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푸엔테 라 레이나 (20km)
전날보단 먼 길을 가야 해서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팜플로나 시내에서 볼일이 있어 너무 일찍 출발할 수는 없었다. 할 일은 바로 우체국 가서 캐리어를 산티아고로 부치는 것..! 전날은 일요일이라 우체국에 갈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다음날 모든 짐을 챙겨 출발과 동시에 우체국에 들러 캐리어를 부치고 그대로 남은 길을 간다는, 그런 계획이었다.
전날 미리 봐 둔 우체국에 도착한 것은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8시 30분부터 업무 시작 이래서 8시에 숙소를 나섰는데 우체국이 생각보다 가까워 내 예상보다 조금 더 빨리 도착해버린 것이다. 아침이라 많이 쌀쌀해서 살짝 문 열린 틈으로 안에 들어가 대기하려 했더니 무서운 가드가 막고서 8시 30분에 문 여니 그때 오라고 나를 내보낸다. 그래 룰은 룰이지. 크고 무서운 철문 앞에 누가 봐도 순례자의 복장을 하고서 누가 봐도 산티아고로 보낼 캐리어를 세워둔 채 한참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내가 대기 1번이었고 내 뒤로도 우편 업무를 보려는 팜플로나 시민(처럼 보이는 분)들이 몇 명 대기하고 있었다. 우체국 안에 들어서자마자 번호표 기계가 보여 반사적으로 뽑으려고 했는데 터치스크린에 뭔가 글자가 있고 선택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아마 한국 우체국의 금융업무, 우편 업무와 같은 용도에 따른 구분이겠지만, 영어로도 모를 판에 스페인어로 적힌 두 가지 선택지를 보며 동공 지진이 일어날 무렵 바로 뒤에 서 있던 양복차림의 스페인 사람이 받는 방법을 알려주어 내 대기표를 무사히 뽑았다.
1번 손님이라 뽑자마자 거의 바로 띵동 소리가 들렸고 그곳에서 내 캐리어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고 도착지인 산티아고와 도착 예정 날짜인 10월 9일 즈음을 이야기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계산하려고 큰돈과 여권이 든 파우치를 꺼내려는 순간!
난 기억해냈다.
호스텔에서 침대 하나마다 배정해준 개인용 락커.
그 락커에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소중하게' 내 여권케이스를
통째로 넣어 두었던 것을!!!!!!!!
5, 10유로 단위의 작은 돈과 신용카드를 배낭 허리 주머니에 달고 다니고, 100유로같이 큰 단위의 돈은 여권과 같이 소중하게 보관하다 어쩌다 한 번씩만 깨서 썼기에 100유로 꺼내려다 여권까지 두고 온 걸 알았지, 돈을 통째로 한 곳에 넣어 두었다면 여권을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다음 도시까지 갈 뻔했다......... 고 정신적인 위안을 하며 우체국의 일을 마무리하고 (신용카드가 있어 그걸로 결제했다) 다시 호스텔로 향했다.
호스텔은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어 리셉션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지금 팜플로나가 아니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단다. 정식 업무 시간인 10시가 되어야 숙소로 돌아올 텐데, 그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오고 가는 사람 덕분에 문이 열리길 기다려야 한단다. 해는 뜬 지 한참 되었고 하루의 걷기를 시작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인데 거기서 더 지체해야 한다니...!
