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언어를 해야 하는 이유!

아이도, 다른 누구도

by 투잡남

우리는 생각보다 축복의 언어보다는 저주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불평, 불판은 물론 나에 대해서 저주를 내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할 수 있어요?


라고 묻는 대답에 무심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잘 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하거나 생각하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도 가끔씩 그런 경우를 마주칠 때가 있다.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을 하면 정말로 더럽게 못하게 된다. 말 한마디가 나의 반응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가 너무나 중요하다. 말 한마디가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전의 뇌의 스위치를 켜라는 서평에서 뇌의 생각에 따라 말이 나오고 그에 따라 삶이 변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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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고자 노력 한다면 분명하게 변화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혹은 누군가로부터 축복의 언어를 듣는다면 축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어른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미래세대인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축복의 언어를 건네지 않는다. 축복의 언어를 건네기도 전에 아이들의 등급을 매기고 청년들의 급을 정한다. 10대에 정해진 실력은 20대가 되어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의 저주로 아이들을 몰아 넣는다. 사실은 그것은 거짓말이다. 수능으로 매겨진 등급이 인생의 전부라는 이상한 프레임인것 뿐이다.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특별한 실험이 하나 있었다. 한 학급의 학생들의 지능을 측정했는데 우수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니 잘 부탁한다고 교사에게 일러 주었다. 실은 그냥 랜덤으로 뽑은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8개월 후 측정했을 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일반 집단보다 실험을 진행한 집단의 지능 수치가 훨씬 높았다. 교사는 학교측에서 말한 것을 믿었을 뿐이었다.


여기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교사는 그대로 믿었을 것이고 학생들을 좀 더 사랑으로 축복의 언어로 대했을 것이다. 잠재능력이 있고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칭찬과 격려는 축복의 언어 중 하나다. 그 언어의 힘이 아이들에게 닿았을 것이고 아이들은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고로 진정한 어른이고 멘토라면 축복의 언어를 아낌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등급을 나누어서 사람들을 대하고 그에 따라 저주의 언어를 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잠재능력을 믿고 돕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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