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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ins Dec 17. 2020

두 번째 베를린 이야기

불안한 베를린 공대생

2010년 초에 베를린공과대학교에서 진행한 대학 준비과정을 마치며 치른 독일어 자격증명 시험에서 통과한 뒤 그 어학 증명과 준비과정 수료증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수학능력시험 영문 증명서, 독일어 어학원 강의 이수시간 증명서 등을 가지고 베를린공과대학교 자동차공학 학사과정에 지원했다. 자동차 공학과는 베를린공과대학교의 학사과정 중에서도 신입생을 많이 뽑는 학과였지만 인기 있는 학과이기도 했기에 그만큼 지원자도 많았고 외국인 지원자는 독일 지원자들과 별개로 입학심사를 하지만 내 고등학교 졸업증명과 함께 제출한 나의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그 닥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입학 지원을 하고 나서도 과연 합격할 수 있을지 너무 불안했다. 한 학교만 지원하기에는 또 위험부담이 크다 생각해서 베를린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드레스덴이라는 도시에 있는 드레스덴 공과대학교에도 지원했다. 


독일에는 대학교 랭킹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많은 매체에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구분하거나 랭킹을 만들어 놓기도 했지만 모든 대학이 국가 공립이고 무엇보다 독일 사회 전반에서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지가 취업에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지 않기에 어떤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했는지는 독일에 남아 취업하고 일을 하고자 할 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한국에서 강남 8 학군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내내 한국 대학교 랭킹을 보는데 익숙하고 꼭 대학 입학을 위해 신경 쓴 대학 순위만 생각하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순위를 매기고 줄을 세우는 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니 학교의 순위가 무의미하고 어떤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독일 사회가 정말 신선했다.


베를린 공대와 드레스덴 공대를 지원하고 합격 결과를 받을 때까지 정말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만약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떡해야 하나 다시 6개월 동안 준비를 더 하고 그다음 학기에 입학을 해야 하나 그럼 학교를 다니지 않고 준비하는 기간 동안 내가 부모님께 받는 지원은 또 얼마나 부모님께 부담이 될까… 하는 생각들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모태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인데 지금까지 살면서 독일대학교 지원 결과를 기다리며 했던 기도만큼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매일 밤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독일에 대학교는 합격통지를 편지로 준다. 그리고 어느 날 제일 먼저 드레스덴 공과 대학으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때부터 점점 더 자신감이 떨어지고 베를린 공과 대학으로부터 불합격을 받으면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지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베를린 공과 대학교로부터도 서류봉투에 담긴 편지를 받았는데 우편함에서 이 편지를 발견하고 조금은 느낌이 이상했다. 작은 편지봉투에 한 장 짜리 편지였던 드레스덴 공대의 불합격 통지와 달리 편지 봉투가 매우 두툼했고 많은 서류가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얼른 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열었고 ‚Zulassung‘(입학허가)라고 쓰인 첫 번째 서류를 보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두툼한 편지 봉투 안에는 입학허가서 말고도 학교에 대한 정보, 학교 시설 이용안내, 학생증 발급 안내와 학비 관련 서류 등이 들어있었다. 입학 허가를 받고 다음날 부모님께 소식을 전할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눌한 독일어에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지만 그래도 독일 대학교에서 들을 수업들이 너무 기대가 되었고 빨리 대학공부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독일 대학교의 학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독일에 거의 모든 대학교는 국공립 학교로 학비가 없다. 내가 졸업한 베를린 공과대학의 경우에도 학비로 책정된 금액에는 학교시설 이용을 위해 내는 학생회비 90유로와 대중교통 학생 티켓 비용 180유로(이 비용을 지불하면 학생증에 작은 스티커를 부쳐주는데 이 스티커가 붙어있으면 그 학기 동안에는 베를린 시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만 포함이 되어있어서 매 학기 약 270유로 정도의 비용만 냈다. (2010년 기준이다...)


