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주

단편 소설

by 전석표

”천문학자가 되면! 나중에 별도 발견하고 그러겠다! 와.”


입까지 앙 하고 벌리며 즐거워하는 소녀에게 소년은 하늘을 본 채 ‘그렇겠지’라고 덤덤하게만 대답했다. 그러자 소녀는 옆에서 헤헤 웃어 보이며 소년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약에 네가 처음으로 소행성을 발견하게 된다면, 어떤 이름을 붙여줄 거야?”

“야, 찾는 게 당연한 거처럼 얘기하지 말아주라.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거니까.”

“말도 못 해? 아무튼 대답해 봐! B612 같은 예쁜 이름 지을 수 있나?”


소년은 마지못해 그 애의 물음을 받아주기로 하면서 잠시 고민해 보았다. 이게 과연 영양가 있는 질문인가의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잠깐 정도야 나쁘지 않으리라.

몇 분에 걸쳐 생각을 정리한 소년은 나지막이 말했고, 그 애는 즉시 인상을 구기며 고작 그 정도냐는 듯 소년의 센스를 나무랐다. 소년의 얼굴이 금방 빨갛게 달아올랐다.


“…제너럴 스타노바 레반도프스키 어떤 거 같아?”

“우욱… 구역질 나는 작명이네. 그냥 못 들은 걸로 할게.”


혀를 끌끌 차며 고개까지 내젓는 모습에 약이 오른 소년은 소녀에게 ‘그럼 네가 지어 봐!’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 애는, 소년의 얼굴 앞에서 동그란 눈을 반짝이면서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단숨에 문장을 내놓았다.


“소우주, 소우주라고 지어주라.”

“소우주?”


소년은 눈을 가볍게 치키며 되물었다. 행동의 이유는 즉시 소년의 입 밖으로 나왔다.


“네 이름으로 지어달라고?”


소우주는 눈앞에 있는 소녀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우주에 관심이 많던 소년이 처음으로 소녀의 이름을 들었을 때, 매우 놀라기도 했었다. 그런 자신의 이름을 따서 별에 붙여달라는 말에 소년은 의아하다는 듯 ‘내가 왜?’라고 소녀에게 물었고, 그때 소녀는 조금 쑥스러운 듯 어색하게 입가를 씰룩이더니,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이렇게 말했다.


“네가 찾아낸 소행성에 내 이름이 붙는다면, 그 순간에 넌 나를 한 번 더 떠올릴 테니까.”


예상치 못한 진지한 대답에 소년은 ‘뭐, 뭐냐 그게! 내 미래의 예쁜 부인에게 실례된다!’라고 얼버무리듯 대답했지만, 속에서는 심장 고동이 무엇보다 시끄러워졌다. 그런 감정을 숨기기 위해 표정 관리를 하는 소년을 바라보면서 소녀는 ‘거기까진 내가 상관할 일 아니지!’라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즐겁게 웃었다.


그날 소녀의 병문안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소년은 좀처럼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길고 검은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동그란 눈에 앳된 인상의 예쁜 소녀가 자신에게 건넨 말이 자꾸만 맴돌아 가슴을 술렁이게 했으니까,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애써 받아들이지 못한 소년은 그날 시간이 새벽에 닿을 때까지도 끙끙대며 뒤척이다가, 이윽고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방 창문을 열었다.


즉시 펼쳐지는 밤하늘, 은하가 자리한 우주를 올려다보며 사내는 그 순간 혼자서만 들을 수 있을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날이 소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되었다. 다음날, 소우주의 심장은 멈추었다.


소우주에겐 희소병이 있었다.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법을 찾지 못한 무서운 병. 하지만 그러면서도 소녀는 약한 모습 없이 즐겁게 웃었다. 그래서 주변 아이들 중엔 소우주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소우주는 소년만 보면 들들 볶고 못살게 굴었는데, 소년은 어찌할 방법 없이 당하기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의 어처구니없는 첫 만남 때문이리라.


소년의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가족이 먼 지방에서 상경한 첫날 밤, 소년은 자신의 방에 천체 망원경을 세팅하며 밤하늘을 들여다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하늘에게 망원경 렌즈를 겨누려 하던 그때, 소년은 행동을 멈추고서 맞은 편에 있는 집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 안에서는,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왔는지 속옷 차림을 한 자기 또래의 소녀가 있었다.

