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다가 쭈그리가 된 내 손 피위스 엣더 포인트를 그만두고 스키클럽에 있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딱 먹고 살만큼의 돈을 버는 수준에서 여행 경비를 챙길수 있는 워홀러로 거듭났다. 대신 돈을 버니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루어야만 했다. 내손이 쭈그리가 되고 붓고 물속에 하루종일 담궈야 하는 시간들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래도 돈을 벌 수 있고 더 이상 5불 10불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 됐다.
호주에서 설거지만 하더라도 먹고 살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시급은 기본적으로 21불. 주말에는 26불. 일요일은 30불까지 치솟는 어메이징한 시급을 알고 나서부터는 동기부여가 절로 생겼다.
내가 일하던 스키클럽
내가 사는 곳에서도 거리가 멀지 않아서 다니기에 꽤나 괜찮았다. 자전거로 20분거리. 끝나고 자전거를 아무도 없는 곳을 달리다 보면 조금은 을씨년 스러우면서도 바람을 느낄수가 있었다. 다윈의 날씨는 동남아와 같은에도 나무들은 제각각이었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그 바람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돈을 벌고 나니 먹는 밥부터가 달라졌다. 매일같이 식빵에 라면먹던 시절과 오로지 통닭으로 단백질을 채우는 시절은 벗어났다. 식빵과 라면에서 불고기로 음식을 전환하게 되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밥을 먹는데 스스로가 대견했고 스스로 칭찬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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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에 도착해서부터 주로 먹었던 음식들이 떠오르면서 그래도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혼잣말로 (살던 곳에 한국인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중국어, 프랑스어, 영어로만 이루어진 세계에 속해 있었다)
이제 살았다
라고 안도의 한마디가 입에서 세어 나왔다.
너무나 좋은 천혜의 환경을 가진 곳에서 나는 왜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서 아둥바둥 했는지 스스로를 조금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한가롭게 풀밭에 누워 있고 싶었다. 일을 구해야만 한다는 스트레스와 낯선 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잠시나마 피해 있고 싶었다. 물론 너무나 덥고 개미가 내 손톱만해서 30분이상 풀밭에 누워 있는 행위는 이어가지는 않았다.
그냥 파랬던 그날의 하늘 지금보니 좀 어둡다그래도 참으로 오랫만에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하늘색 하늘을 마음껏 누렸다.
일자리가 생기고 돈이 생기니 이제는 디저트까지 챙겨 먹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 저렴해서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많이 먹지 않으려 했지만 한국라면은 언제나 내게 있어서 위로가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항상 그냥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살만해진 것에 대해 참 감사합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