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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내면 아이에게

넌 이런 것들을 누릴 자격이 없어

by 최서연


명상 7일 차


가이드를 들으며 명상 (마인드풀/자존감 회복을 도와주는 명상)






세상에 한 사람쯤은 그런 사람이 있다. 밥도 못 챙겨 먹고 다니던 시절에, 내 끼니를 걱정해줬던 사람. 이제는 다행히도 끼니를 걱정할 일은 없지만, 나는 아끼는 사람들에게 밥 먹었냐는 질문을 자주 한다.


급식비를 내지 못해서 매번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했다. 왜 안 먹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적당히 둘러대는 것도 피곤했고, 그냥 엎퍼져자나보다 해주길 바랬다. 제발 깨우지 말아줬으면 했다. 너무 피곤해서 밥 따위는 안 먹어도 되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했으니. 그러다 생일 선물로 급식 카드를 받은 적이 있다. 한 학년 높은 같은 동아리 언니였는데, 언니가 고3이었고, 나는 고2. 그때 언니는 용돈을 아껴다가 나에게 급식 카드를 생일 선물로 줬다. 급식카드는 매달 색깔이 바뀌었는데, 그해 10월의 급식카드는 멜론색이었다. 메로나의 딱 그 멜론색. 나는 그때 그 급식카드의 색깔을 아직도 기억한다.

언니는 졸업한 다음에도 내 생일 선물을 챙겨줬다. 점심은 어찌어찌 안 먹는 척하면 되는데, 고3은 야간 자율학습이 11시까지였다. 저녁 도시락이라도 챙겨 다녀야 했던 나에게 언니는 도시락 반찬으로 싸다닐만한 먹거리를 마트 봉투 한가득 사 가지고 왔다. 쌀쌀해지던 가을날의, 학교 앞이었다.




그런 언니에게 세월이 지나서 딸이 태어났다. 이름은 유주. 언니를 닮아서 그런지 너무 이쁜 아이이다. 활짝 웃는 모습이 참 예쁘고 내가 놀러 갈 때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는 듯 하지만 이내 나를 이모라는 말로 부르며 같이 놀자고 눈웃음을 짓는 아이. 언니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이 전해져서 그런지 유주의 앞날에는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혹여 유주에게 나쁜 일이 생길 거라면 내가 대신 다 맞고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사연의 유주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어린아이에게 참 관대하다. 아이들이 하는 조그마한 행동, 웃음, 걸음마, 처음 내뱉은 단어. 그런 것들을 얼마나 기특하게 생각하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사랑을 주는지 생각하면, 그 어린아이가 내가 맞나? 하는 이질감이 든다. 나도 아주 아주 어려서 기억을 못 하던 시절에는 그런 사랑을 받았을까? 그때의 어린아이를 내가 지금 만난다면 나는 뭐라고 말해주고 싶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나의 가장 어린 시절의 그 아이에게 나는 ‘넌 이런 것들을 누릴 자격이 없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는, 뛰어난 성취를 이루지 않고는 너는, 편안한 마음, 걱정 없는 하루, 그저 행복하고 만족하는 마음, 온전히 나이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 그런 것들을 누릴 자격이 없어. 이거보다 잘해야지. 남들보다 더 잘했어야지.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루었어야지. 미래를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계획을 세워놓았어야지. 마음 편히 쉴 시간이 어딨어. 왜 또 실수하니. 왜 또 포기하니. 그것밖에 안되니. 좀 더 완벽하게 했어야지. 네가 대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뭐야.



나는 나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야박해졌을까? 그 사랑받았던 어린아이와 지금의 나. 그 사이의 이질감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내가 아이가 아니던 순간부터 나는 세상으로부터, 선생님으로 부터, 부모님으로 부터, 더 잘하는 나, 더 뛰어난 나, 더 착하고 성실하고 말 잘 듣는 나에 대한 기대치를 학습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나 자신도 나에게, 더 나은 나, 더 발전한 나, 더 훌륭하고 노력하고 성공한 나를 기대하며 다그쳐왔다.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언제부터 그래도 괜찮은 걸까.




사람 안에는 모두 내면의 아이가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 아이는 영원히 안 크나요? 언제까지 돌봐주어야 하나요? 여리고, 다치기 쉽고, 나약해 보이는, 그 아이만 없다면 내가 좀 덜 상처 받고 덜 아플 것 같은데, 강인한 어른으로 키울 수는 없는 건가요?’



이 모든 뾰족한 말들을 그 아이가 들었다면, 그 아이는 뭐라고 대답할까. 지금 그 아이는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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