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조용함에 앉아 있었다.

8화

by 전석표

“마지막에 나가는 사람이 문 잠그고 열쇠 반납해.”


누군가를 꼭 짚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당부를 들고 가는 건 늘 나였다.

방학이지만 방학 같지 않은 하루들이 이어졌고, 그렇게 절반쯤 흘러 있었다.


“수고했어, 연서. 조심히 가.”

“감사합니다.”


열쇠를 반납하고 나서야 급식실에서 저녁을 먹었다. 교사 밖으로 나왔을 때는 여섯 시였다.


“안녕하세요.”

“어, 연서. 밥 먹고 바로 온 거니?”


축사 문을 열고 들어오니 경비 아저씨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애들 밥은 다 챙겼고, 물도 갈아뒀다.”

“감사합니다.”


경비 아저씨가 나간 뒤, 나는 의자를 끌어와 토끼들 앞에 앉았다.


“오늘은 공부할 게 많았어.”


금방 토끼들이 다가왔다. 저녁 조명이 켜진 축사 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한데 오늘은, 그 고요함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다들 얌전하네.”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누군가 대답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이 스쳤다. 하지만 나는 곧 그 기대감을 밀어내듯 우리로 몸을 숙였다.


“괜찮아. 여름이라서 그래.”


다음날도 같은 시각이었다. 늘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올 것 같았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먼저 보인 건, 앞코가 약간 떼가 타 있는 운동화였다.


“…어.”


앞코의 방향이 내게로 돌아갔다. 고개를 들자,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어, 왔냐.”


선배였다.


“…왔어요.”


나는 대답했다. 토끼들의 소리가 순간 들리지 않았다.

곧 나와 선배는 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선배였다.


“공부는 잘 돼 가?”

“그냥 하던 대로요.”

“그럼 잘 되는 거네, 뭐, 영재반이잖아.”


그렇게 말하며 선배는 어깨를 으쓱거렸고, 나는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선배는 잘 지냈어요?”


이번엔 내가 묻자, 선배는 앞을 바라본 그대로 입을 뗐다.


“지내는 대로 지냈지.”

“음, 잘 지냈다는 건가.”


모호하게 들려오는 말 뒤로 서로 숨만 골랐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공부 끝나자마자 온 거야 그러면?”

“정확히는 저녁 먹고요.”

“아. 학교에서 저녁까지 주는구나. 좋네.”

“선배는 저녁 먹었어요?”

“아니, 집 가서 먹어야지.”


조명 아래의 대화 틈으로 바깥에서부터 매미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어떤 일로 오신 거예요?”


한동안 말이 없던 선배는, 목덜미를 매만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조용하고 싶어서.”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죠, 여긴 그런 데니까요."


선풍기가 후덥지근한 공기를 한 바퀴 밀어냈다. 선배는 바닥을 보았고, 나는 토끼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어딘가, 같은 조용함을 듣는 기분이었다.

“이제 가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선배가 일어났을 때, 시간은 30분이 흘러 있었다. 축사의 문을 닫고 나와 우리는 교문까지 같이 걸었다.


“다음에 봐.”

“조심히 가세요.”


그로부터 일주일 뒤, 선배는 다시 축사에 왔다. 선배는 의자를 끌어와 앉아선 선풍기를 분해하더니, 내가 한두 가지 일을 끝냈을 즈음 다시 조립해 바람을 틀고 있었다.


“미지근한 건 어쩔 수 없네.”


그렇게 말하고선 선배는 한동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의자 위에 올라섰다.


“위험해요.”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선배는 내려오지 않고 대답했다.


“잠깐이면 돼.”


그제야 내게도 보였다. 천장 가까이에 달린 팬에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선배는 손바닥으로 먼지를 털어냈고, 팔로도 한 번 더 문질러 닦았다.


그 부스러기가 자신에게로 쏟아져 내려오는데도 선배는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바람 더 통하면 얘네들 숨쉬기 편해지니까.”


툭 던지듯 내뱉으며 선배는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러더니 내 쪽을 보지 않고 팬의 방향을 바꿔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약한 바람이 축사 안쪽으로 흘러들어왔고, 토끼들도 느꼈는지 귀를 펄럭였다. 그 반응을 눈으로 따라가던 선배가 말했다.


“…이 정도면 좀 나을 거야.”


그걸로 끝이었다. 땀이 턱 끝에서 떨어지고 있는데도 선배는 왜인지 쉬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