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와 지만
20. 우리는 여기까지 (윤아와 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집 안은 고요했다. 그가 몸을 뒤척이며 고개를 돌렸을 때, 윤아는 멀리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가 죽는다고 해도, 나는 슬퍼하지 않아.”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담배를 내밀었다. 그녀가 담배를 내려놓는다.
“커피 마실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운을 걸쳐 입고 부엌 쪽으로 걸어가려다 멈춰섰다. 그는 이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너가 슬프지 않으면, 나도 상관없어.”
그가 커피를 내려왔을 때, 윤아는 이미 옷을 전부 챙겨 입은 후였다. 그는 침대 탁자 위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가야겠어.”
그가 그녀의 뒤에서 손을 잡으려다 멈칫했다.
‘가지 말라고 하면, 너가 가지 않을까?’
그녀가 문 앞에 섰을 때,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지 마.”
“우린 지금까지와 똑같아.”
그녀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사랑해.”
그녀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듯했고, 잠깐 인상을 찡그리더니 다시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누가 그랬어. 사람의 영혼을 사랑한다고. 그게 정말 사랑이래. 나는, 그런 영혼이 없어.”
순간 서로의 눈동자가 잠깐 마주쳤다. 곧 그녀가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언제까지가 될지 몰랐는데, 오늘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 친구야.”
“사랑해. 그런데, 넌 대답하지 않겠지.”
그녀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사랑해. 우린 친구니까.”
그녀가 문 앞까지 걸어갔을 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아무 말이라도 해봐.”
그녀는 문고리를 비틀며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갈게.”
그녀가 나가고 문이 닫힌다. 그는 그 자리에 남아있다.
그는 깊은 호흡을 내쉬고 침대에 앉았다. 햇살이 들어왔다. 커피는 아직 식지 않아, 잔 위로 김이 올랐다. 그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머지를 화분에 부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그녀의 말을 곱씹고 싶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했다. 이제 이 관계는 온전히 그녀의 문제였다.
‘더 이상 내가 생각하거나 노력해야 할 것은 남지 않았어.’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향기를 들이켰다. 그렇지만 아무 향도 맡을 수 없었다. 아무 향도 나지 않았다.
그는 눈을 떴다. 커피잔을 챙겨 거실로 나갔다. 책상 위에는, 그가 그녀에게 주었던 열쇠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여기까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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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다중성과, 사랑 속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다룬 심리소설입니다.
융의 ‘Self–Persona–Shadow’ 개념을 바탕으로, 기억과 망각, 침묵과 거짓 사이에서 존재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랑은 나를 하나로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가?”
사랑이 존재의 통합을 이루지 못할 때,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복제하고, 그 시선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정체성을 실험하는 심리소설이자, 복제된 자아의 시대를 사유하는 실존적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