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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파 Mar 11. 2020

산티아고 가는 길 - 열두 번째 날

산토도밍고 데 라 칼자다 - 벨로라도 (24km)


안녕, 산토 도밍고....!!



  5시 40분쯤 잠깐 깼는데 많은 한국분들이 어둠 속에서도 부지런히 짐을 챙기고 있는 게 어슴푸레 보였다. 정말 다들 대단하시다. 난 6시 조금 넘어 간신히 일어나 씻고 짐 싸고서 식당 한쪽에서 빵에 고추장을 찍어서  간단히 아침 먹고 7시 15분쯤 출발했다. 어제 미사 드렸던 성당 앞을 지나가는데 어렴풋이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 성당의 닭 울음소리를 듣는 순례자에게 행운이 있다는 전설이 있어서 괜히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떠나는 순례자도 있다는데 그걸 생각하면 나는 축복 버프를 굉장히 쉽게 얻은 셈이다.

 

산토 도밍고를  떠나며. 뒤돌아본 도시는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동차가 다니는 꽤 긴 다리를 건너고 나자 성모자의 상이 제대에 있는 작은 예배당이 보인다. 문은 닫혀 있어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보고 다시 걸으면서 내가 떠나온 산토도밍고라는 도시의 이름의 기원이 된 성인을 생각했다. 


  수도회에 입회하고 싶었지만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입회가 거절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수도사와 같은 삶을 살았다. 위험하고 중구난방이던 산티아고 순레길을 지금의 모습 가까이 정비해서 많은 순례자가 안전하게 산티아고까지 갈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내가 조금 전 건넌 다리도 산토도밍고가 만든- 물론 수백 년이 지나 지금은 자동차까지 지나다닐 정도로 크게 확장되고 보수했겠지만-것이라 한다. 평생을  그렇게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으로 살아, 결국 성인품을 받고, 천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 같은 순례자에게 기억되고 있는 사람. 아주 잠깐이나마 산토도밍고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발을 내디딘 내 앞은 해뜨기 직전, 신비로운 달빛 속에서 안개 자욱한 길이었다. 어제 내렸던 비 구름이 아직 조금 남아있는 것 같았다. 



철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순례자



  오르막을 올라가자 크진 않지만 오래된 철 십자가가 보였다. 순례길을 걸으며 출발한 지 30분 정도 지나서(가 주로 어느 정도 방향도 잡고, 복잡한 마을과 도시에서 빠져나와 차분한 시간이라)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들었는데 나는 이 철 십자가 앞에서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와 죽기 전날 밤에 있었던 세족례를 떠올렸다. 누군가 자신의 부츠를 벗기고 물집을 짜내고 발을 씻겨 줬다는 가이드북 속 저자의 경험담처럼 나도 그렇게 다른 이들의 발을 씻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안개 가득한 오르막을 넘어가니 그라뇽이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좁은 골목에 아기자기한 벽돌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예쁜 마을이었다. 로스 아르코스에서부터 계속 같은 숙소에 묶고 있는 S, D, 도현 씨를 다시 만났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에서 간단한 커피와 아침을 먹는 그들 옆에 앉아서 (난 이미 고추장 빵을 먹었으니) 발가락만 말리며 이야기를 좀 나누다 다 같이 또 길을 나섰다. 그라뇽의 외곽은 한참을 완만하게 내려가야 하는 내리막길이라, 나는 또 ‘스쾃 걷기’로 무릎을 굽힌 채 두다다다 내려가는데 내 뒤에서 오던 그 사람들은 그게  너무 웃기다며 한참을 웃어댔다.




