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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인 Dec 04. 2024

달팽이가 바다에 갔다고?

갯민숭달팽이 발견에 대하여

몇 년 전, 내가 아직 삼십 대일 때 아내와 함께 가수 이적의 콘서트를 갔다. 커다란 무대에서 연주되는 웅장한 사운드는 쉽게 눈물샘을 자극해서 울 게 될 것이라는 건 기정사실. 입장 전부터 대략 어떤 노래를 부를 때 눈물이 날까 고민을 해보았다. 아마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나올 때가 아닐까 막연히 추측했다. 그렇게 콘서트장에 입장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무대를 지켜봤다.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 멋진 파도가 일렁이며 흘러나온 첫 곡 <달팽이>. 나는 첫 곡부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왜 이제야 깨달았지? 나는 그때 처음으로 달팽이가 바다에 가지 못했을 거란 걸 알았다.


<달팽이>를 처음 들었던 십 대 때는 막연히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갔을 거라 생각했다. 달팽이도, 나도 젊었고 뭐든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고 생각했으며 가는 길이 다소 힘들다 하더라도 바다로 가는 일쯤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삼십 대가 되어, 마흔을 앞두고 간 콘서트장에서 나는 결국 저 달팽이가 바다에 가지는 못 했을 거라 확신하게 된 것이다. 대형 스크린에 나온 바다가 현실처럼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져도 진짜가 아님을 알 듯이. 꿈은 말라 쪼그라들고 바다를 향하던 날들만 남아 막상 바다에서 무얼 하고자 했는지도 잊힌 세월이 되었다. 첫 곡에 너무 눈물을 흘린 탓인가. 나는 이후 노래들을 굉장히 냉철하고 담담하게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달팽이>는 희망에서 상실로 의미를 달리 한 채 기억에 사라졌다. 그러다 얼마 전, 바다에 간 달팽이가 있다는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조선비즈 사이언스샷에 게재된 이영완 기자의 ‘심해에서 헤엄치는 달팽이 첫 발견‘. 그는 기사의 첫 문단을 ‘과학자들이 이적의 달팽이가 이미 꿈을 이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위트 있게 마무리했다. 기사에 따르면 갯민숭달팽이는 몸길이 14.5cm의 바다달팽이로, 대양에서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수심 1,000~4,000m에 산다고 한다. 포식자에 먹히지 않기 위해 투명한 몸을 갖고 있으며, 들키면 빛을 발산해 포식자의 주위를 돌린다고…  끝내 바다에 당도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 달팽이는 이미 빛이 들지 않는 바닷속에서 수렴진화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흔이 되었고, 여전히 바다를 꿈꾸며 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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