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수많은 방법 중 하나
근데 잘은커녕, 그저 하는 것도 안 되는 날이다
왠지 모르게 찾아온 짜증에게 차를 한잔 내어주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며칠째 그러지 못하고 있다. 왠지 마주하기가 힘들고 어렵다. 평소에 잘 보지도 않던 예능 프로를 틀어놓는 편이 훨씬 쉬운 일이라서, 마주하기보다는 다른데 정신을 팔고 있다.
사실 정신이 온전히 팔리지도 않는데 그런 척하고 있다. 마주하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다른데 정신을 팔고 있으면 나 좀 봐달라고 더 성화를 부릴 것도 알고 있는데. 그래도 참 마주하기가 힘들다.
금요일까지만 모르는 척할게. 주말이 되면 시간이 나니까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야. 네가 왜 찾아왔는지 마주 앉아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할 여유가 생길 거야.
주말에는 주말대로 할 일이 있고, 나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11월만 지나고 보자. 11월엔 공휴일이 없어서 좀 바쁘게 일해야 하는 달이거든.
11월이 지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벌써 연말이네, 일단 올해는 지나고 보자. 어떻게든 버티면 어찌 되든 버틸 순 있을 거야. 새해가 되고, 연휴가 찾아오면 새로운 마음으로 정말 너를 극진히 대접할 수가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미뤄진 감정들이 내 안에 얼마나 더 많이 쌓여 있는 걸까.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언젠가는 튀어나온다는 말이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다. 잊어버린 일에도 감정은 남아있다. 지금 튀어나와 버린 이 감정은 어디서부터 쌓여온 것일까. 지금의 이 짜증은 뿌다구니.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그 아래에는 어마 무시한 것들이(심지어 이 부분은 아무리 찾아봐도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감히 지칭하지도 못할 정도의 것일까.)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차마 마주 앉지 못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바쁜 금요일이 남아있다. 내일까지만 등 돌리고 있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내 짜증아. 일단 금요일은 지나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