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신모임에서 역사가 이뤄졌다.
김(金)가네 재정권이 이양되었다. 60년도 넘게 걸려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아버지 생신기념 가족모임이 잘 마무리되었다.
사소한 오해가 있어서 큰 오빠가 단톡방을 나갔다 들어오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지만
잘 이해가 되었고 온 가족이 흡족한 시간을 가졌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임의 부회장인 남편과 총무인 내가 조금 힘들었지만
보람이 더 컸다.
처음으로 가족티도 맞춰 입었다.
다른 가족들 티셔츠 맞춰 입고 사진 찍는 모습이 부러워서 제안을 했다.
모두 좋아한다.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아버지, 이번 생신 모임 어떠셨어요? 만족하셨어요?."
"만족하지. 송서방이 수고 많았네.. " (아버지)
"송서방이 나서주지 않으면 이런 모임 못한다. 힘들지만 앞으로도 수고해 주게."(엄마)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하는데.. 할 사람이 남편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도 같은 생각으로 봉사(?)할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쁨을 받는 사위가 된 것 같다. 남편이지만 고맙다.
아버지 생신은 7월 중순 한 여름이다.
날씨도 덥고 휴가철과 겹쳐서 숙소 잡기도 마땅치 않아 그동안은 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외식을 했었다.
올해는 아버지 연세도 있으시고(내년이면 90세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으셔서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휴가 겸 바람도 쐬고 힐링도 하려고.
부모님 포함 모두 11명이다.
부모님 집에서 많이 멀지 않은 휴양림에서 1박을 했다.
맛난 한정식으로 식사도 하고... 베이커리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날씨도 덥고 부모님이 걷는 것을 힘들어하셔서 주변 관광은 생략하고 쉬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이번 모임의 가장 큰 성과와 하이라이트는 김가네 재정권의 이양이다.
60년이 넘게 유지되던 재정권이 전격적으로 넘어간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엄마에게로.
"너희, 아버지. 그저께도 길 가다 넘어져서 무릎 깨고 왔다.
이제는 마트 가서 뭐 사 오라고 시키는 것도 걱정된다. 밖에 나가면 신경도 쓰이고.."
아버지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시다.
지금도 자신의 건강관리는 철저히 하시는 편이고
몸에 좋은 것도 꼭 챙겨드시지만 나이를 이기는 장사는 없는 것 같다.
다리에 근육량이 빠져서 걷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예전에는 번개처럼 쌩쌩하게 잘 걸으셨는데..
올봄에도 산책 갔다가 잠시 정신을 놓으시고 엎어지셔서 얼굴에 상처가 나고
구급차에 실려오셨다.
그 후 엄마와 자식들 걱정이 깊어졌다.
무리하게 운동하지 말고 집에서만 가볍게 운동하시기를 신신당부드린다.
4살 아래인 엄마는 조금 나은 편이다.
이곳저곳 아프다고는 하시지만 지금도 우리와 탁구를 쳐도 지지 않으신다.
"아버지한테 너희들이 잘 얘기해라. 내가 얘기하면 오해할 수 있으니까.
이제는 다리에 힘이 빠져서 마트 가는 것도 힘들어하니
내가 시장도 보고 살림 살려면 생활비 통장을 내 통장으로 바꾸라고. "
아버지는 결혼할 때부터 재정권을 꼭 쥐고 계셨다.
월급을 갔다 주셨지만 통장은 절대 넘기지 않으셨다.
세금 내는 것부터 마트 장 보는 것까지 직접 하셨다.
엄마는 물건을 사다 달라고 주문만 해봐서 물건 값이 얼마인지도 잘 모르신다.
은행업무도 아버지가 직접 가서 일을 보신다.
돈 관리하는 것도 대물림인가?
할아버지가 그러셨다고 하고 오빠들도 그렇다.
지금도 김가네 남자들은 재정권을 놓지 않고 있다.
결혼하신 지 60년이 넘어서야 이변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재정권을 넘기기로 하신 것이다. 그것도 순순히.
자식들이 매달 드리는 생활비 통장 관리를 엄마에게 넘기고
아버지는 노령연금과 막냇동생이 보내는 용돈만 받기로 하신 것이다.
네 명의 자식들이 보내는 생활비는 엄마 통장으로 입금하기로 결정했다.
대단한 발전이다.
아버지는 끝까지 재정권을 놓지 않을 것처럼 하셨는데, 힘에 부치신다는 것을 느끼신 것 같다.
부모님도 동의하셨고 자식들도 잘 결정하셨다고 했다.
혹시나 아버지가 섭섭하게 생각하실까 염려도 살짝 있었지만..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시니 다행이다.
남편이 이 역사적인 사실을 가족단톡방에 공지를 했다. 엄마의 통장계좌도 함께.
이제는 무를 수도 없다.
김가네 재정권은 확실히 이양되었다.
재정권이 뭐라고? 60년 넘게 꼭 쥐고 계셨을까? 울 아버지는.
돈이 힘이라서. 그걸 놓으면 자신의 존재가치와 힘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신 걸까?
이번 아버지 생신 가족모임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아버지의 89세 생신이기도 했고 가정 경제권이 엄마에게 넘어가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언제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모임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편은 가을 단풍 들면 한 번 더 가족모임을 갖자고 했다.
그나저나 부회장님 마눌(마누라)인 내가 힘들 것 같다.
나도 내일모레면 60인데..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해야겠지?
부모님이 기뻐하시고
또 두 분이 안 계시면 하고 싶어도 못할 테니까.
사람은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또 한 장의 추억을 남겼다.
먼 후일 추억을 되짚으며 부모님을 그리워할 날도 올 것이고.
지금 행복하자.
happy now
사진출처 : 직캠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