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디야 데 라 쿠에자 - 사아군(20km)
5시 40분. 늦게 일어난 건 아닌데도 내 양 옆 베드 위아래는 이미 사람이 없다. 전에 만났던 한국분들도 엄청 부지런했는데, 이번에 만난 한국분들도 부지런한 건 똑같았다. 이 길을 걷는 한국인들 중에서 내가 제일 게으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접어두고 내 옆의 2층 침대에서 묶었던 Y 씨와 이야기하며 짐을 정리했다.
2층 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경우에 짐을 정리하려면 일단 2층 위에 벌려둔 짐을 긁어 모아 침대의 사다리 안쪽으로 정렬시켜놓고 사다리를 내려간다음 다시 짐을 긁어모아 가방에 쑤셔 넣고 적당한 곳으로 이동해서 짐을 정리해야 한다. 1층 침대에서 자고 있는 다른 순례자가 있는 경우 최대한 방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상하 좌우의 다른 순례자들이 모두 일찍 떠난 상황이라면, 침대 옆에 선 채로 2층으로 손을 뻗어 내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짐을 챙겨 나와 어제 점심을 먹었던 가게에 가서 아침메뉴를 주문했다. 4유로인데 주스, 차, 바게트 4조각에 버터와 잼. 뭔가 부실한 느낌이었지만 아쉬운 대로 야무지게 먹어치웠다.
약간은 쌀랑했지만 그래도 비가 오진 않아 어제보단 덜 추운 느낌이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별들 사이를 헤엄치는 기분으로 걷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이내 곧 어제처럼 구름이 짙어지며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동이 틀무렵 가느다란 빗방울이 날리듯이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재빨리 우비를 꺼내 뒤집어쓰고 걸었다. 비는 얼마 안 오다 그쳤지만 넣기도 귀찮고 언제 또 비가 올지 장담할 수 없어서 우비를 몸에 두른 채로 레디고스에 도착했다. 황량한 마을에 문 연 작은 바에서 포장된 채로 파는 크로와상 하나를 사서 먹고 발을 말리다 다시 출발했다.
흐린 하늘과 평야와 길게 뻗은 오솔길.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면서 모라티노스에 진입했다. 누가 봐도 호빗의 집처럼 생긴 저장고와 그 앞에 있는 ‘호빗 없음’ 표지판을 보고 혼자서 빵 터졌다. 거대한 무덤, 혹은 작은 산 정도로 보이는 흙 무더기 중간중간에 아이들이 드나들면 적당할만한 작은 문들이 달려 있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바로 호빗의 집을 연상할 비주얼이라 그런지 그 앞엔 ‘이곳엔 호빗이 살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영어와 스페인어 표지판이 있었다. 주로 와인을 저장하는데 와인 뿐 아니라 각종 식료품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는 저장고라는 내용을 안내서적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저장고가 보이는 바는 마을 입구에 있어 쉬어가기 딱 좋아 보였지만 바람이 좀 센 편이라 바람은 덜 드는 곳에서 발을 말리고 싶어 마을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아서 바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는데 마침 마을 놀이터 한쪽 벽에 벤치가 있길래 그쪽에 앉아서 발을 말렸다. 바람도 막아주고 배낭도 넉넉하게 둘 수 있어서 발을 말리면서 가방에 싸 두었던 빵을 꺼내 먹었다. 아침에 다 먹지 않고 남겨서 가져온 잼과 버터를 찍어먹으니 그럭저럭 요기가 되는 것 같았다.
마을을 빠져나와 탁 트인 완만한 구릉 양쪽으로 두 갈래 길이 보였다. 둘 다 까미노였고, 사아군으로 가는 길이엇지만 한 길은 자동차 도로 옆으로 나있는 길로, 크게 돌아가지 않고 사아군까지 직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었던 반면 다른 쪽 길은 크게 돌아가는 대신 야트막한 구릉을 지나는 길이라 조금 더 자연친화적인 길이었다. 잠깐 고민하다 시간도 넉넉하겠다 뒤의 루트를 골랐는데 초반엔 경치가 좋다가 조금 더 걷다 보니 주먹만 한 자갈이 가득한 자갈길이 나타났다. 발목과 고관절이 삐그덕거리는 걸 애써 잡아가며 멀리 보이는 사아군을 향해 걸었다.
늘 그렇듯이 도시나 마을이 보이기 시작해도, 다 도착한 게 아니다. 아직도 갈 길은 한참 남았다.
6시 40분에 출발한 지 약 5시간 만에 사아군에 입성했다. 마을 입구 쪽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를 지나쳐 내가 예약한 수도원 호스텔에 입성했다. 가격이 무려 5유로로 엄청 저렴한데, 한 방에 침대로 4개뿐이고, 그나마도 한 방에 다 몰아넣지 않고 한 방에 2명 정도만 배정해서 욕실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정말 가성비가 훌륭한 알베르게였다. 호스텔을 운영하는 수도회 신부님들도 굉장히 친절하셨고 최신시설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관리되는 내부의 모습을 보니 호감이 절로 생겨났다. 내가 배정받은 욕실의 샤워기 헤드가 없어 호스로 줄줄 흐르는 물로 샤워를 해야 했음에도 화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체크인 먼저 하고 짐을 던져두고서 알베르게 바로 건너편에 있는 마트에 가서 구워 먹을 양송이와 맥주와 빵, 바나나와 바나나 비슷하게 생긴 수상한 과일과 물을 사서 돌아왔다. 샤워 + 빨래 + 널기를 마치고 나서 얼마 전에 사두고서 가방에 고이 모시고 다녔던 너구리 라면 한 봉지를 꺼내 알베르게의 작은 주방에서 끓였다. 양송이 몇 개는 라면에 썰어 넣고 몇 개는 프라이팬에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려 구워 마당으로 가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늦은 점심을 즐겼다. 그리워하던 한국 라면의 맛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고 로그로뇨의 양송이 타파스가 생각나 사본 양송이도 굉장히 맛있었다.