좀비 해바라기 밭


 

  어마어마하게 넓은 야트막한 구릉의 대부분은 해바라기 밭이었다. 정확히는 해바라기였던(?) 식물들이 꽂혀있는 밭이었다. 노란 꽃잎, 초록색 줄기는 간데없고 짙은 갈색의 줄기와 갈색의 낙엽 같은 꽃잎, 그리고 그보다 더 시꺼먼 씨들이 빽빽이 박혀있는, 해바라기판 좀비라고 하면 상상될 법한 그런 모습의 식물들이 가득했다. 수확하는 걸 잊었다고 생각하기엔 밭의 범위가 너무 넓었기에, 나는 혹여 밭의 주인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그런 걱정도 비슷한 밭이 7~10 km에 걸쳐 계속 보이자, 스페인의 해바라기 재배 산업에 대한 걱정으로  바뀌었다. 해바라기에서 사업적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이 해바라기 씨라는 건 당연하지만, 이렇게 썩어가는 해바라기씨라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걱정이었다. 많은 이들이 길 가에 그렇게 덩그러니 꽂혀있는 해바라기의 몸체에서 씨만 몇 개를 뽑아서(?) 글자를 만든 것을 보았다. 아마 한국인의 손길이 닿았을 법한 어떤 해바라기는 태극문양을 하고 있었다.


   뭔가 남길만한 메시지는 없었기에 해바라기씨 한 개를 뽑아 껍질을 살짝 벗겨보았다. 하얀 씨앗이 드러난다. 맛을 살짝 보니 썩었다기보단 설익은 맛이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아직도 씨는 익어가는 중이었던 건가 보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다르지 않은 듯했다.


까미노를 벗어나 큰 길을 건너가서 먹은 두 번째 아침 식사.



  와인의 고장(?) 리오하 주를 벗어나 레온주에 들어섰고 몸이 좀 풀린 건지 탄력이 붙어 부지런히 걷는 S, D는 저만큼 앞서가고 난 따로 떨어져 구글 맵으로 레스토랑-바를 검색해 루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큰 길가의 기사식당 같은 곳에서 커피와 오믈렛을 시키고 발을 말렸다.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같은 방법으로 식당을 찾아온 건지 도현 씨가 합석했다. 같이 쉬다 다시 걸어 산토 도밍고가 태어났다는 마을을 지나 비야마요르에서 나 혼자 발 말리며 조금 쉬었다. 내일 묵을 숙소를 어설픈 스페인어로 예약하고 있으려니 바로 전 마을에서 쉰다던 도현 씨가 발 잘 말리라며 손 흔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벨로라도의 거리에 있던 손/발 발자국 동판. 무엇인진 아직도 모르겠다.



도착, 그리고 비



  그 뒤로도 한참을 걸어 드디어 벨로라도 도착했다. 조금 더 걸어 마을 한가운데의 숙소 앞에 왔는데, 숙소 입구부터 줄이 장난이 아니다. 얼핏 봐도 내 앞으로 10명은 훨씬 넘는 사람들이 순례자 여권과 돈을 꺼내 들고 체크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1시 3분이었는데 알베르게가 1시에 오픈했고, 지금은 줄 서 있던 사람들의 체크인이 막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새벽부터  준비해서 일찍  걸은 한국인 순례자들은 이미 다 체크인했고 나도 (예약은 했지만) 한참을 기다렸다 간신히 체크인하고 샤워하고 쉬었다. 그 사이 먼저 도착한 한국분들은 주방에서 늦은 점심을 만들어먹기 위해 분주하다. 재료비를 추렴해서 쇼핑하고, 몇 사람은 요리를 하고, 몇 사람은 뒷정리를 한다고 한다. 나도 밥값을  조금 내고 합석해서  점심인지 간식인지  알 수 없는 끼니를 맛있게 먹었다.  


  마을 구경을 조금 해볼까 싶었는데 무시무시하게 비가 쏟아진다. 숙소 마당에 널어둔 빨래를 황급히 걷어 급한 대로 내  자리 건너편의 2층 침대 난간 사이에 들고 다니던 케이블을 연결해서 간이 빨랫줄을 만들어 옷가지들을 널어두었다. 내일 먹을 음식과 물을 사야 해서 슈퍼에 가야 했는데 우비를 꺼내 입었다간 다음날 짐 쌀 때까지 마르지 않을 거 같아 비가 살짝 잦아든 틈을 타서 슈퍼까지 냅다 달려갔다. 빵과 물 등을 사서 빗속을 뛰어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알베르게의 2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다른 나라의 순례자들과 합석해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유튜브에 영상이 있습니다

>>> https://youtu.be/ee2PMYHlk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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