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rtensia Sep 24. 2019

SLU 푸드트럭: 아마존의 점심식사

파니니 트럭의 치폴레 치킨

뇌과학자로 잠시 살았을 때 일이다. 걸어서 20분 걸리는 일리노이의 벡맨 연구소(Beckman Institute)로 주말 없이 출퇴근하곤 했다. 별을 지고 나가 별을 이고 돌아오는 고달픈 나날, 몇 안 되는 짧은 낙이 출근길 모퉁이에 서 있던 "Cracked the egg came first" 란 이름의, 동네 유일의 아침식사 푸드트럭이었다. 


거기서 파는 "모닝 벤더"라는 이름의 가장 기본적인 아침식사 샌드위치가 특히 좋았다. 체다 치즈에 해시 브라운, 크림치즈, 그리고 기름에 넉넉히 지진 계란 후라이가 들어 있는 크고 따끈한 은박 덩어리를 받아 쥐는 순간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시간은 흘러, 이제 시애틀의 사우스 레이크 유니온에서 길가에 늘어선 푸드트럭 여러 대와, 그 옆에 푸른 목걸이를 걸고 줄지어 선 회사원들을 본다. 포틀랜드의 전설적인 푸드 카트에 비하면야 작은 규모라고는 하지만 주중 점심시간엔 적어도 전 블록을 통틀어 열댓 개 가까이 되는 푸드트럭을 찾을 수 있다. 공짜 점심 같은 건 제공하지 않는다는 아마존의 정책 덕분에, 열한 시 무렵부터 (눈물을 머금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아마존 직원들이 이 작은 구역의 요식업계를 먹여 살린다.


파란 풍선 하나하나가 푸드트럭의 위치를 나타낸다. 벨뷰와 시애틀 다운타운에 몰려 있는 게 보인다. 출처는 https://www.seattlefoodtruck.com.

푸드트럭의 경우, 판매자 입장에서는 지대를 내지 않을뿐더러 기동성이 좋아 내키는 대로 상권을 옮겨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통적인 브릭 앤 모르타르 (brick-and-mortar) 와는 다르게 소비자가 음식을 구매할 수 있는 시간대와 위치를 파악하기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게 시애틀 푸드트럭 웹사이트로서, 지도와 더불어 시애틀 전역에 소재한 푸드트럭의 위치 및 출몰하는 시간대, 소개글 및 메뉴, 카테고리, 심지어 케이터링 신청 방법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었다. 


이 웹사이트 하나로, 조지타운이든 에버렛이든 혹은 비 오는 월요일이든 퇴근길이든, 맘에 드는 푸드트럭을 기억하고 찾아가 입맛에 맞는 음식을 사 먹거나 케이터링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역으로 이 웹사이트가 없다고 가정할 경우 주요 출몰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익명의 대다수 소비자와 푸드트럭을 자연스럽고 손쉽게 이어 줄 방법은 전무하다.     


푸드트럭은, 정보 허브의 유무가 어떻게 가상의 (보다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상권을 가능케 혹은 불가능케 하는지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구나 싶다. 


물론 (위 지도에서 휑하기 그지없는 레드먼드를 보고 있노라면) 기존에 잘 확립된 상권에 기대는 게 가장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이겠지만, 모든 푸드트럭이 목 좋은 곳을 확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애틀에서 소규모 페스티벌이 열릴 때마다 여러 푸드트럭이 몰려들어 자체 브랜드를 과시하긴 하지만, 푸드트럭 관련 정보에 지속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개개 브랜드 역시 기억되기 어려울 것이다. 언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는 상황 아닌가.   

 

그리고 여기, 홈페이지에 낚인 소비자 하나가 그때 그 옛날의 아침식사 샌드위치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어제까지는 관심도 없던 푸드트럭을 열심히 검색하기 시작한다. 사우스 레이크 유니온이 푸드트럭의 주요 집결지라면 그 퀄리티는 어떠할 것인가? 


가장 맛있는 곳은 어디인가! 


염불은 가고 젯밥의 시간이 왔다. 푸드트럭 홈페이지에서 리뷰와 평점을 고려해 추린 트럭은 총 네 곳이다: 파니니 트럭, 마초 버거, 와이즈가이, 그리고 서니 업. 각각 파니니, 버거, 미트볼 샌드위치, 아침식사 샌드위치가 주 메뉴다. 특히 파니니 트럭과 마초 버거는 모든 카테고리를 통틀어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리뷰와 5점 만점의 평점을 자랑하는데, 이 둘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온단다. 그럼 당연히 가서 먹어봐야지. 특히 마초 버거는 지난봄에 옐프에서 발표한 시애틀 최고의 버거 15선에 1위를 올렸던 적이 있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파니니 트럭의 전면. 수프, 샐러드, 파니니가 기본 메뉴다.

사실 버거에 비하면 파니니를 그렇게 즐겨 먹진 않아서, 홈페이지 1위가 아니었다면 아마 평소 하듯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지 모른다. 냉육이 든 샌드위치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녹은 치즈 판타지도 없는 편이라 나머지 세 메뉴에 비하면 선호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일단 따뜻한 메뉴로 보이는 치폴레 치킨을 주문해 보았다. 


  

체다 치즈와 구운 로마 토마토 (백 배 확대한 산수유 열매처럼 생긴 요리용 토마토로, 그냥 먹으면 싱겁고 구워야 맛있다), 치폴레 마요에 섞은 닭고기가 바싹하게 지진 사워도우에 끼어 있다. 


으음, 맛은 있다. 밸런스가 좋다. 빵은 바싹하되 지나치게 기름지지 않고, 치폴레 양념은 매콤하되 짜지 않고, 토마토는 부스러지지 않을 정도로 잘 익었고, 치즈는 넉넉하되 느끼하지 않구나.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결과물이다. 


아쉽게도 파니니의 맛에 조예가 깊지 않아 더 구체적으로 평할 수는 없지만, 자주 식사메뉴로 점찍는 사람이거나 평소 샌드위치 광인 아마존 직원이라면 한번 도전해 보길 권한다. 위치는 Boren & Harrison. ...사실 마초 버거를 찾으러 Boren & Thomas까지 내려갔다가 실패한 건 안 비밀. 개인적으로는 버거에 더 마음이 가서, 한때 옐프 1위부터 10위를 찍는 시애틀 내 버거집을 열심히 찾아다니곤 했으니 좀 더 주관적인 비교가 가능하겠다. 수요일에 또 온다고 하니 그때 다시 정시에 맞춰 가서 시전해 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끝내주는 저녁식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