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계단을 내려가며, 여자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느새 방학이네요.”
“방학이 방학 같진 않지.”
내 말에 여자아이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다.
“얘는 매번 같은 것만 먹는데 안 질리나.”
식사 시간을 갖는 토끼를 보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닌가, 그래도 자장면이라면… 매일 먹을 수 있긴 하지.”
그러다 문득 물음이 떠올랐다.
“방학 때는 얘네 어떻게 돼?”
내 말을 듣고, 여자아이는 물로 목을 축이고서 대답했다.
“경비 아저씨께서 돌봐주실 거예요.”
“그래?”
걱정할 건 없겠네 싶었는데, 여자아이가 덧붙였다.
“그래도 저는 애들 보러 올 거예요.”
“방학인데도?”
“저, 영재반이라서요.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요.”
그 대화를 떠올리다 보니 금세 1층 현관이었다. 거기서 나는 정문 쪽으로, 여자아이는 뒷문 쪽으로 향했다.
“축사 가?”
“네. 조심히 가세요, 선배.”
그 말을 듣고, 왠지 고민이 들었다.
방학식이라 평소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 그러다 보니 지금 가서 챙겨줄 게 있나 싶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당연한 것처럼 축사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빤히 보다가, 곧 그렇게 걸음을 뗐다.
“나도 같이 갈게.”
“선배?”
“당분간 못 볼 거 같아서.”
그러자 여자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축사에 가서도 그리 길게 머무르진 않으려 했다. 잠깐 얼굴만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 기분으로 토끼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여자아이가 물었다.
“선배는 방학 때 뭐 하실 거예요?”
“생각해둔 건 없어서.”
“그래도 되죠.”
“그런가?”
“쉬고 싶으면 쉬는 거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왜 위로처럼 들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축사 안은 습한 공기로 가득했다.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시원하진 않았다.
거기서 여자아이는 여름용 건초 봉지를 뜯고 있었다. 옅은 색의 건초가 바닥에 쏟아지자 먼지보다 향기가 먼저 퍼졌다.
“이걸 더 좋아해요. 여름엔 냄새가 강하면 덥다고 해서요.”
여자아이는 설명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체육복 바지에 땀이 닿아도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나는 옆에서 우리 문을 잡아주었다. 돕고 있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위치였다.
“안 힘드냐.”
여자아이는 건초를 옮기며 대답했다.
“애들이 여름만 잘 나면 그만이에요.”
그 말이 너무 담담했다.
새 건초가 채워지면서 토끼들이 몰려왔다. 여자아이는 무릎을 꿇고 더 가까이 다가갔다. 토끼 한 마리가 손가락을 건드리자, 아이는 낮게 말했다.
“잘 버티자. 이번 여름도.”
나는 그 말을 듣고 일부러 시선을 돌렸다. 뭔가 들키지 않으려고 그런 건 아닌데, 왜인지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조금 뒤, 우리는 교문까지 걸었다. 갈림길에서 그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여름 방학 잘 보내세요, 선배.”
그 말을 듣고 나도 여자아이의 반듯한 눈을 보며 대답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한 방학을 보낼 것 같은 아이에게.
“그래. 너도.”
그렇게 여름 방학이 시작됐다.
실은 나는 방학을 반기지 않았다. 날들은 생각보다 쉽게 흘러갔고, 남은 건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기분뿐이었다.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노을이 방 안으로 들어오던 날, 핸드폰을 보니 방학이 일주일이나 지나 있었다.
“민재야, 어디 나가냐? 이따가 슬슬 저녁 먹을 건데.”
“형 어디 가?”
방문을 열고 나와 샌들을 신는 나를 보며 거실에 있던 두 사람이 물었다. 나는 대답과 동시에 현관문을 열었다.
“산책 갔다 올게.”
밖은 그리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걸었다. 막히면 돌아가고, 다시 걷고, 반복하다 보니 하늘이 어두워졌다.
한 시간이 넘었다는 걸 알았을 때야,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학교네.”
눈앞엔 학교 정문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한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특별한 이유 없이 교문을 넘어섰다.
축사의 문은 닫혀 있었다. 문고리를 돌려 열자 토끼들이 사료를 씹는 소리만 들렸다.
“없네.”
말이 먼저 나왔다. 나는 토끼들 사이를 조심스레 지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밥은 잘 먹냐.”
토끼 한 마리가 우리 앞으로 나왔다.
“걔 없어서 심심하냐.”
대화 아닌 대화였다. 나는 우리 문을 열고 토끼의 머리를 약하게 쓰다듬었다. 토끼는 도망가지 않았다.
“오. 안 가네.”
나는 토끼와 잠깐 장난을 치며 놀아주다가 바지를 털고 일어났다. 슬슬 나가려 하는데, 그때 시선이 멈췄다.
물기가 덜 마른 대야 옆, 둘둘 말려 있는 비워진 사료 봉투와 작업 장갑 한 짝이 있었다. 여자아이가 쓰던 거였다. 나는 그걸 몇 초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었는데, 굳이 건드리진 않았다.
“집에 갔겠지.”
확인할 수 없는 말을 하고서 문을 닫았다. 몇 걸음 옮기다 다시 돌아가 문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잘 잠겨져 있었다. 나는 짧게 웃고 돌아섰다.
집으로 가는 길엔 바람이 크게 불었다. 땀이 식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