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 건설은 서비스업인가?
“서비스업이요?”
국세청 산업분류표에서 내 직업을 확인했을 때 든 첫 생각이었다. 나는 평생 건설업에 몸담아 왔다. 건물을 짓고, 완성하고, 인수인계하는 일. 그런데 공식 분류상 나는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종사자였다. 건설이 아닌 서비스라니… 뭔가 어색했고, 동시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비스업’의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다.
국세청에서 발행하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르면, 건설업은 그냥 건설업이다. 제조업이나 부동산업이 아니다. 필자가 하고 있는 건설회사 관리자의 일은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중 ‘건축기술, 엔지니어링 및 기타 과학기술서비스업’에 속한다.
그동안 나의 일이 서비스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다. 과학기술서비스라… 여전히 낯설지만, 그 말이 주는 무게는 점점 실감나고 있다.
기사 시절 김포의 한 아파트 현장에서 AS 업무를 잠깐 맡았던 이후, 십수 년 만에 다시 입주자를 맞이하는 지금… AS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존경하게 되었다.
건물은 완공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부터 비로소 ‘고객’과의 관계가 시작된다. 입주민의 기준에서 ‘바로 처리’란, 전화 한 통이면 당일 처리이고, 한 번 말하면 완벽히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부품 수급, 원인 조사, 하도급 일정, 안전 규정까지 맞물리면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제주도의 한 고급 숙박시설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준공 한 달 후, 제법 쌀쌀해진 10월이었다. “보일러가 고장 난 것 같다, 온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았다. 마침 보일러 컨트롤러 담당자와 함께 있어 곧바로 현장으로 올라갔다.
온도를 설정하고, 한 시간 뒤 변화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말씀드린 뒤 나오려는데, 사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보라고 하면 지켜보고 있어야지, 어딜 나가요?”
난방은 설정 직후 바로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고, 문을 열어 청소 중이라면 더디게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직원은 돌려보내고, 나 혼자 그 집 거실에 앉아 보일러 컨트롤러를 지켜보며 사모님의 딸과 한 시간 정도 놀아주었다.
그 순간, 나는 기술자이자 집 지킴이, 그리고 아이 돌보미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사모님은 집 안 거의 모든 마감—문제가 없는 부분까지—을 하자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보일러를 켜고 끄는 일조차 우리가 대신해야 한다고 했다.
전화는 하루 스무 번 넘게 울렸고, 저녁 10시 이후에도 예외는 없었다. 부하직원은 “이분 때문에 그만두고 싶다”고 했고, 나조차 감당이 버거워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은 적도 있었다.
AS 업무는 이렇게 사람에 따라 ‘없는 하자’가 하자가 되고, 사용자가 직접 해야 할 일까지 ‘서비스’로 변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여름 한낮, 땀에 젖은 작업복을 본 입주민이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며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라고 말해줄 때가 있다. 품질이 조금 부족해도 묵묵히 지내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이 일이 무너져 버리지 않는 것 같다.
현장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지금, 나는 종종 남겨질 AS 직원들을 생각한다. 진상 민원인들보다, 불편을 겪으면서도 말없이 견디는 입주민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 더 세심하게 시공하고, 더 꼼꼼히 품질을 챙기려 한다. 누군가의 하루를 불필요한 불만으로 채우지 않도록, 누군가의 밤이 불필요한 전화로 깨지지 않도록 말이다.
‘서비스업’이라는 이름이 비록 낯설지만, 결국 그것이 내가 짓는 건물의 진짜 완공일을 결정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서비스업은 끝이 없다. 다음 민원이 들어오기 전까지가 잠깐의 휴식일 뿐이다. 건물은 언젠가 노후되고, 사람의 기대치는 계속 높아진다.
건설현장 관리자의 하루는 그래서 어쩌면 완공일이 아닌 ‘첫 민원’으로부터 시작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끝은, 아마도 내가 이 일을 그만두는 날까지 오지 않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