답 못하지. 나도 그걸 알면서 다시 그런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 또 죽을 것처럼 힘들어했으니까. 친구는 그런 나를 지켜보며 똑같이 맛있는 것을 사주고, 얘기를 들어주고, 시간을 함께 보내주었다.


어쨌든 나는 친구가 취업하기를 기다리고, 월급을 받는 시간들에 익숙해 지기를 기다려서 그 얘기를 꺼냈다. 나는 웬일인지 기다려서 그 대답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막상 해보니까 별거 아니네.’라는. 언제부터 그랬을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내가 한창 로스쿨을 입시를 준비했을 때, 이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아니면 남이 보기에 좋아 보여서 하고 싶어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가 해 준 말 때문인 것 같다.


“남이 보기에 좋아 보여서 하고 싶은 것도, 네가 하고 싶은 거야. 남이 보기에 좋아 보인다고 생각한 것도 네가 생각한 거고, 그래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네가 생각한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엄청 편해졌다.


‘그렇구나, 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다른 누구가 아니라 나니 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게 꼭 아주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하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남한테 훌륭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하고 싶은 것도 내가 하고 싶은 거고, 그게 뭐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그리고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건 빨리빨리 해보고 ‘아, 이거 뭐 별거 아니구나.’ 하고 지나가려고 산다고 생각한다고. 그 말도 참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해보고, 해봤는데 생각보다 그게 별거 아니더라도 무의미한 건 아니구나. 그리고 내가 조금 더 덧붙여서 해본 생각은 ‘얼른얼른해보고 싶은 거 해보고 별거 아니구나.’ 하고 아쉬움 없이 얼른얼른 또 다른 하고 싶은 것으로 다가가서, 경험해보고, 조금이라도 나에게 별거인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내 인생이 아닐까라고.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것 역시 별거 아닐 때도 있다. 책을 내도 그때뿐인 것 같고 뭐 별거 없이 또 인생은 흘러가니까. 아주아주 힘들 때는 글을 써도 하나도 안 괜찮을 때도 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는 못 버티니까 그냥 뭐라도 하고 싶어서 억지로 볼펜을 들고 종이를 짓이기듯이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끄적거릴 때도 있다. 아예 글을 보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지고 생각해보니 나는 글을 쓰는 게 좋다. 힘들 때도 그렇게 버틴 것 같다. 책을 만들어가는 게 좋다. 별 거 아니더라도 이거는 내가 하고 싶다. 그렇게 찾아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할 수 없는 상황이, 할 수 있는 상황보다 정말 많겠지만, 그러려고 또 먹고사는 일을 계속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 지루하고 지난한 여정이지만 그렇게 매일을 먹고살다 보면 문득, 하고 싶은 것이 작게라도 생기고, 그게 대단한 일이 아닐지라도 해볼 수 있도록 내 인생을 일구어 놓았다가 할 수 있는 거면 또 용기를 내서 해보고, 별거 아니면 말고, 또 다른 거 찾으면 되지. 얼마나 재밌겠어!?


다른 누가 한 일은 대단히 대단한 일 같겠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가 쓴 베스트셀러라도, 그 책 한 글자도 읽어보지도 않고 살다가 죽은 사람이 있을 거니까. 그 사람한테 그 작가는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일 테니까. 그 사람에게 그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책의 작품성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무의미한 것도 아닐 텐데. 그 사람은 또 나름의 인생에서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갔다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내 글도 대단히 유명해지거나 훌륭한 작품성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할지라도, 책을 만드는 동안 내가 즐거웠던 순간들이 있고,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는 어떤 순간에, 조금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고, 대단하지 않은 일이고,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있나 싶다. 어차피 100 년 후면 지금 같이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어떤 것들 다 그저 지나간 것이 되어버리고 말 텐데 뭐.


그렇게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도사 마냥 대부분의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고, 마음 편하게, 조금은 재미있게, 조금 더 운이 좋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것 같다고 들떠있다가도 현실의 아주 쪼잔한 문제에 부딪히면 잔잔했던 마음이 와장창 깨져버리는 인간일 뿐이었다, 나도. 얼마나 간사한가. 웃기지도 않는다.


나는 또 작은 문제에 부딪혔다. 인생은 평화와는 거리가 먼지 조금 평화로울라치면 돌을 던지고 난리다. 내 딴에는 동생과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귀찮아하는 일은 내가 더 하고, 동생은 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고.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한 친구가 된 것 같은 동생과 꽤나 사이좋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 우리 둘 다 무리를 해서 잘 지내려고 애썼던 것 같다. 동생은 내가 시체처럼 누워있었던 시간을 기다려주면서 지쳐갔을 것이고, 나는 생활과 일과 책임에 치어서 지쳐있는 동생의 날카로운 말들을 견디지 못했다. 누군가를 한없이 받아주기에는 그릇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 생각해보니 그릇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나는 한 사람은, 단 한 사람을 책임질 에너지만 가지고 태어나고, 그 에너지는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생은 언니인 나보다 더한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우울함에 파묻혀 죽어가던 언니를 위해서 그 에너지를 쪼개서 나눠주었고, 그러다 보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지쳤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내가 정상궤도로 올라와 평안을 찾았다는 생각에 들떠서 나 때문에 지쳐버린 동생의 날카로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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