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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선 Mar 21. 2024

대학입시도 아니고..

예비번호 3번이라니?

지난달부터 오매불망 이날만을 기다렸다.

인근 주민센터 자치프로그램인 탁구의 수강 등록일이다. 

(야간 탁구교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지만 주간 평일에도 운동을 하고 싶다)

8시 반부터 번호표를 준다는 확인을 하고 20분 일찍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와~~깜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다. 헐~~ 이럴 수가?

이 사람들은 도대체 몇 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길게 늘어선 줄에 끼여서 번호표를 기다렸다.


먼저 온 순서대로 번호표를 나눠주면 될 것을 굳이 8시 30분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앞 줄에 선 젊은 엄마도 같은 얘기를 했다. 

아이의 수강 등록을 하러 온 그녀는 마음이 급해 보였다. 

불만을 들은 주민센터 직원이 해명을 한다.

그것이 자체 룰이고 순서에 오해가 생길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를 수밖에... 


두근두근... 탁구 수강인원이 25명인데.. 그 안에 못 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번호표 31번.

오랜 기다림 끝에 번호표 순서대로 접수를 한다.

불길하다.

'탁구는 등록 마감되었습니다.'

직원의 한 마디가 어찌나 야속하던지??

예비번호 3번이다. 

중간에 그만두는 수강생의 빈자리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내게까지 순서가 돌아올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

                                                                                 

속담이 스치듯 생각났다.

조금 더 일찍 갔어야 하는데... 아쉽다.


노후준비의 3대 요소는 돈, 건강, 취미(여가)라고 한다.

한국의 80% 이상의 노인들은 은퇴 후 30년 이상의 시간을 TV와 함께 허망하게 보낸다는 뉴스도 있다.


부모님을 보면 그 뉴스가 사실인 것 같다.

60살에 공무원으로 퇴직하신 아버지. 그 후 88세이신 오늘까지 유일한 취미는 TV 시청이다.

다리 힘이 있으셨을 때는 아침 1시간은 꼭 걷기를 하셨는데.. 

이 삼 년 전부터는 다리 힘도 많이 빠져서 걷기도 무리다. 

그래서 실내에서 자전거 타기와 걷기를 가볍게 하시는 정도다.

아버지는 본인 건강이 최우선이다. 

종류만도 몇 가지나 되는 약(치매, 관절, 고혈압, 당뇨 등)을 하루도 빠짐없이 정해진 시간에 챙겨 드신다. 

식사도 제시간에 삼시 세끼. 정량만 드신다. 

비슷한 연배에 비하면 아주 건강하신 편이다. 


엄마는 운동도 좋아하시고 노래교실도 다니셨다. 

운동은 수영, 벨리댄스, 탁구 등 다양하다.

엄마가 운동을 하고 집 밖으로 다닌 것은 집에서 TV만 보고 있는 아버지를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나가서 운동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했다.

(뒤늦게 자식 곁으로) 이사를 한 후에는 같이 탁구를 치던 친구들을 떠나서 많이 울적해하셨다. 

탁구를 같이 쳐 줄 친구가 없으니... 기껏해야 혼자 가서 로봇기계와 잠시 운동을 하거나 

내가 가야 상대를 해 줄 수 있다. (일 년에 몇 번 아주 뜸하지만)

노후가 행복하기를..  

부모님의 노후 모습과 지인들의 보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노후에는 반드시 취미(여가) 활동을 해야 한다고..


"남편, 은퇴하고 노후에 어떤 취미를 할 것인지 미리 준비해. 우리 아버지처럼 집에만 있으면 절대 안 돼."

"나는 장인어른 팔자가 제일 좋은 거 같은데... 나의 로망이고.."

"뭐야? 장인어른 닮을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마셔. 나는 답답해서 그런 꼴 못 보니까."

다짐을 해두었고 수시로 강조를 한다.

남편이 아버지처럼 사는 노후? 끔찍하다. 그래서는 안된다.

요즘 세상에 얼마나 즐기고 놀 거리가 많은데.. 그 흔한 취미 하나 없이 하루 종일 TV만 보다니...

한편 아버지의 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가족들 부양하느라 애쓰다가 취미 하나 못 만들어 놓으셨나?

저렇게 사시다가 돌아가시면 너무 허망하지 않을까?

아버지는 늘 자신의 현재가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하시지만..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대학입시도 아니고.. 이렇게 치열하게 수강 등록을 해야 하다니..

오늘 탁구 등록을 하러 온 분의 연령대는 50대부터 60대 후반 정도다.

여성분이 대부분이고 남자분은 대여섯 명. 

평일 낮 시간대 운동이니 은퇴자나 주부, 자영업자가 대부분이다.

어느 여성분의 소리가 들린다.

"몸이 아프다가도 탁구치고 가면 개운하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중독이야 중독.. 탁구를 끊을 수가 없어요"

그 말은 맞다. 

탁구를 좋아하는 울 엄마도 같은 말을 하신 걸 보면.

"탁구를 쳐야 몸도 개운하고 웃을 일도 생긴다."


대기번호 3번!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기다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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