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

5화

by 전석표

“토끼 돌보는 건 왜 하게 된 거야?”


여자아이는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아서요.”

“음, 좋아서?”

“네.”


간단한 대답이었다. 단지 그걸로 끝인가 했는데, 의외로 여자아이가 말을 더 이어나갔다.


“토끼들이랑 있는 건 어렵지 않거든요. 사람들이랑은… 가끔 어려워요.”


예상외의 말에, 나는 아까보단 입이 늦게 열렸다.


“사람이 어려워?”


그러자 여자아이가 느리게 대답해 주었다.


“말을 잘 못 하거든요. 틀리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많아요.”


그 말을 듣고 나도 한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은 되게 잘 말하는 거 같은데.”

“…제가요?”


여자아이가 어째선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너 지금 나랑 말하는 거, 어렵지 않아 보여.”


그러자 여자아이의 시선만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건 아마….” 이윽고 여자아이가 말했다.


“선배가 어렵게 대하지 않아서요.”

“…내가?”

“네.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여자아이는 앞을 바라보더니, 곧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뭔가, 생각보단 따뜻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이 없었지만, 그대로도 편했다.

집으로 가는 길, 주황빛 아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보며 걷다가 드문드문 생각했다.


“따뜻한 사람이라.”


금방 지나가는 한마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내가 따뜻한 사람?”


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늘 불만이 많았고, 문제를 일으키고, 선생님에게 불려 다니던 얼굴들.

그런 내가 들을 말은 아니었다.


“걔는 참, 큰일났네.”


사람 대하는 게 어렵다는 애가 나랑은 괜찮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웃고 있었다.

그날 하굣길의 바람은 평소보다 부드러웠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아, 시원하다.”


점심 이후 체육 수업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5월 중순이 되자 공기가 확실히 달라졌다. 땀이 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세수한 다음 볼일을 보는데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리고 어째선지, 그 널린 자리 중에 굳이 내 옆에 붙어 섰다.


뭐 하는 놈이지? 언짢아서 슬쩍 바라보자, 나는 절로 숨이 멎었다.


“어이, 토끼 똥.”


담임이었다.


“하… 그렇게 부르지 마시죠."

“토끼 똥 치우기는 익숙해졌나?”

“교직원 화장실 놔두고 왜 여기예요.”

“멀잖아. 설계를 잘못했어.”


나는 말을 섞지 않으려고 손을 씻었다. 그때였다.

“어이, 잠깐.”


목소리가 달라졌다. 나는 마지못해 돌아섰다. 담임이 말했다.


“손 깨끗이 닦아. 토끼 똥 묻어 있지 않게.”

“그만하라고!”


나는 부서질 듯 문을 닫고 떠났다. 그리고 그 주, 목요일 저녁이었다.


“쓰레기 잘 버려.”

“….”

“안 들려?”

“지가 닭다리 두 개 다 먹고…!”

“이 새끼 미쳤구나, 뭐라고?”

“아! 할아버지! 형이 때려!”


할아버지, 동생과 치킨을 먹고 나서 방으로 들어왔다. 포만감을 느끼며 편하게 침대에 누워 쉬려고 했는데, 그 느긋함을 몇 분이 안 가 핸드폰 벨소리가 깨트렸다.


누구지 하고 확인해 보니, 화면엔 다른 학교에 다니는 중학교 동창의 이름이 띄어져 있었다.


“어.”


전화를 받자마자 너머로 정신없는 상황이 느껴졌다. 사방에서 꽥꽥 울리고 있는 걸 보면 노래방인 듯했다. 친구는 다른 말 없이 단번에 본론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민재, 내일 애들이랑 볼 거니까 너도 와.”

“내일?”

“아, 저 새끼 존나 시끄럽네! 민재 잠깐만.”


친구는 자리를 옮겼는지 아까보다 덜 소란스러운 곳에서 내게 말했다.


“너 포함해서 4대4 볼링치고 PC방 가게. 학교 끝나면 바로 여기로 넘어와.”


그 말을 듣고 나는 대답했다. 한데, 말이 시원하게 나오진 않았다.


“안 될 거 같은데, 내일.”

“왜?”


녀석은 내게 되물었다. 거절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사람같이.


“할 일 있어. 그래서 시간 안 될 거 같아.”


그러자 친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할 일이 뭐가 있어, 네가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갈게.”


그 말 뒤론 정적이 늘어서다가도, 이내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존나 재밌을 텐데, 다음엔 내빼지 말고.”

“어. 끊는다.”


통화를 끊고도 나는 한동안 화면을 내려다봤다. 왜 거절했는지, 나도 정확히는 몰랐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