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혜선의 시점

by 호수를 걷다



THE OPERATION

6장. 경계 – 리츄얼


22. 경계 (혜선의 시점)




“자기를 통제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이 불안으로부터 약한 저를 보호해 주세요. 쓸모없는 두려움과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어리석은 저를 도와주시고, 현명하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진실로 신뢰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어둠 속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나처럼 침대에 누워, 혜선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계속해서 자신의 나약함을 되뇌었다.

잠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방 안에서는 시계 초침 소리만 째깍거렸다. 그리고 순간, 그녀가 눈을 떴다. 온전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느낌이 스쳤다. 아주 잠깐동안 잠이 들었던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로 향하는 동안, 속삭이듯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자기를 통제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이 불안으로부터 약한 저를 보호해 주세요. 쓸모없는 두려움과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어리석은 저를…”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고 변기 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때, 반쯤 열린 문 밖으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이전의 잡음과는 달리, 분명한 목소리였다.


“두렵지? 넌 지금 너무 두려워 보여. 그게 아주 정확하게 보여. 아닌 척하지 말고, 도망치려 하지 마. 넌 그 두려움이 무엇 때문인지도 알고 있잖아.”


혜선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반쯤 열린 문 뒤편 어둠 속에서, 한 여자가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느낌. 그런데 이상하게 편안했다. 혜선은 양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


“괜찮아.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


그녀가 천천히 다가와, 혜선의 손을 잡았다.


“알고 있어. 너의 아픔을, 너의 불안을. 내가 이해하고 있어.”


혜선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자기 자신을 마주했다.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붙어버린 듯했다. 그리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녀는 결국 기절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자기 전과 꼭 같은 자세, 엄지로 십자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침대 벽에 기댔다. 양팔로 움츠린 몸을 감싸 안았다. 한참 동안 벽에 기대 앉아, 손끝에 남은 온기 — 자신이 건넨 손의 체온을 잊으려 애썼다.


혜선은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겼다.


‘일어나지 않은 일는 존재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인가? 일어난 일을 존재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잘못된 일인가? 아니면, 일어난 일을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 잘못인가?’


그녀는 완전히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이 일의 종지부를 찍을 열쇠를 찾아냈지만, 그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면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실행하지도 못했다. 불안은 계속 커져만 갔다.


혜선은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이 힘겨웠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보라색 진한 향기가 몸을 감쌌다. 처음 맡아보는 체취였다. 그녀는 눈을 뜨고,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사실인가, 거짓인가? 아무것도 없다는 건, 처음엔 존재했다는 뜻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아무것도 없음’을 어떻게 알 수 있지? 불가능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 자체가, 이미 ‘무엇인가 있음’으로 인해 가능해지는 거니까. 그렇다면, 존재할 수 없는 생각이란 무엇일까? 실제로 존재하지 못하는 생각도 존재하는가?‘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그건 거짓말.”


그녀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온몸에서 낯선 향기가 났다. 사랑스러운 얼굴이었지만, 허망하고 낯선 표정이었다.

그녀는 이미 결정된 곳으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걸어갔다. 머리 한켠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맴돌았다.


‘거짓말은 아무것도 아닌가? 존재한 것인가? 존재했지만 사라진 것인가?’


그녀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윤아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윤아 앞에 떨어진 칼을 발견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칼을 집어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가 쓰러졌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너무 가벼운 표정이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걸어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바로 뒤에 서 있던 남자는 그녀와 눈이 잠시 마주쳤지만, 서로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남자는 쓰러져 있는 윤아를 안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물론, 뒤처리를 말끔히 한 뒤에.







THE OPERATION

https://brunch.co.kr/brunchbook/the-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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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다중성과, 사랑 속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다룬 심리소설입니다.

융의 ‘Self–Persona–Shadow’ 개념을 바탕으로, 기억과 망각, 침묵과 거짓 사이에서 존재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랑은 나를 하나로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가?”

사랑이 존재의 통합을 이루지 못할 때,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복제하고, 그 시선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정체성을 실험하는 심리소설이자, 복제된 자아의 시대를 사유하는 실존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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