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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Jan 26. 2017

예전 연인과의 추억을 잊는다는 것

떠나간 사람은 남이고 고 지나간 추억은 기억일 뿐이다


기억과 추억을 지울 수 있는 신약이 미국에서 개발이 되었다. 이미 사람의 기억까지도 조절하고 조정할 수 있는 약이 있다는 소리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약을 원 할지는 미지수다. 잊기 싫은 기억이 있다면 지우고 싶은 기억도 있기 마련.  머릿속에 지우개라도 넣을 수 있다면 예전 애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도 예전 연인과의 추억을 지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때는 아름다웠던 추억이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부분이 되어 머릿속에 남는다는 일은 어찌 보면 슬프고 아름답지 못하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지우고 싶지만 기억을 지울 수 없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그나마 우리의 정신건강을 보호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다. 한 때는 아름다웠던 추억이 추악한 기억으로 변질이 되었던 평생을 보관하고 싶었던 기억이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아픔으로 변했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받아들이는 일 밖에 없다.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머릿속 어딘가에 보관하고 산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지금이고 과거는 과거 일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 잡혀 현재를 망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과거의 실수나 행동들이 지금의 삶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여 지금의 행동과 마음도 과거에 고정시켜 놓는다고 할까.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면 당신은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은가? 



떠나간 사람은 떠나 간 사람이고 지나간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떠나 간 사람에 대한 감정을 지우지 못하는 건 사람의 자연스러운 일 중에 하나 일 수 있지만 그것에 집착하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잊지 못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은 엄연하게 다르다. 잊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뇌와 마음이면서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의 한계성 때문이지만 집착은 자신이 조절할 수 있음에도 조절하지 못 하기에 얻는 마음의 병이다. 아무리 집착을 하고 원하지 않는 추억이 저절로 떠오른다고 할 지라도 과거로 돌아가 과거를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며 과거를 지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집착을 할 필요는 없다. 가끔 떠 오르는 기억을 받아들이고 그저 그랬었던 일이 있었지 하며 지나가면 된다. 그 기억 때문에 너무 힘이 든다면 친구를 만나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자신의 일에 더 집중을 하고, 세상이 여전히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생각하면 그만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일과 기억에 집중하고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괴로워지는 것은 자신뿐이다. 



그 사람이 나와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 한 지, 그 사람이 나와는 느끼지 못했던 더 큰 사랑을 느끼던지, 그 사람이 나에게 준 상처를 다 잊고 나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는지, 아니면 나에 대한 기억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고 떠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조차 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 사람이 행복하게 살 던 불행하게 살 던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의 삶이고 그 사람이 나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행복해하거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지금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 연인이 아니고 내 인연이 아닌 이상 그 삶이 어떤 삶을 살던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건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과의 기억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지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님이 남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남을 님으로 착각하는 것은 멈추도록 하자.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본인이다. 좋지 않았던 추억을 자꾸 떠 올리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자신이다. 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고 삶을 방해한다면 차라리 이건 해결 방법이 있다. 법을 이용하거나,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하지만 추억과 기억으로 괴롭다면 이건 내 집착이다.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에 집착하고 집착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 집착하는 자신을 보며 괴로워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후벼 파고 소금을 뿌리고 아물어 가는 상처를 다시 벌리려는 행동은 할 필요가 없다. 



어느 날 몸이 마음에게 물었다. 
난 아프면 의사 선생님이 치료해주는데 넌 아프면 누가 치료해주니?
그러자 마음이 말했다. 
나는 나 스스로 치유해야 돼...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이 아플 때 유용한 치유법을 하나씩 갖고 있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화를 내고, 웃고 울고...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여행을 가고, 마라톤을 하고... 
가장 최악인 것은 그 아픔을 외면해 버리는 것... 
나의 치유법은...
지금처럼 아침에 다가오는 시간에 케이크와 과자를 굽는 것...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도, 불같던 연애가 끝났을 때도, 실직을 당했을 때도... 
나는 새벽같이 작업실로 나와 케이크를 굽고 그 굽는 냄새로 위안을 받았다.
세상에 이렇게 달콤한 치유법이 또 있을까?



김삼순이 남긴 대사이다. 우리는 사랑의 실패뿐만이 아닌 다른 아픔들을 견디며 살아간다. 주변의 지인이 죽거나 다치거나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그런 기억들은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으며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기억을 가지고도 다시 일어서고 다시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사랑의 실패도 우리가 겪는 수 없이 많은 삶의 힘든 부분 중에 하나 일 뿐이다. 사랑이 삶에 있어 큰 부분이고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을 망쳐도 된다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남은 기억은 남은 기억이다. 떠난 사람을 붙잡고 싶지 않다면 머릿속 어딘가에 남은 기억에 대해서는 그저 잘 보관 해 두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지금의 삶에 있어 그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찾지 말자. 아직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 스스로 얽매이는 짓은 하지 말자. 과거에 매여 있는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시간이라는 약의 치유량은 얼마 되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 얽매여 현재의 행복할 수 있는 순간도 스스로 불행으로 만들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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