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악몽과 허리 통증이 나를 무겁게 눌렀다. 정신은 깨어났는데 침대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다. 힘없이 누워있는데 “일어나 점심 먹자!” 아리아나가 암막커튼을 활짝 열고 들어와 캄캄한 방 안에서 나를 꺼내주었다. 방에서 나오니 역시나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다. 머리를 위로 시원하게 묶고, 아래층 키친으로 가 점심 장사를 준비하는 아리아나의 가족들과 본조르노! 인사를 하고 올라와 밀려있던 손빨래를 했다. 대야에 물을 받고 세제를 넣은 다음 그 안에서 손으로 꾹꾹 빨래를 누른다. 더러운 물이 빠지고 좋은 향기가 난다. 깨끗한 물을 다시 받아 깨끗이 빨래를 헹구어 내고 꽉 비틀어 짜내면 정원에 한줄로 만들어둔 길다란 빨랫줄에 빨래를 넌다. 뜨거운 햇빛에 바짝 마른 바닥위로 경쾌한 물소리가 뚝뚝. 이 크지 않은 행위 자체에서 받는 에너지와 환기는 생각보다 크고 놀랍다.
아리네 아버지와 삼촌은 이 아름다운 펜션을 2000년도부터 짓기 시작하셨다. 이탈리아 남부 바닷가 옆의 작은 마을 sant. agnello의 작은 골목에 한편에 형제 둘은 다른 일꾼들 없이 둘이서 천천히 20년 동안 이 아름다운 펜션을 지었다. 오로지 자신들만의 손으로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 올렸고 꽃과 식물들 나무를 가득 심었다. 평일에는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주말에 나와 둘이 이 펜션을 지으셨다고 한다. 아리아나의 어린 시절 추억들도 이곳에 많이 있다며 이야기해 주시는 아버지의 깊고 짙은 초록색 눈에서 그 세월과 이곳에 대한 큰 애정이 모두 전해졌다. 빌라 돈 카밀로는 아리 가족의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아름다운 작품. 다시 한번 천천히 이곳의 쨍한 꽃들과 건강한 나무들 그리고 건물을 이루고 있는 벽돌과 통 나무들로 이루어진 뼈대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만져보았다.
'slowly but surely' 2019년도 내가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 된 서울 서촌의 한 아름다운 공간의 브랜드 슬로건이 딱 떠올랐다. 4년이 지난 뒤 지구 반대편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나는 이 말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천천히 확실하게. 그 오랜 시간 동안의 아름다운 정성의 가치가 주는 큰 울림을 진정으로 보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