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혹시요.”
“응?”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걷는데 문득, 은서가 입을 뗐다. 눈을 마주치자, 은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담에게 물었다.
“언니는 어쩌다가 이곳에서 책방을 운영하게 된 거예요?”
“응?”
“그냥, 지내다 보니까 조금 궁금해졌어요. 이 책방, 솔직히 말하면 이미 언니보다도 먼저 여기에 있었던 것 같았거든요.”
“아.”
듣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떻게 보면, 이담으로서도 그리 예상치 못할 질문은 아니었다. 책뿐만이 아니라 나무 벽면의 냄새도 수없는 세월을 타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진하게 날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오히려 젊은 주인이 이 늙은 책방을 운영한다니, 다른 사람의 눈에서는 얼핏 의아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이담은 저도 모르게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맞아. 여긴 원래 우리 아빠가 운영하는 책방이었어.”
“아, 물려받은 거였구나. 아무래도 아버님이 나이가 많으시면 힘드셨을 테니까요.”
“아니.”
이담의 시선이 멀리 닿았다. 바닷가 쪽으로 짙은 남색과 자주색의 하늘이 짙어지고 있었다.
“우리 아빠는… 아마 할아버지가 되셨어도 여길 놓으려 하지 않으셨을 거야.”
“네?”
은서가 되묻자, 이담은 잠시 숨을 고르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우리 아빠, 돌아가셨어. 마지막 부탁으로 내게 책방을 맡아달라 하셨고.”
“아….”
짧은 탄식처럼 은서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뒤로, 서울에서 내려오기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 듣는 이담의 말들에 은서의 눈빛엔 서서히 집중이 어렸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지내는 건 따분할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해. 도시에서의 생활은 내게 단 한 번도 상냥하지 않았거든. 무언가를 쥐어도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는데… 여긴 달라. 느려도 되고, 잘 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나로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이야.”
“아….”
은서는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이담은 잔잔한 숨결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책방은 우리 아빠가 살아온 삶의 유일한 흔적이야. 내가 이곳을 지키지 않으면, 아빠의 흔적도 사라질 거야. 그렇게 되게 하고 싶지 않았어. 아빠는… 내게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부러워요.” 은서가 낮게 말했다.
“나도… 그런 가족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은서. 네게도 가족은 생길 수 있어.”
“하지만, 어떻게요?”
사뭇 가라앉은 말끝을 들으며, 이담은 자신이 같은 물가에 서 있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이담이 한동안 시선을 허공에 두다가, 미소를 흘렸다.
“네가 내 과거를 닮아서 그래.”
“네?”
은서의 눈이 잠시 커졌다. 바닷가의 바람이 불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나도야, 은서 너처럼, 보육원에서 자랐었어.”
그 한마디에, 은서의 걸음이 멈췄다.
“응. 아빠와 나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어.”
“언니도… 입양되셨던 거예요?”
은서의 어투엔 놀라움과 낯선 평온이 함께 묻어 있었다. 그 순간, 이담의 마음속 문 하나가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그 너머로, 오래전의 여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2000년 5월. 햇볕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작은 보육원 앞으로 파란색 봉고 트럭이 다가와 이내 속도를 줄이며 멈춰 섰다. 이미 이 장소가 익숙한 듯, 차에서 내린 30대 중반의 남성은 두 손 가득히 책 꾸러미를 들고서 안으로 분주하게 발걸음을 들였다.
“녀석들, 잘 지내고 있었겠지?”
“책 아저씨다!”
“와, 아저씨 오셨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보육원의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보육원 아이들 한명 한명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고, 늘 찾아올 때마다 인자하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정우 씨,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정우 씨만 오시면 애들이 며칠 전부터 들떠요.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매번 좋은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고요.”
“아이고, 아닙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기회를 주시니, 제가 더 마음이 기쁩니다.”
이마에 성실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남성은 보육원 원장의 감사에 쑥스러우면서도 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비어있던 서가에 새로운 책들이 들어서니, 곳곳에 있던 아이들이 한데 모여 기다렸다는 듯 책을 하나둘씩 짚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서정우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노을처럼 번졌다.
“그럼, 또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책을 모두 옮겨놓은 뒤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투박한 손에 문득 연약한 촉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자, 이제 막 다섯 살 남짓 돼 보이는 여아가 서정우의 손가락 마디를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원장이 서정우의 표정 속 의미를 알아차린 듯이 말했다.
“아, 저번에 다녀가시고 나서 며칠 뒤에 우리 보육원으로 온 아이예요. 이제 막 다섯 살 됐고요.”
어쩐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원장의 말에, 서정우는 자상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천사가 또 한 명 늘었군요.”
그러면서 서정우는 무릎을 꿇어,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이고, 귀여워라. 그래, 아저씨한테 하고 싶은 말 있니?”
그러자, 여아는 자신이 들고 온 동화책을 그에게로 불쑥 내밀며 대답했다.
“동화책….”
“이거, 아저씨가 읽어줬으면 좋겠어?”
“…응.”
아이가 올망졸망한 눈으로 서정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서정우는 옆에 있던 원장에게 물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줘도 될까요?”
“그럼요. 저희는 오히려 감사드릴 따름이죠.”
그렇게 말하며 원장의 손길이 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특히 이담이는 동화책을 정말 좋아해요.”
그때, 서정우는 아이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았다.
“이담이구나, 그래, 아저씨가 동화책 읽어주마.”
