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잡남 Dec 06. 2018

축복의 언어를 해야 하는 이유!

아이도, 다른 누구도

    우리는 생각보다 축복의 언어보다는 저주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불평, 불판은 물론 나에 대해서 저주를 내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할 수 있어요?


  라고 묻는 대답에 무심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잘 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하거나 생각하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도 가끔씩 그런 경우를 마주칠 때가 있다.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을 하면 정말로 더럽게 못하게 된다. 말 한마디가 나의 반응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가 너무나 중요하다. 말 한마디가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전의 뇌의 스위치를 켜라는 서평에서 뇌의 생각에 따라 말이 나오고 그에 따라 삶이 변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https://brunch.co.kr/@hosueng/95 


  결국 우리는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고자 노력 한다면 분명하게 변화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혹은 누군가로부터 축복의 언어를 듣는다면 축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어른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미래세대인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축복의 언어를 건네지 않는다. 축복의 언어를 건네기도 전에 아이들의 등급을 매기고 청년들의 급을 정한다. 10대에 정해진 실력은 20대가 되어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의 저주로 아이들을 몰아 넣는다. 사실은 그것은 거짓말이다. 수능으로 매겨진 등급이 인생의 전부라는 이상한 프레임인것 뿐이다.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특별한 실험이 하나 있었다. 한 학급의 학생들의 지능을 측정했는데 우수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니 잘 부탁한다고 교사에게 일러 주었다. 실은 그냥 랜덤으로 뽑은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8개월 후 측정했을 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일반 집단보다 실험을 진행한 집단의 지능 수치가 훨씬 높았다. 교사는 학교측에서 말한 것을 믿었을 뿐이었다.


  여기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교사는 그대로 믿었을 것이고 학생들을 좀 더 사랑으로 축복의 언어로 대했을 것이다. 잠재능력이 있고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칭찬과 격려는 축복의 언어 중 하나다. 그 언어의 힘이 아이들에게 닿았을 것이고 아이들은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고로 진정한 어른이고 멘토라면 축복의 언어를 아낌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등급을 나누어서 사람들을 대하고 그에 따라 저주의 언어를 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잠재능력을 믿고 돕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4. 익숙해지는데까지 걸리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