그 모습이 사춘기 사내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말았는지 소년은 그 순간 멈춰서 소녀에게 시선이 뺏겼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느긋하게 속옷 차림으로 머리를 털고 있는 그 애를 몰래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소년이 제정신이 든 건, 너머의 소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소녀는 몸을 감싸안으며 비명을 질렀고, 소년은 그제야 관측이고 뭐고 허겁지겁 방 창문을 닫았다. 그날 잠이 들기 전, ‘내 얼굴 모르겠지? 그렇게 가깝진 않았어, 하 씨, 혹시 모르니까 피해 다녀야겠다’라며 이불을 뻥뻥 차던 소년은 한 달이 지나 고등학교 첫 등교 날, 하굣길에서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았다. ‘어떤 자식이!’ 하며 매섭게 뒤돌아본 소년은, 그 자리에서 마주한 얼굴을 보며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너지! 너 맞구나! 찾았다 이 변태 새끼!”


소년의 머리를 있는 힘껏 후려친 정체는 자신과 똑같은 검은색 교복을 입고 있는 예쁜 소녀였다. 소년은 단지 이런 어이없는 행동과 소녀의 외모에 놀란 게 아니었다. 초면이면서도 초면이 아니라는 걸, 울기 직전의 눈망울을 보며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애는 한 달 전 자신이 몰래 보았던 소녀였다. 소녀는 그걸 기억하고 기어이 소년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소녀는 씩씩대며 ‘너 그때 내 몸 훔쳐봤지? 너희 반 애들한테 다 말할 거야! 너 학교 못 다니게 할 줄 알아라!’라며 으름장을 놓았고, 그 말에 얼굴이 잿빛이 되어 겁에 질린 소년은 무엇이든 할 테니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소녀는 억울해서 연신 울 것처럼 씩씩댔지만, 얼마 뒤 정말 눈물이 떨어진 건 소녀의 눈이 아닌, 소년의 눈이었다. 그 모습에 덜컥 마음이 약해진 소녀는 작은 가슴 앞에 팔짱을 끼우며 고민하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 너, 앞으로 내 부하로 삼아야겠다.”

“…어?”


생뚱맞고 어이없는 제안이었지만 거절한다면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소년은 최악보단 낫겠지 싶은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다음 날부터 소년은 정말 소녀의 부하가 되어 군말 없이 시달려야 했다. 학교에서 마주치면 일단 이유 없이 장난에 걸리거나 한두 대 맞아야 했고, 하굣길엔 당연하다는 듯 소녀의 가방 셔틀이었다. 소년은 그날 소녀를 몰래 보았던 게 참으로 후회스러워지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둘은 알게 모르게 친해져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둘은 영락없이 친구였지만, 그래도 소녀의 입에서 소년은 여전히 ‘부하’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때, 소년은 소우주가 감춰왔던 비밀을 들으면서 동공을 하염없이 떨었다. 소녀가 말했다.


“나 실은, 병이 있거든. 그래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칠 만큼 적막감이 맴돌았다. 그 불쾌함을 깨려고 하듯이 소년은 어렵게 ‘거짓말이지?’라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과 함께 소녀의 눈망울에는 너무할 만큼 거짓이 없었다. 힘없는 음성으로 ‘거짓말이면 좋겠다’라며, 살짝 물기가 밴 채 반달눈으로 웃는 소녀의 얼굴은 소년에게, 그때부터 더욱 소우주를 신경 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학년이 되면서 소년은 소우주와 같은 반이 되었다. 둘은 자주 붙어 다니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소년의 귓가에는 ‘어떻게 쟤가 저렇게 예쁜 애랑? 말도 안 돼’라며 수군대는 목소리들이 다가오기도 했지만,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를 챙겼다. 왜냐면 자기가 봐도 그럴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특징 하나 없이 그저 공부 하나만 할 줄 아는 자신과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큼 호감 있는 외모를 가진 여자애가 친한 사이라니,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관계이고, 오히려 요즘은 이렇게 쓰면 진부한 설정이라고 욕먹을 거라 속으로만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벚꽃이 모두 진 사월 중순 무렵부터, 소녀의 결석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소우주가 병원에 들르는 일이 많아지자 소년의 등굣길과 하굣길은 푸르고 생명력이 넘치는 활발한 풍경 속에서 이방인이 되어가며 조용해졌다. 그렇게 ‘이게 내 분수에 맞는 거지’라며 외롭게 학교생활을 하던 소년은, 초여름에 접어들려는 어느 날에 소녀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병문안 안 올 거야? 심심해. 그 연락에 소년은 모든 일을 내팽개쳐두고 소우주가 있는 병원까지 뛰었고, 오늘처럼 마지막 대화를 나눌 때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해왔다.

