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호 Dec 15. 2021

나는 아내가 있었다(4)

몰이꾼을 처단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단순한 분노의 치기는 아니었다. 내 결심의 결과가 빛을 발하게 된다면, 나의 이 작은 행동 하나가 인류의 자유를 향한 첫 발걸음이 될 수도 있다. 깨어있는 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아직 세뇌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행동의 결과가 작은 불씨처럼 일어나 광야를 태울 불길로 솟아 오른다면 인류는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될 수도 있다. 그 날이 온다면 내 아내도 나에게 돌아 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회사 안에 기생하는 몰이꾼을 찾기로 결심한 뒤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관심있게 쳐다보기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내가 사라진 뒤로는 더 심해졌다. 그 전에도 밥 먹고 물어 오는 말들에 간단하게 답변만 해줬었다. 지금은 업무 외에는 어떤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휴게실이나 사무실을 돌아 다닐 때 나는 주의를 기울였다. 귀를 열었다. 걸리지 않을 정도로 곁눈 질을 했다. 별 것 아닌 행동 같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모든 집중을 쏟았다. 인생의 최대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을 하나 하나 관찰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얼굴이나 외형과 행동만으로는 몰이꾼을 찾아 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대화에도 귀를 크게 열었다. 휴게실이나 회사에서 하는 잡담, 대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회사 전부의 사람들을 관찰 할 수 없었기에 자주 눈에 들어오고 마주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김부장은 배바지를 입고 다니고 90년대에나 썼을 법한 안경을 쓰고 있다. 굉장히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이 높다. 똑똑한 듯 말을 하며 언제나 부동산에 대해 이야기 하고 다닌다. 젊은 직원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제대로 된 부동산을 사게 되었는지, 어느 지점에서 실패했는지 돈을 벌고 잃었음을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다. 가끔은 목소리가 너무 커서 휴게실을 넘어 사무실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에게는 창피한 일이 없었다. 실수로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산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은 일화도 굉장히 당당하게 이야기 했다. 아내에게 욕을 먹었다는 후일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과 걸어 온 삶에 굉장히 자부심이 있었다. 



성대리는 매우 화사한 차림으로 출근한다. 화장은 그리 진하지 않으나 붉은색 계통의 원색 옷을 자주 입는다. 키가 큰 편 임에도 하이힐을 신고 몸에 붙는 치마를 주로 입고 다닌다. 휴게실에는 커피를 마시러 오는데 주로 자신의 컵에 담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사람들이 말을 걸면 친절한 미소로 대답을 해주고 대화에도 끼지만 그리 긴 시간을 남아있지는 않는다. 주로 정시에 퇴근하는데 언제나 남자친구가 빨간색 외제차를 타고 그녀를 기다려준다. 



구차장은 언제나 정치 이야기를 한다. 정책에 대한 비판을 꽤나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한다. 사람들이 구차장과 대화를 하지는 않으나 그가 한 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박식함이 묻어나는 단어들을 주로 사용하며 마치 정치계를 직접 경험해 봤거나 그 쪽으로 인맥이 있을 법한 사람처럼 많은 정보들에 대해 줄줄이 꿰고 있었다. 정치 이야기 뿐만이 아닌 대화 그 자체에도 능해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능력도 탁월했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외형과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났지만 몰이꾼의 정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몰이꾼 그 사람 자체도 자신이 몰이꾼이라고 인식하지 못 했기에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자신은 평범한 인간이라고 믿게끔 세뇌된 사람이 어떻게 몰이꾼이라고 대놓고 행동하겠는가. 



지난하고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점점 몰이꾼의 정체를 찾아 낼 수 있다는 확신과 느낌이 가슴 속에는 차오르고 있었다. 느낄  수 있었고 알 수 있었다. 분명 이 안에도 몰이꾼이 있음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몰이꾼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잡게 되었다. 



석차장이었다. 1년 전에 이직해 온 사람이었다. 굉장히 평범하게 생긴 사람으로 이 사람에 대한 묘사는 아무리 자세하게 해도 평범함 그 자체였다. 존재감조차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언제나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삶이 무료하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지겹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