난 내가 묵었던 방의 창문 아래로 가서 내 맞은편 침대를 썼던 이탈리아인 리사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순례가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던 그녀가 내가 나가기 전까지도 침대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있던걸 기억했기 때문에 부디 그녀가 침대 옆에서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들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았고 시간은 어느새 9시가 넘었다. 이대로 리셉션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싶은 순간, 아침식사를 사 먹고 돌아오는 것 같은 여행객의 무리가 호스텔 건물 방향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걸어가 인사를 하고 이 호스텔에 묵으시냐, 나도 어제 여기에서 잤는데 놓고 간 물건이 있어 다시 올라가는 거다, 여러분 만나서 정말 고맙다 등등 묻지도 않은 말을 되지도 않는 영어로 줄줄 늘어놓으며 그들이 (나도 지난밤에 받았지만 아침에 체크아웃하며 리셉션의 책상 위에 두고 나왔던) 열쇠로 열어주는 문을 붙잡고 호스텔로 돌아가 락커를 열고 무사히 내 여권과 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잃어버리지 않게 가방 깊숙이 잘 넣어두고 드디어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꽤나 큰 팜플로나 시내를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일요일인 전날보다 활발한 월요일이라 그런 건지, 아침의 소동으로 혼이 반쯤 나가서 그런 건지, 길을 걷는 도중 까미노 싸인을 두 번이나 놓쳐서 출근하는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나와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 씩씩하게 걷던 미국인 미아 동지(?)는 간신히 조가비 모양을 발견해 방향을 바꾸면서 도시보단 시골길이 좋다고 고개를 저었고 나도 정말 십분 동감했다.
그렇게 팜플로나 시내를 빠져나와 시골길을 지나 산길로 진입하고 나서는 한 시간 만에 나는 다시 도시의 길이 좋아졌다. 첫 번째 마을이 나올 때까지 내 머릿속엔 화장실 생각밖에 없었다. 사리키에기(Zariquiegui)에서 성당 스탬프도 찍고 식수도 받고 간단하게나마 점심(빵+오믈렛) 먹고 다시 지옥의 오르막을 올랐다.
생 장에서 출발 이후 그동안 캐리어를 다음 마을로 이송시키면서, 어차피 트랜스포트 하는 거니 무거운 짐(그날 갈아입을 옷, 신발, 세면도구 등등)도 같이 보내곤 했었는데, 오늘 아침 순례길에 필요한 물품들만 빼고 모두 산티아고로 보냈기 때문에 내 배낭에는 캐리어로 쉽게 보내곤 했던 물품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즉, 모든 짊을 짊어져본 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특히 오르막을 오르려니 그 무게가 더 와닿아 암담해졌다. 그동안 내가 날아다녔던(?)던 건 배낭이 가벼웠던 덕분이지, 내가 본 투 비 페레그리노라서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살짝 자괴감도 들었다.
힘들게 올라간 페르돈(perdon) 봉은 역시 멋졌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검색하면 제일 많이 나오는 순례자 무리 동상도 볼 수 있었고 계속 보면서 걸어왔던 수많은 풍력발전기들도, 저 멀리 보이는 경치도 엄청 멋있었다. 한참을 구경하다 하산하는데 내리막의 자갈밭은 역시 들었던 대로 힘들었다. 자갈 때문에 발을 똑바로 디딜 수가 없어 까딱하단 발목이나 무릎을 다칠 것 같아 조심조심해서 내려가야 했다.
시에스타 때문인지 약간은 황량한 느낌이 나는 우테르카 마을, 무루사발, 아기자기한 도시 느낌의 오바노스를 지나는 동안 정신을 반쯤 놓고 걸었던 것 같다. 먹은 것보다 소모한 열량이 너무 많아 굉장히 지친 상태로 터덜터덜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했다. 시간은 이미 4시 반이었고 내가 먹은 것은 아침에 먹은 토스트 두 조각, 중간에 들른 바에서 먹은 스페인식 오믈렛 한 조각과 빵 두 조각이 전부였던 데다 예약한 알베르게는 마을 맨 끝에 있는 언덕 한참 위에 있었다. 크지 않은 작은 도시임에도 시가지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지친 내 모습은 대역죄를 저지르고 느릿느릿 사형대로 걸어가는 죄수의 꼴이었다. 여왕의 다리라 불리는 아름답고 멋진 다리는 나에겐 '왜 다리마저 오르막이야' 소리가 나오는 구조물일 뿐이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동안 전에도 만났던 다른 순례자들을 마주쳤지만(이미 도착해서 여장을 풀고 시내 구경하러 나와있었다) 반가움은 커녕 인사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간신히 도착한 언덕 위의 내 숙소. 예약했던 게 무색하게 빈자리가 꽤 있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전날 팜플로나에서 같이 묵었던 한국분들을 다시 만나서 함께 저녁 먹고 쉬었다.
(유튜브 영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