서정우는 이내 한켠에 자리를 마련해, 아이를 위해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서정우의 옆에서, 아이는 아무 말 없이, 하지만 편안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마지막 장을 읽고 동화책을 덮었을 때. 아이는 서정우의 무릎 위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그래, 아저씨 또 올게.”
“아저씨, 안녕!”
“아저씨, 조심해서 가세요!”
트럭에 올라, 서정우는 자신을 마중 나와준 보육원의 교사들과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직전, 그의 시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이 다시금 보였다. 원장의 품에 안겨있던 졸린 눈이 자신을 마주하자, 고사리 같은 손을 아주 느리게 흔들어 주었다. 어쩐지 그 장면이, 서정우의 머릿속에 오랜 잔상으로 남았다. 이후, 서정우의 한 달은 평소보다 천천히 흘러간 듯했다.
건물에 들어서자, 복도에서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문을 여니, 역시 아이들이 그를 보자마자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 서정우는 불현듯 신기했다. 그 많은 얼굴들 속에서, 아이의 얼굴을 가장 먼저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걱정을 품은 적이 없던 마음이 왜인지 모르게 놓였다. 아이는 맨 뒤에서 쭈뼛대며 서 있었지만, 맨 처음 자신을 잡아주었던 그 손만은 낯설지 않게 자신에게로 활짝 펼쳐져 있었다. 서정우는 그 손을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담이, 잘 지냈어?”
아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자리를 떠나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이윽고 다른 동화책을 들고 와 그에게로 내밀었다. 서정우는 그 이유를 단번에 알았고, 또 한 번, 아이의 옆에서 책을 읽어주었다. 그날, 서정우는 평소보다 좀 더 오래 보육원에 머물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땐, 생각했다. 동화책을 좀 더 많이 준비해 가면 좋을 것 같다고.
“날씨가 부쩍 더워졌어요. 좀만 움직여도 이젠 땀이 안 멈추는 게… 아이들이 지칠까 봐, 걱정이네요.”
“원장님과 선생님들께서 아이들 더 많이 신경 써 주실 거라 믿습니다.”
여름의 한가운데였던 7월, 서정우는 아이들 몫의 아이스크림을 가득 챙겨 보육원을 찾았다. 서정우는 책 말고도 이따금 아이들이 좋아할 간식을 챙겨가곤 했다. 한데 그때, 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에 서정우는 당황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아이 하나가 독감에 걸려서….”
“독감이요? 누굽니까?”
원장이 말했다.
“이담이요. 며칠 동안 많이 앓았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졌어요.”
서정우는 이례적으로 원장의 말을 끊었다.
“이담이… 어디 있습니까?”
잠시 후, 원장의 안내를 따라 서정우는 전담 교사와 함께 쉬고 있는 이담의 방을 찾아왔다.
“이담아.”
그 목소리가 귀에 익게 된 듯, 카펫이 깔린 바닥에 앉아 인형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놀란 듯 입을 다물고 서정우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또 왔어?”
“그래, 또 왔지.”
서정우는 아이의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였다. 볼에 묻는 햇살과 손에 들린 토끼 인형, 조금 떨리는 눈빛.
“이담이는 요즘 잘 지내고 있니?”
“응, 책 많이 읽었어.”
“기특하네, 이담이. 많이 아팠다고 하는데 이젠 괜찮아?”
“아팠는데, 이제 덜 아파.”
앳된 가운데 기운이 덜한 음성, 그 한마디에 서정우는 미소가 지어지면서, 마음이 먹먹하더랬다.
“이담이, 얼른 나으면, 아저씨가 이담이 좋아하는 동화책 더 많이 갖고 올게, 아저씨가 또 읽어줄게.”
“응….”
거기서 이담은 새끼손가락을 서정우에게 내밀었다. 서정우는 놀라다가도, 이내 아주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손을 걸어 약속해 주었다.
보육원에서 나와 돌아가기 전, 서정우는 원장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보육원에서도 이담이는… 특히 아픈 손가락이에요. 너무 어린 나이에 이곳에 오기도 했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유독 이담이에게는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고요.”
그 말을 듣고, 서정우는 조금 침묵했다.
“모르겠네요.” 그러다 얼마 뒤,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참… 마음에 남네요.”
며칠 뒤, 바닷가 마을의 오후는 고요했다.
헌책방 ‘반딧불이’에서, 서정우는 여느 때처럼 책을 정리하다가, 문득 손을 멈추었다.
책상 위엔, 지난주에 보육원에 전해주지 못한 동화책 한 권이 남아있었다. 마지막에 미처 빠트린 모양이었다. 그 표지를 바라보다가, 서정우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담이….”
조용히 흘러나온 이름이었다. 처음엔 그저 자신이 알아야 할 이름 중의 하나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마음 한켠에 계속 아이의 이름이 머무르고 있었다.
책방의 벽시계가 오후 다섯 시를 알렸다. 바람이 불자 문고리가 살짝 흔들렸고, 종소리가 울렸다. 서정우는 조금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세상엔 수많은 아이들이 있지만, 어쩐지 그 아이만은 혼자 남겨질 것 같은 생각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아이가 내밀었던 손길의 온기가, 지금도 서정우의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는, 아이가 좋아할 것만 같은 동화책의 표지를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었다.
“다음 달까지 기다리긴, 너무 길겠구나.”
서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트럭 키를 손에 쥔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