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치료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는 12월부터. 피부가 엄청 심해졌을 때는 12월 셋째 주쯤이었다.
그 와중에 연말이라며 나는 엄청 즐거워했는데 마음 한켠에는 피부 덕분에 위축되어 있었던 시간이었다.
절대로 보습제를 바르지 마세요. 화장도 안 하면 좋구요. 피부에 일절 바르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약을 9월부터 먹었는데 2달 동안은 얼굴에 화장을 하며 다녔다. 전혀 약효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음을 먹은 건 12월이었다.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니 아토피의 명현반응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울긋불긋한 피부 톤에 탈각되는 각질층이 보이니 신경이 안쓰일래야 안 쓰일 수가 없었다.
보습제나 스킨로션을 전혀 바르지 않기 때문에 운동 끝나구 나오면 탈락되는 각질층이 일어나는데 그걸 보고 '너 버짐 폈다'라며 장난으로 던진 말에 장난스러운 짜증은 냈지만 속으로는 한숨이 튀어나왔다.
'언제까지 이러구 살아야 할까'
어디가 정점 인지도 모른 채 약만 먹으며 하루하루 육안으로 보이는 괜찮은 구석을 찾아댄다.
내가 치료 기간 중 나의 상태가 정점을 찍었던 적이 었었다. 그럴 때는 나보다 더 심한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그 사람들은 회사도 그만두고 집에서 치료를 받으며 좋아진 케이스들이었다.
난 진물이나 피부가 두껍게 쌓일 정도로 심하진 않았지만 성공사례 속 받아들일 수 없는 케이스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될까 봐 마음에서는 무섭기도 했다.
이렇게 평생을 살면 어떻게라는 두려운 생각에 씩씩했던 마음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회사에서 나의 피부를 보고 사람들이 무슨 일 있냐며 물을 때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상무님은 내 피부를 보며 '기도원 같은 데 가야 하는 거 아냐?' 하며 장난스러운 말을 했지만 그 말이 며칠을 지나서도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는데 계속 듣다 보니 '대체 어쩌라는 거지?'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러다가 피부가 약 빨을 받아서 아토피가 한참 심할 때 그 상무님 옆에서 밥을 먹었는데 멀리 있을 때는 몰랐다가 밥 먹을 때 옆자리에 앉아 본 내 피부 상태로 상무님의 숨길 수 없는 0.1초 표정을 보게 되었다.
물론 무의식 중에 나온 표정이었겠지만 그 표정이 나에게 굉장히 크게 상처로(?) 다가왔다.
그 시기에 나는 피부로 인해서 집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아하고 있었다.
집에서 엄마가 '약간의 혐오를 줄 수 있으니 밥은 따로 먹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이 그 순간 떠올랐다.
아토피가 막 일어날 때쯤 엄마도 나에게 '더러운 병'이라며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런 엄마에게 맞받아치듯 '아토피의 70프로가 모계 유전일 확률이 높아. 자궁에서부터 시작된 유전적인 병이니깐 엄마도 더러워?'라며 말했는데 그럼에도 나의 피부만 보고 나에게 짜증을 내고 (물론 그것이 과한 애정) 화를 내는 게 나는 내심 상처 받았다. (엄마는 나름대로 예뻐야 할 나이에 이런 병이 생긴 것에 대해 속상한 마음이 잘못 표현되었다고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의 그런 표현들이 더 큰 상처로 다가오기도 했으니깐.)
회사와 집에서 어떤 표면적인 위로는 받았지만 스쳐 지나가는 말들이 나에게 쌓여갔다.
내가 피부가 좋았을 때는 별것도 아닌 말들일 텐데 괜스레 그 말들에 의미를 곱씹어보며 스스로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보면 '에? 거짓말? 상처 받았다고? 네가?'라며 놀라겠지만 나의 내면에 난 생채기들은 겉으로 보이는 씩씩함과는 달랐다.
회사에서 시무식을 했다.
일주일간 허리 약 먹는다고 아토피 약을 끊었다가 다시 시작할 시점이었다. 얼굴이 조금은 (내가 봤을 때) 나아졌다. 약을 중단하니 병이 차츰차츰 흐려졌다. 나은 게 아니라 숨는 것이었다.
시무식 하면서 밥을 먹는데 회사 여직원들과 마음이 맞는 상무님이랑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이어서 나를 보자마자 피부를 묻는데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한 여직원이 '피부 안 좋아지는 거 진짜 힘들죠. 저도 피부과 약 먹고 다 뒤집어져서 한동안 고생했어요'라는 말을 하는데 마음이 동화가 되었다.
그러면서 '제 피부 어때요?'라고 난 물었다.
다들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멀뚱하게 나를 쳐다봤다.
'아니요. 제 피부 보기 불편하지 않으세요? 저는 보시는 분들이 불편하다고 생각이 들어져서요.'라고 답했는데 상무님이 정색을 하면서 '무슨 그런 소리가 있냐. 내가 불편하다고 생각을 할게 아니라 네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생각이 드는데. 네가 불편할까 봐 그런다'라고 답했는데 순간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사실 나 같아도 아픈 사람이 그렇게 물어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야?' 하며 답해줬을 건데 몸의 병이 스스로의 생각까지 묶어서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위축된 채로 살고 있었다.
나 조차도 이런 위축된 마음을 떨쳐내고 싶었다. 내 피부가 이렇지만 어차피 나을 건데! 하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지내고 싶었다가도 자꾸 발목을 잡아대는 육안으로 보이는 아토피라는 병으로 인해서 마음이 괴롭기도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올 한 해를 따뜻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물론 여전히 아토피와 사투 중이고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다.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이토록 푸근하다는 건 처음 느낀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