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딱뚝딱 몸마음공장 프로젝트 25
우연한 계기를 통해 '명상'을 접하게 되어 지난 몇 년간 명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기회가 닿을 때마다 생각해 본 것 같다. 그 기회란 아마도 일상생활 중에서 종종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등 나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일어날 때였던 것 같다. 평소의 나는 몸과 마음의 상호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아마 우연한 계기란 것도 실은 내가 계속해서 갈구하고, 원해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맨 처음, 명상을 나는 인도에서 접했다. 인도인 친구가 자리를 만들어주어 지도자의 도움으로 명상에 입문(명상을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의지의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후 직접 아쉬람으로 가 아침 4시면 종소리를 듣고 일어나 명상하고, 먹고, 봉사하고, 공부하고, 자는 생활을 지속했다. 일단 시작되면 스승의 아무런 안내나 지도 없이 약 1시간 정도를 눈을 감은 채 침묵을 지속하는 명상에서 나는 아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항상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생각과 모기에 쫓기며 많은 시간을 버텨내는 노력이 있을 뿐이었다. 매 시간이 끝날 때마다 나는 수많은 물음을 명상 홀에서 가지고 나와 사람들을 붙들고 묻느라 정신을 쏟았고, 매 명상이 끝나고 적는 명상 일기에도 비슷한 '알 수 없음'의 상태가 가득 차 있었다. 나 스스로 겪어내야 하는 시간들이 가혹하게만 느껴졌고, 난 결국 포기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나에게 명상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언어로 표현하기를 주저했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모두가 자발적으로 명상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각자는 마음의 충만함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확실한 것 같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명상에 대한 지울 수 없는 궁금증과 호기심 사이에서, 또다시 인도를 방문해 명상에 접할 기회를 얻었다. 이번에는 소위 '위빠사나 명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 10일 간 오로지 침묵 속에서 나 자신과 소통하는 것이 필수 과제였는데, 이것은 이미 돌아간 고엔카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명상을 수련하는 방식이다. 10일 동안 약 100시간을 수련하는 코스인데, 이른 새벽부터 시작하는 명상마다 호흡을 인식하는 방식을 몸의 각 부위를 통해 일깨워주고, 호흡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생각을 멈추도록 도와준다. 저녁에는 스승의 영상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다. 이를 통해 나는 만져지지 않는 명상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선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최근 또다시 적극적인 호흡법을 통해 내 몸을 정화하고, 명상에 접근하는 방법을 새로 익혀 매일매일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다소 힘들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확실히 와 닿는 방법이고, 명상이 주는 감각을 선명하게 느껴볼 수 있는 방식이다. 나는 여전히 명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계속해서 배워가고 있는 중이지만 요즘 내가 이해하는 명상에 대한 몇 가지 특성이 있어 여기에 적고 기억하려고 한다.
먼저, 누구든 원한다면 명상에 접할 수 있고, 나에게 맞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명상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지만, 명상을 통해 그 이익을 얻는 사람은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 명상을 언어로 쉽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의 어느 방식 보다도 우리에게 깊은 휴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을 내 몸의 외부적인 요소와 관계 맺고, 대응하면서 살아간다. 나 이외의 사람, 몸을 통해 느끼는 다섯 가지 감각(눈으로 보는 모든 것, 식사 등)에서 행복과 슬픔, 우울 등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얼마간 이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내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면 그 시간은 다른 어느 방식보다 우리가 가장 밀도 있게 쉴 수 있는 틈을 제공한다. 아마 이런 농도 짙은 휴식 후에 자연스럽게 행복을 느끼고 미소 짓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인간은 동일한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간 속에서 더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더 효율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인간은 스스로가 가진 한계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명상을 활용하면 생활 속에서 업무든, 공부든, 육아든, 가사든,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셋째,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물질은 공기와 음식이다. 그런데 공기는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의 호흡기계를 통하면 반드시 느낌으로 알 수 있고, 더구나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제어할 수 있다. 그래서 호흡은 우리의 마음(감정-생각)과 몸(감각)을 연결하는 유일한 도구이면서,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외부 물질이기에 우리 스스로를 인식하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로 명상에 다가서는데 활용된다. 호흡은 또한 우리 생명(살아있음-죽음)을 결정짓는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넷째, 명상은 나를 돌보는 방식이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렇게 여러 역할을 연기하면서 사는데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들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지만 하루에 20분 혹은 30분 혹은 1시간, 조금 일찍 일어나 나를 위한 장소를 마련하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 오롯이 느껴본다면 나 스스로 나를 조금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서 이해받거나 사랑받으려 노력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좌지우지되기보다는 나 스스로 나를 드러낼 주권을 갖게 되지 않을까.
다섯째, 우리가 매일매일 하는 것. 우리가 자동적으로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를 청결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생활에 매우 필수적인데, 매일 양치를 하고, 세수하고,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며 우리를 확인한다. 씻지 않는 사람 곁에서 우리는 얼굴을 찡그리곤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면을 가꾸듯, 우리 마음도 매일매일 깨끗하게 청소할 필요가 있다. 종종 잠에 들어서도 내일 일을 걱정하고, 낮에 받았던 좋지 않은 인상이나 기억들로 인해 밤새 꿈에 시달리며 피로감에 아침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미 과거가 된 지 한참인데도, 여전히 시험 보는 꿈을 꾸고, 지각하는 꿈을 꾼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가 다시 등장하기도 하고. 마음 한편에 깊이 자리한 상처, 그것을 놓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장소를 만드는 것이 명상이 주는 도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여섯째, 명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명상이 '나'라는 자아의 형식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방식은 세 가지다. 'I want nothing, I do nothing, I am nothing'. 아무리 좋은 명품도 결국 쓰레기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인데, 왜 자꾸 우리는 물질과 나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가. 놓아버리려고 해도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그러면 언젠가 깨달아질지도 모르니.
그렇다면 나부터 매일매일 실천해 보자! 의지를 갖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