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윤아의 시점

by 호수를 걷다




THE OPERATION

5장. 거짓 – 장치


18. 갈증 (윤아의 시점)




어째서 나의 다른 부분을 궁금해하는가. 어째서 내가 하는 다른 이야기에 즐거워하는가. 어째서 지금의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가. 어째서 그는 나를 바라보지 않는가. 그 시선이 나에게 머물지 않고, 온 사방을 돌며 다른 곳에서 멈추는 것은 왜일까. 너무 많은 나의 이야기가 그에게 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일까.

아니, 애초부터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보지 않았다.


윤아는 그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곱씹었다. 어렸을 적 자신의 에피소드들, 주변의 이야기들, 가족과 있었던 사소한 기억들. 생각 없이 흘려보냈던 수많은 대화들이 머릿속을 떠올랐다.


어두운 새벽, 윤아의 집은 고요했다. 그녀는 그를 미행하고 그의 집에서 곧장 자신의 집으로 걸어 돌아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아주 정상적인 속도로.

그러나, 어떤 것이 ‘정상적인 속도’인지 장담할 순 없다.


그녀는 갈증이 났다. 컵에 물을 따르고 벌컥 마셨다. 다시 물을 따른다. 그녀의 머릿속에, 그의 방 안에서 본 장면들이 스쳤다. 비정상.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방 안 가득 걸려 있던 무수한 혜선의 사진, 그리고 그 사진들을 향한 그의 비밀스러운 시선.


그녀는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 어둠 속에서 산산조각 나는 유리 파편의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다시, 어둠과 적막이 깔렸다.


그녀는 건조한 표정으로 거실을 빠져나와 욕실 불을 켰다. 선반에 놓인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미동 하나 없었다. 그녀는 몇 번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며 숨을 고르더니,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마주했다. 곧 샤워기를 틀었다.

거울 속의 표정은 놀라울 만큼 익숙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정적인 얼굴, 감정 없는 얼굴. 누군가 말했던 바로 그 — 건조한 얼굴.

그녀는 자신의 머리 위로 샤워기를 올렸다. 물줄기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며, 담배를 적셨다. 젖은 담배가 찢어지고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흐르는 물을 맞았다. 숨이 막힐 때까지. 더 이상 숨을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젖은 필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제서야 그녀는 샤워기를 내렸다. 젖은 얼굴을 손으로 닦아냈다.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젖은 옷을 벗었다. 긴 타월을 몸에 감고 밖으로 나왔다. 세탁실에 옷을 내려놓고, 옆에 놓인 비닐봉투를 들고 아까의 선반 쪽으로 걸어갔다.


불을 켜고, 깨진 유리조각이 흩어진 곳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조각들을 봉투에 담았다. 실수로 유리잔을 떨어뜨린 사람처럼 —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분노도 슬픔도 없는 얼굴로.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짧은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유리조각이 담긴 비닐봉투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거실로 나왔다.


오늘은 아주 평범한 하루, 언제나 그래왔던 하루에 불과한 날이었다. 그를 제외한다면, 그녀에게는 어느 날과도 다르지 않은 날.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그런 날이었다. 그녀는 잠시 모든 생각을 멈췄다. 이상하게도, 아주 쉽게 기분이 좋아졌다.







THE OPERATION

https://brunch.co.kr/brunchbook/the-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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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다중성과, 사랑 속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다룬 심리소설입니다.

융의 ‘Self–Persona–Shadow’ 개념을 바탕으로, 기억과 망각, 침묵과 거짓 사이에서 존재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랑은 나를 하나로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가?”

사랑이 존재의 통합을 이루지 못할 때,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복제하고, 그 시선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정체성을 실험하는 심리소설이자, 복제된 자아의 시대를 사유하는 실존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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