합격통지서를 받고 한 달 반 정도 뒤인 4월 중순에 드디어 베를린 공대에서 자동차공학 전공 1학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첫 학기는 대부분 기초 전공과목들을 들었는데 총 들은 5개의 과목 중 2과목이 수학이었고 2과목은 물리였고 나머지 1과목은 교양과목이었다. 그중 물리과목인 정역학 수업에는 내가 속한 자동차 공학과 외에도 기계공학 및 항공우주 공학 등 정말 많은 공학 전공 생들이 같이 참여했다. 그러기에 아주 큰 강의실이 필요했는데 독일에 있는 아니 전 세계 거의 모든 대학교와 마찬가지로 베를린공대에도 대강당 수준의 아주 커다란 강의실이 있었고 첫 학기 첫 번째 물리 수업을 이곳에서 처음 마주하는 신입생들 수백 명과 함께 들었다. 학교에서 가장 큰 강의실의 이름은 Audimax였는데 독일어로 강의실 ‚Hörsaal‘이라는 뜻과 비슷한 단어인 Auditorium과 최대를 뜻하는 maximum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이 아우디막스 ‚Audimax‘에는 총 1200 좌석이 있고 앞쪽에는 교수의 리모트 컨트롤을 통해 위아래로 움직이는 커다란 5개의 칠판이 있다. 이곳에서 강의를 듣는 일은 처음에는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수업을 듣기에는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얼마 지나지 않아 받을 수 있었다.. 그 커다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으면 옆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어렵지 않았고 그러다 보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또한 교수가 칠판에 무언가를 크게 쓰더라도 만약 이 강의실 뒤쪽에 앉게 되면 잘 보이지 않았고 마이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교수의 말도 잘 들리지 않을 때도 많았다. 사실 학업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마이크 소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의 부족한 독일어 실력 때문에 교수의 설명을 모두 알아듣는 건 거의 불가능했고 문제풀이가 아닌 이론을 설명하는 수업에서는 1시간 반 동안 이어지는 수업의 내용 중 내 느낌에 30프로도 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매일 내가 듣는 수업을 녹음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듣고 도서관에서 문제풀이를 반복하며 수업의 내용을 따라잡으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독일어를 읽고 들어서인지 힘이 없고 멍해질 때가 많았다. 그렇게 2010년 4월 여름학기부터 시작한 1학기는 수업의 내용은 기초적이었으나 나에게는 독일어로 듣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인 첫 학기였다. 베를린 공대 자동차 공학과 학사과정은 3년 6학기 총 180학점을 받으면 졸업할 수 있다. 그중 마지막 학기 15학점은 졸업논문 3학점은 필수 인턴 이수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학기와 두 번째 학기는 학과 기초 전공과 교양과목을 이수하는 것으로 되어있고 3학기부터 나의 전공분야인 자동차 공학 분야의 심화된 전공과목들을 듣게 되어있었다. 1학기에는 기초 전공 5개 과목을 들었고 한 과목당 6학점으로 모두 이수하면 30학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나에겐 무리였다. 수학 2과목 중 1과목 그리고 물리 2과목 중 1과목을 시험에서 떨어지면서 10월부터 시작되는 겨울학기에 그 과목을 재수강해야 되는 일이 벌어졌다. 겨울 학기가 시작하기 전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불안과 걱정에 휩싸였다. 기본 전공과목도 이수를 못하면 어쩌나, 이렇게 몇 개 과목씩을 매 학기 떨어진다면 내 졸업은 얼마나 미뤄지게 되는 걸까 하는 걱정들… 게다가 학교에서 어떤 독일 친구가 독일 대학교에서 학과 과정을 정해진 학기 안에 마치는 경우는 전체 입학생 중 10프로도 채 되지 않는다 는 말은 아… 많은 사람들이 다들 학업을 제때 마치지 못하고 몇 개 과목들을 조금씩 떨어지고 재수강을 하며 졸업이 늦어지는구나 하면서 나에게 위로가 되기보다 아… 나는 분명 제때 졸업하지 못하는 학생이 되겠구나 하며 내 불안한 미래를 확인하게 해 주었다. 베를린 공대에서의 유학은 그렇게 기대와 달리 많이 불안하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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