텅 비어있던 소년의 핸드폰 메시지 함에는 읽지 못한 단 하나의 알람만이 남겨져 있었다. 그것은 소녀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였다.


장례식장을 찾은 소년은 사진 속 그 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바닥에 몸을 무너트리고 꺽꺽대며 아프게 울었다. 왜 이렇게나 아픈지 이유를 물을 새도 없이, 너무할 만큼 슬프기만 해서, 속상하기만 해서 목울대에서 피맛이 나도록 애처롭게 울었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면 어쩌라는 건지, 실컷 부하로만 부려 먹고 가버리는 건지, 괴로움과 허무함과 분노가 뒤섞이며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소년을 아프게 구타했다.


발인을 마치고, 소년은 소녀의 부모님과 함께 묘를 찾았다. 그 애처럼 새하얀 꽃을 안겨주며. 소년은 액자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아이와 조용히 눈을 마주했다.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 모를 만큼 그렇게 바라보다가, 소년은 자신의 작은 우주만이 들을 수 있게, 작은 목소리로 자별 인사를 했다.


“소행성… 찾아볼게, 소우주.”


소년은 소우주를 곁에 잠시 떠나보낸 이후로는 미치도록 공부만 했다. 유일하게 자신이 잘하는 게 공부뿐이어서, 그 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더욱이 그래야만 했다. 그래서 사내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아들었을 땐 전교 1등을 차지했고. 그 수석의 성적을 따라 최고로 불리는 명문대에까지 합격했다.


“너 오늘도 안 놀아? 무용과 애들 온다던데.”

“어.”

“얼굴 그렇게만 쓸 거면 나 줘라 그냥.”


풋풋한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 그것이 사내에겐 남의 이야기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젊음이 누릴 수 있는 아떠한 즐거움도 뒤로 하며 공부만 하던 사내는, 대학을 졸업한 뒤로는 본격적인 천문학의 길에 접어들어, 세상엔 오직 우주와 나 자신, 단 둘밖에 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저 끝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논문을 발표하고, 관측했다. 그런 시간은 끊임이 없어, 50년이라는 시간을 쌓아 올렸다. 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묻혀낸 남자의 얼굴엔 나이테 같은 주름이 짙어지며, 짙었던 검은 머리카락도 모두 회색으로 옅어져 있었다.

하얀 새벽빛이 들어오는 자신의 자그마한 방, 거기서 노인은 천체망원경 렌츠 안에 무언가와 눈을 마주했다. 노인의 눈동자가 감격에 떨리고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찾았어.”


그날, 노인이 천문학회의에서 세상에 발표했다.


“새로운 소행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그의 입에 집중했다. 카메라 셔터가 끊임없이 터지며,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투는 질문이 쏟아져나왔다. 그런 장소에서 온갖 목소리를 가로지르는 어느 하나의 물음이 노인에게 닿았다.


“그 소행성의 번호는 어떻게 될까요?”


검은 코트가 잘 다려진, 가르마 파마가 잘 어울리는 젊은 청년의 물음이었다. 눈이 빛나고 전체적인 외관에서 생기가 흐르는 모습이었다. 노인은 그 장소에서 처음으로 그 청년하고만 눈을 마주쳤고, 그 뒤론 잠시 정적에 머물러 있다가, 얼마 안 가 그렇게 입을 열었다.


“소행성에는 이미 50년 전부터 이름이 있었습니다.”


노인의 대답에, 질문한 청년뿐만이 아니라 그곳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들을 보며 노인은 반대로, 살포시 웃음이 지어졌다.

그 웃음은 50년 전 언젠가, 자신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일깨워주었던 소녀의 것을 닮아있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관측했던, 어느 별의 것이었다. 소년은 말하고 있었다.


네가 한 말이 맞았구나, 나는 정말 이렇게 이 순간에 너를 떠올리게 되는구나. 그러면서 소년이 사람들에게 대답했다. 말하고 나서는 활짝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소우주, 그 소행성의 이름은 소우주입니다.”


그때 그 나의, 소중한 우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