마을 구경을 나서는데 마침 시에스타라 문을 연 가게 없이 휑한 풍경이다. 오래된 성당과 오래된 길들을 구경하다 들어와서 낮잠이나 좀 자볼까 했는데 같은 방을 쓰는 Sue가 웬 인증서를 보여주며 자랑한다. 대체 저게 뭐지? 싶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사아군이 프랑스길 780 km여정의 중간지점이고, 그래서 이곳에서 절반을 걸었다는 인증서를 준다는 것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모두 마치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완주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중간 지점에서도 이런 걸 주는 줄은 몰랐다! 완주 인증서를 가지고 어딘가에 제출해서 취업하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하나 갖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끝까지 마치지 못한다면, 이 절반을 걸은 완주증이라도 있으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그럼 나도 그 ‘절반 인증서’를 받겠다고 나섰다. 어디에서 받는 건지 수가 설명을 해주려고 했지만 둘 다 처음인 도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전혀 다른 상황에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나를 데리고 직접 길을 안내해주었다.
아까 산책할 때 갔던 산 베니토 아치와는 반대방향으로 조금 걸으니, 꽤 높은 언덕 위에 장엄하게 서있는 성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고 수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고 나는 그 성당을 향해 언덕을 올라갔다. 작은 도시라 동네 구경은 다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언덕 위에 있는 성당은 돌아다닐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건물이다. 수가 아니었다면 이것도 그냥 지나쳤겠지 싶은 생각이 들어 새삼 감사해졌다.
오전과는 다르게 해가 쨍쨍한 멋진 날씨였지만 바람이 꽤 많이 불어 춥다는 느낌은 없었다. 성당의 입구엔 중년의 남자 한 분이 서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이 성당 관리인이나 직원일 줄 알았는데 그 사람도 인증서를 받으러 온 순례자였다! 인증서를 발급하는 기념 사무실이 시에스타로 휴식 중이라 4시 반에 문을 연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왔다는 그와 짧은 영어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우리 뒤로 사람들이 하나둘 씩 줄을 서기 시작한다.
곧 4시 반이 되니 어디선가 직원이 나타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꽤나 널찍한 공간에 순례자와 이 성당과 관련한 기념관이 있었고 한쪽 구석의 작은 유리 부스 안에서 매표업무와 인증서 발급 업무를 겸하고 있는 듯했다. 슬쩍 보니 한쪽에서 파는 사아군 관련 기념품 중에서 휴대용 배낭이 있는 게 보였다. 안 그래도 동키로 배낭을 보내려면 중요물품과 간단한 간식, 물 등을 가지고 다닐 작은 배낭이 필요했는데, 저게 딱이다 싶었다. 인증서에 들어갈 내 이름을 정자로 적어서 직원에게 건네고, 배낭에 인증서 그대로 넣었다간 하루도 안가 구겨질게 뻔하니 모양을 유지해줄 원통의 보관함과, 배낭과, 인증서 발급비용까지 6유로를 주고 기념품 쇼핑(?)을 마쳤다. 고풍스러운 성당을 좀 구경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에서 5시에 티타임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참여하려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오래된 수도원 한쪽에 마련된 작은 공간은 어쩌면 가끔 미사를 드리는 소성당으로도 쓰일법한 방이었다. 한쪽 테이블엔 커피와 차, 주스 등 간단한 음료와 개인용 컵들, 간단한 다과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방 안쪽에는 의자들이 둥그런 모양으로 마주 보게 배치되어 있었다. 미드에서 많이 보던 ‘그룹상담’의 대형이었다. 낯선 경험에 조금은 긴장된 상태로 여덟 명 정도 되는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권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영어로만 소통하는 티타임이었는데 까미노 여정 통틀어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몇 가지 농담은 알아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남들 다 웃을 때 못 웃으면 너무 슬프니까)
미국인 두 명, 브라질에서 두 명, 영국인 한 명, 한국인 한 명(나), 그리고 호스트인 프랑스 출신 신부님 한 명이 각자 이름과 출신 국가를 돌아가며 소개를 마쳤다.
영국인 : (프랑스인 신부님을 바라보며)그럼 우리만 유럽 사람이군요
프랑스신부님: 우리가 유럽이라고요?
영국인: 네. 저는 영국에서 왔으니깐요..
프랑스신부님: 영국이 유럽인가요?
영국인 : 네. 그렇죠!
프랑스신부님 : 네..그런데 유럽 소속으로 얼마나 남았죠? ( Yes, but....How long left?)
일동 : 워어어...!
몇 년 전의 브렉시트의 투표 결과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오래된 껄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은 신부님의 재치 있는 견제에 진정하라는 듯한 제스처와 웃음을 주고받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순례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던졌던 농담(.. 반 진담 반)이 아니었을까.
그 뒤로도 한 시간 정도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 이야기를 이곳에 남기진 않으려 한다. 기억이 잘 안나는 이유도 있고, 내 영어실력이 좋지 않아 거의 못 알아들은 이유도 있지만(사실 이게 제일 크다) 잠시나마 소중한 순간을 공유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이기에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유튜브 영상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