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토요일.
가장 바쁘고,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던 주말이었다.
친누나의 결혼식 날이었기 때문이다.
2019년 즈음인가.
당시 부사관학교 훈련소에 있던 내게로 누나가 보내준
인터넷 편지가 날아왔다.
인터넷 편지는 단절된 공간에서 사회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와도 같았다.
내 팔이 새까맣게 까진 날에
누나가 보내온 인터넷 편지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석표야, 누나 남자친구 생겼다!"
문장 너머로 느껴지는 신난 목소리.
나는 그때 '그런가 보다'하고 가볍게만 넘겼다.
누나가 연애를 안 하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한데, 그땐 몰랐다. 그 인연이 결혼까지 이어질 운명일 줄이야.
그때 시작된 만남이 7년이라는 시간을 타고 부부라는 연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누나가 '결혼한다'라고 말한 건 1년도 훌쩍 넘었었다.
그때부터도 두 사람이 결혼을 할 거란 건 알았는데,
선뜻 실감은 잘 되지 않았다.
시간의 거리가 어느덧
반년이 되고, 석 달이 되고, 한 달까지로 좁혀졌을 때도 나는
'아직 남았구나'하고 덤덤할 뿐이었다.
일주일밖에 안 남아서야 슬슬 실감이 나려고 했다.
나는 누나 결혼식에서 축의대를 담당했다.
축의금, 즉 돈이 오가는 일을 하는 거라 하기도 전에 걱정이 앞섰다.
정산 잘못되면 어쩌나, 잘할 수 있으려나. 스스로에게 불안한 물음을 연신 던졌다.
그러면서 항상 시간이 남을 때마다 틈틈이 누나가 작성해 준
축의대 매뉴얼을 달달 외웠다.
하루 전날 밤, 부모님과 식탁에 앉아서 내일 있을 결혼식 얘기를 했다.
아빠와 엄마는 첫째 딸이 어느새 정말 결혼을 한다며, 감개무량한 듯 연신 같은 말을 하셨다.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 가족은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잠을 잤다.
그리고 마침내 밝아온 결혼식 날.
잠을 푹 잔 건 아니었는데 눈이 제시간에 떠졌다.
나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그런 듯했다.
오전에 먼저 식장에 들러 내가 해야 할 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점점 시침이 약속한 시간을 향해 달려갔고, 어느새 코앞이 되자
식장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나의 축의대 일도 시작되었다.
정말 정신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그때 무슨 말을 했으며 무슨 표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잘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마침내 홀 안에서 누나의 결혼식이 시작되는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채우며 이내 로비가 한산해지고 나서야
나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축의대를 도와주셨던 외가의 사촌 형님 두 분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석표야, 보고 와."
"네? 아니예요. 저도 축의대 지켜야죠. 축의대 해야 해서 결혼식 못 보는 것도 알고 있는 걸요."
내 대답에, 엑셀로 수기를 작성해 주셨던 큰 형님이 말해주었다.
"나머진 우리가 이제 맡을게. 석표 넌 누나 결혼식 보고 오는 게 맞는 거 같아."
축의대 인원이 보통 두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처음 하는 나를 배려해 주고자, 외가 사촌 형님 두 분이 같이 함께해 주시기로 해서
신부 측 축의대는 세 명이서 하게 되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나서 몇 분이 지나 한적해지자,
그 틈에 나라도 친누나의 결혼식을 보고 오라고 배려해 주신 것이었다.
그 마음의 온도는, 앞으로 살면서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결혼식 중간에 들어와 누나의 결혼식을 보았다.
나도 그렇지만, 누나도 분명 느낄 것이다.
평생 흐려지지 않을 장면, 기억.
누나의 결혼식은 너무나 기쁘게도 무탈하게 진행이 되었고
나 또한 그 순간을 눈에 담았다.
누나와 매형의 행진을 끝으로
나는 서둘러 축의대로 돌아갔고,
사촌 형님들과 축의대 일을 마무리했다.
나는 매형에게 축의대 가방을 확실히 전달하고 나서야,
"아, 해냈다."
하고 마음으로 말했다.
연회장으로 내려가 밥을 먹는데,
솔직히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연회장에서 차려진 음식들의 맛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때 내 상태가 영혼이 반쯤 빠져 있어서였다.
모든 차례를 지나 보내고, 누나가 매형과 떠나기 직전에
나는 급하게 두 사람이 있는 5층으로 올라가 전해야 할 물건을 전했다.
결혼식 전날에 쓴 손편지였다.
그 편지를 전하고 인사를 나눈 뒤, 나는 가족들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치 여독이 퍼진 것처럼,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와 부모님과 동생은 모두 잠을 잤다.
나 또한 그대로 눈을 붙일까 했지만, 이상하게도 결국 자지는 못하겠더라.
신기루처럼, 결혼식장에서의 장면들이 연신 눈앞에 아른거려서였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살아오며 들어온 목소리들 중
가장 오래 남을, 가장 멋진 목소리로 축사를 건넸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곁에서 누나를 향해 변함없는 미소를 지으셨다.
이제 막 열다섯이 된 여동생도 가방순이 역할을 제법 든든하게 해냈다.
그날, 우리 가족은 모두 제 몫을 다했다.
누나는 내게 있어 단단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땐 일부러 반기를 들 만큼 대들었지만,
어른이 되며 느낀 건 누나는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누나를 보며 용기를 얻은 만큼,
나 역시 앞으로 인생을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
누나의 결혼식은 누나에게만 기쁜 일이 아니었다.
온 가족의 품에 안겨준,
사는 내내 온기를 잃지 않게 해 줄 소중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