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아르코스 - 산 솔 (5km)
공립 알베르게에서 자본 것은 처음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1년 내내 문을 열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서 그런지 침대 쿠션이 푹푹 꺼져서 없던 요통도 생길 지경이었다. 몸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껴서, 오늘은 쉬어가는 느낌으로 천천히 가보기로 했다. 5km 떨어져 있는 마을 산 솔(San Sol)을 오늘의 베이스캠프로 정하고 공립 알베르게에서 체크아웃 시간까지 최대한 미적대다 8시 넘어서 출발했다.
늦게 출발해서 해가 점점 높이 뜨고 별로 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거리는 쉽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멀리서 작은 마을이 보이길래, 지도상으로 보았을 때 저기가 산솔이겠구나, 조금만 더 가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그 마을은 거짓말처럼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30분쯤 지났을 때 그 마을은 조금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득히 멀리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쩌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신기루가 아닐까, 내가 몸이 정말 안 좋긴 하구나 등등의 생각을 하며, 누가 보면 이틀 연속 쉬지 않고 걸어온 순례자의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도착 시간이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어서, 선착순으로 순례자를 받는 알베르게들이 만석이 될 리는 없다는 생각에 예약도 없이 평점 괜찮은 알베르게를 찾아갔는데 세상에, 컴플리토(만실)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나? 누가 봐도 머무는 순례자들 없어 보이는데? 나 받아주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 정도를 말할 영어실력도, 스페인어 실력도 없었기에 진짜냐고 되묻기만 했더니 사람의 이름으로 가득 찬 베드 리스트를 보여준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면서 아까 지나온 마을 입구에 있는 알베르게에 전화를 걸어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혹시 그 사이에 누군가 예약할까 봐) 내 자리를 예약하고 그곳으로 갔다. 다행히 자리는 많아 보였지만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서 알베르게에서 같이 운영하고 있는 바의 야외 파라솔 밑에 앉아 오믈렛 하나 시켜 먹으며 일기를 썼다. 아마도 나와 같이 신기루(?)를 보며 걸어왔을, 힘겹게 내 숙소를 지나쳐 걸어 다른 마을로 향하는 다른 순례자들에게 안녕을 바라는 손인사를 건네면서.
오후 즈음부터 순례자들이 체크인, 혹은 식사를 하러 들어오면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들도 몇 명 오셨다. 대부분의 순례자가 지나치는 도시에서 묶게 된 반가움 때문인지 함께 앉아 맥주와 오믈렛 먹으며 이야기하면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내가 산솔에서 처음 갔던 알베르게는 외국인 순례자들이 단체로 이동해서 미리 예약한 것이라고 한다. 운 좋게 만실이 되기 전에 예약해서 그 숙소에서 묶는다는 한국인 J커플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다행히 내가 인종차별(?)을 당한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얼떨결에 오긴 했지만 지금 내가 묶는 알베르게도 깔끔하고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의 밤을 지내고 알베르게에 묶는 동안 한국사람을 이렇게 많이 만난 것은 처음이라 반가운 마음에 이른 오후부터 밤까지의 긴 저녁식사를 즐기고 함께 추석맞이 보름달 구경, 일몰 구경까지 했다. 우리 모두 지치지 않고 산티아고까지 완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유튜브 영상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