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 내일이 기다려지는 설렘의 일상으로
문제를 풀고 나면 오답노트를 정리하고,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한 매뉴얼을 작성하듯이, 내게 나타난 무기력 증상과 대처 방법, 직접 해보고 도움이 된 여러 가지 행동들을 기록했다. 쓰면 쓸수록, 무기력 해소에 효과가 있었던 방법들이 계속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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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향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 순간 나와 그 대상만이 존재하는 '온전한 몰입'의 경험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사진기를 들고 피사체에 몰두하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무기력한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열정은 발휘하게 된다. 이 작은 불씨가 무기력 해소의 시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yk2gcqfRaY&t=95s (1분 35초~2분 27초)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동석(이병헌)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선아(신민아)에게 카메라로 자기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한다. 선아는 카메라를 켜고 무심코 사진을 찍어본다. 사진을 찍고 있는 선아의 눈빛에서 어느새 활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없이 침울하고 무기력했던 선아였는데, 사진을 찍고 있을 때만큼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에 심취하는 것도 특히 큰 활력소이다. 특히 10~20년 전에 즐기던 것들을 오랜만에 다시 감상해보면 어찌나 반갑던지. 요즘 라디오를 자주 듣는데,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20년 전 음악방송 차트 순위에 올랐던 추억의 노래들을 다시 틀어주는 코너가 있다. 잊고 지내던 애청곡들을 문득 다시 들을 때의 희열이 생각보다 크다. 사람들이 가끔은 몇십 년 전의 것을 다시 찾고 되돌아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묵혀둔 생각이나 감정을 언어로 풀어내는 것만큼 개운하고 후련한 일이 또 있을까. 평소에도 생각이 워낙 많은 편이다. 너무 많은 생각이 내 안에 계속 쌓이기만 하고 배출을 못해서, 마치 음식물이 소화가 안되듯 머리와 마음속이 더부룩한 느낌이었다. 언어의 형태를 가지고, 내 안의 생각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머릿속과 마음속에 틈이 생긴다. 내부 저장소의 파일들을 외장하드로 옮겨서 내부 저장소에 여유공간을 만드는 것 같다.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한 답변을 하며 고민과 문제의 실마리를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라이프코칭'을 처음으로 받아보았다.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뭔가요?'
'몸과 마음의 평온과 여유요.'
'그렇다면 그걸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까요?'
'음...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랑, 마음을 터놓고 진솔하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 이런 말이 입에서 나올 만큼, 나는 생각보다 소통을 좋아하고 소통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머릿속의 생각이 정리된다. 걱정이나 고민을 말로 풀어내다 보면 좀 더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몇 년 만에 본 친구와 근황 토크를 하고, 요즘 푹 빠져있는 것,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실컷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와 이렇게 진솔하게 아무런 벽 없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이 시간 동안 내 눈빛과 표정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운동을 하고 났을 때처럼 마음속이 가볍고 개운하고 상쾌해졌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있으면 얼굴에 생기가 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맞는 말이다. 온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 비전과 목표를 말하다 보면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새롭게 뭔가를 배우거나 타인의 생각과 관점을 접하는 것도 일상의 중요한 활력소이다. 강연 듣기, 교육이나 워크숍 참여가 바로 이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접하며 영감을 얻고 동기부여도 된다.
비싼 돈 주지 않고도, 유익한 걸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다양하다. 조금만 더 주위를 둘러보면 아래 첨부하는 링크들처럼, 좋은 무료 강연이나 모임을 이것저것 찾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각종 클래스나 프로그램 홍보도 자주 뜬다. 요즘은 또 유튜브에도 좋은 강연이 많아졌다.
무기력하고 불안하고 조급했던 까닭은 성장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흥미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나의 경험치가 한 단계 상승함을 느낀다.
예전에 끄적여둔 다이어리나 노트의 메모, 뭔가를 만들고 이룬 것, 추억을 간직한 앨범 등 나름의 추억이 누구나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삶의 어떤 시점에 다시 꺼내어보면 큰 에너지로 발휘되기도 한다.
'컨셉진'에서 기획한 프로그램 '해피 라이프 캠프' BAND에 미션 수행하며 올렸던 글을 백업하고 정리했다. 덕분에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를 알 수 있었다. 필기했던 작은 노트들도 들여다보았다. 해피 라이프 캠프에 참여하던 이때가 마침 또 제주도에서 지내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생각난 김에 제주도에서 쓰던 노트들도 함께 펼쳤다. 거기에는 과거의 내가 남겨둔 수많은 영감과 통찰과 아이디어와 가치들이 적혀있었다. 그걸 잠깐 읽어보기만 해도, 그때의 나의 생기와 열정이 느껴졌다. 덕분에 다시 활력이 샘솟으려 한다.
어떤 날은, 이전 달 다이어리 노트들을 읽어보다가, 재밌을 것 같은 아이디어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니, 떠올랐다 못해 끓어올랐다. 제대로 탄력 받아서, 새벽 늦게까지 생각을 펼쳐보고 구상을 한 적이 있다. 새벽에 이렇게 문득 탄력 받아서 뭔가를 하다 보면 부담이 없다. '본격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즉시 완성해야 한다거나, 곧바로 완벽하게 막힘 없이 술술 진행되어야 한다는 괜한 압박감이 없다. '밤이니까 그냥 슬슬 풀어놓고 끄적여놓기만 하고 자야지.'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틀이 대략적으로 잡히기도 한다. 뭘 하든 이렇게 '새벽의 부담 없는 마음'으로 다가가야겠다는 깨달음까지 얻는다.
사람은 기다려지는 것이 생기면 활기가 더해진다. 누군가와의 만남 약속, 여행, 공연, 심지어 택배까지. 기다리는 뭔가가 있는 건 굉장히 설레는 일이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알게 하는 지표 중 하나는, 내일이 기다려지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일 아침이 되면 얼른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싶을 것 같고, 밥은 또 뭘 해 먹을까 하며 설렌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