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의 방

윤아와 인성

by 호수를 걷다




THE OPERATION

6장. 경계 – 리츄얼


21. 인성의 방 (윤아와 인성)




윤아는 인성을 기다렸다. 그의 비밀스러운 방, 의자에 앉은 채 어둠 속에서 그를 기다렸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완전히 밤이 되었을 때 인기척이 들렸다.


그가 방문을 열었을 때,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그의 방 — 혜선의 사진들로 도배된 낯선 공간 안에서.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해.”


그녀가 낮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당신을 힘들게 하고, 우리의 관계를 힘들게 해.”


윤아의 말에도 그는 어떤 불안한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내 생각을 해본 적 있어?”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누군가 그랬어. 아픔을 원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게 돼서 아픈 거라고. 근데 당신은 그래본 적 있어? 나를 미워해본 적 있어? 나를 보고 즐거웠던 적 있어? 행복했던 적은? 슬펐던 적은? 아니, 나를 ‘본 적’은 있어?”


그녀는 그를 바라봤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그대로 서 있는 그가 보인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수십 번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윤아의 눈빛은 이미 오래전에 빛을 잃었다. 말라붙은 동공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난 그 눈빛을 사랑해. 그런 느낌이 있어. 그 영혼을 느낄 수가 있어. 그게 나한테 꼭 맞는 영혼이야.”


그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미쳤어.”


“미치거나 미치지 않았다는 정의가 중요해?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는 고정관념일 뿐이야.”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은 뭐였어? 나는 당신에게 뭐였어?”


그녀는 휘몰아치는 격정적인 감정 속에서도 애써 이성적으로 말하려 했지만, 그건 감출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누구를? 대체 누구를 사랑했단 말이야?”


“너를 사랑했어.”


그녀가 그의 가까이 다가왔다. 조근한 목소리로, 그의 등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 우리는 분명히 사랑했어.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어. 그런데 그때 당신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당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기 전까진 나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어. 그런데 당신은 뭐야? 당신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당신은 정말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는 느껴본 적이 있는거야?”


“나도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알아. 나도 사랑을 했어. 아주 많이.”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 알았으니까 제발 나를 좀 봐.”


윤아는 그의 고개를 자신 쪽으로 돌려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를 본 순간, 그녀는 손을 내리고 천천히 뒷걸음쳤다.


“누굴 사랑했어?”


“당신을 사랑했어.”


인성은 ‘사랑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차라리 혜선을 사랑했다고 말해줘.”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그녀는 처음부터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고, 여전히 부재 속에 있었다. 그래서 그의 거짓말이 그녀를 한계로 몰았다. 그녀는 오로지 이 공간, 이 문제, 그리고 그와 자신만이 존재하는 절망의 세계에 서 있다.

윤아는 수북이 쌓여 있는 사진들을 모두 던졌다. 온 방에 사진이 펄럭이며 흩날린다.


“정말로 누굴 사랑했어? 누굴 사랑한 거야? 난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그래, 당신은 사랑을 하고 있겠지.”

그녀는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사진, 그 심장. 심장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게 당신이 이곳에서 해야 할 작업이었어? 스토커 짓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이용하면서까지?”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해리가 이 근처 저 앞에서 항상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가끔 일기를 쓰거나 노래를 부를 때면 문을 열어놨거든. 하루에도 수십 번,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지. 그녀는 사랑받고 싶어했어.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해주고 싶었어.”


“혜선은 그 여자가 아니야.”


그녀는 관자놀이를 세게 눌렀다. 잠시 뒤 그는 그녀와의 만남이 기억나 나지막한 소리로 말을 꺼낸다.


“기억해? 내가 처음 온 날, 너는 나한테 보드카를 줬어.”

그녀는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친구의 바에서였다.


“그래. 그곳은 항상 술로 넘쳐나니까.”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즐거운 표정이냐고 물었던거 기억나? 나는 그때 그녀가 다시 태어나는 날이라고 말했어.”


그녀는 멈칫했다. 그리고 뒷걸음치며 멀리 떨어졌다.


“심장은 말을 해. 심장은 모든 걸 느껴. 영혼은 심장과 함께야. 너는 이 말이 이해가 안 돼?지금 혜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해리를 찾으러 갔지. 나는 다 알고 있었어. 그녀는 ‘처음’이 되어 돌아온 거야.”


“당신은 나를 이용했어.”


“이용한 게 아니야. 우린 우리의 방식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도 난 당신을 사랑해.”
그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야.”
그녀의 싸늘한 표정으로 냉정하게 쏘다붙였다.


“네가 처음 했던 말이 뭔지 알아? ‘넌 사랑을 모른다’였어. 내게 사랑을 가르쳐 달라고 했지. 그건 애원이었어. 네가 나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나는 너 곁에 있었고, 또 나 역시 네가 필요했기 때문에 너를 곁에 둔 거야. 그건 나쁜 게 아니야. 그것도 사랑의 방식이야. 그게 우리의 사랑이야.”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윤아와의 끝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차분하고 조용했다.


윤아는 책상 위의 탄산수를 따르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난 당신을, 처음으로, 진심으로 사랑했어. 말해줘. 당신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만 말해줘. 그렇다면 인정할게. 보내줄게.”


“난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혜선은?”

“혜선. 그녀는…”


“그녀의 심장을 갖고 있는 혜선이 좋다는 거야? 지금도 그녀가 보여?”


그는 순간 아무말 하지 않았다.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불안한듯 고개를 작게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에 살짝 손을 가져다댄다.


“그녀의 심장. 사과의 향. 그 소리가

“당신이란 사람은 말도 안 돼.”


그녀는 벌떡 일어나 담배를 탄산수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그녀는 시간이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 어딘가가 비어 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그녀를 두렵게 만들 것이다.







THE 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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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다중성과, 사랑 속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다룬 심리소설입니다.

융의 ‘Self–Persona–Shadow’ 개념을 바탕으로, 기억과 망각, 침묵과 거짓 사이에서 존재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랑은 나를 하나로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가?”

사랑이 존재의 통합을 이루지 못할 때,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복제하고, 그 시선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정체성을 실험하는 심리소설이자, 복제된 자아의 시대를 사유하는 실존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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