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소금> 제작기
최근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2021년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연출까지 했던 단편영화 <소금>이 OTT 플랫폼 티빙을 통해 공개된다는 소식이었다. 덕분에 네이버 인물검색도 정리를 하고, 오래간만에 SNS로 지인들에게 많은 축하를 전해 들었다. 적어도 아이가 아빠의 직업을 궁금해하면 네이버 검색해 보라고 말할 수는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아이가 봐도 부끄럽지 않을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것뿐. 비록 <소금>은 변변한 영화제 한 번 가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지만 그래도 삼 년이 지나 세상에 나온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공식적으로 나의 첫 연출작인 <소금>은 영상 관련 나의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다.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영화를 찍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결과의 핑계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의미가 있는 건 <소금>에 담아낸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고찰이 이후 작업들에도 자연스레 연결되어 나만의 거시적인 주제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영화 <소금>의 첫 아이디어는 장례식장에서 나왔다. 생각과는 달리 젊고 말쑥한, 태블릿 PC를 들고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장례지도사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장례지도사를 검색해 보니 대학 내 전문 학과가 있을 정도로 유망한 직종 중 하나였다. 오컬트적이면서도 허드렛일이 많다고 느낀 장례 일을 처리하는 젊은 청년들. 그 모습이 잊히기도 전에 지인인 감독의 제안으로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 편 보게 된다. 바로 떡 먹다 죽은 남자의 사흘간 장례 이야기를 담은 ’삼일(또는 웃픈 삼일)’이다.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보며 나는 문득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가 떠올랐다. 내가 장례식장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꼭 날짜를 확인하고, 집에 돌아오면 현관문 앞에서 소금을 뿌렸다.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철저했다. “귀신 따라온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만약 내가 장례지도사라면 어머니는 매일 나에게 소금을 뿌릴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렇게 영화 <소금>의 로그라인이 생겨났다. 아이러니를 더하기 위해, 미신을 믿지 않을 것 같은 ‘교회 장로인 아버지가 장례지도사인 아들이 퇴근할 때마다 소금을 뿌려준다’는 내용이다. 아들에 대한 애틋함을 더하기 위해 어머니는 최근 돌아가신 것으로 설정했다. 넓은 집에 부자만이 남아 있는 상황. 음식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둘 사이 소통도 어색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내나 엄마를 중심으로 서로의 근황을 듣거나 하니까. 그런 서먹함 속에서도 서로가 유일한 피붙이(이를 보여주기 위해 세 명이 나온 가족사진도 소품으로 준비했다)인 상황에서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교인 집안에서 장례지도사란 자신의 직업이 다소 부끄러운 아들과 그런 아들을 또 잃을까 신념을 버리고 미신을 따라 소금을 뿌리는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장례를 치르고 집에 온 아들이 습관적으로 소금을 뿌리려다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나를 따라온 귀신은 누구인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도 그냥 일하는 것 같다고 푸념하던 아들은 그제야 처음으로 세상에 외톨이가 되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대학시절 소설이 아닌 책 중 가장 인상 깊은 건 <88만 원 세대>였다. 대한민국 최초로 ‘부모 보다 가난한 세대’라 정의하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점차 현실화되는 현시대를 살아가며, 단순히 감동을 주기 위해 늙고 아집만 남아 볼품없어진 ‘아버지’를 묘사하는 건 너무 상투적이라 생각했다. 지금의 아버지들은 30평 이상의 자가를 가지고, 건강을 챙기며 여전히 일을 하거나 은퇴를 했어도 자신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떠올린 사람은 바로 이황의 배우였다.
이황의는 흰 머리카락으로 나이 든 역할에 적합하지만 날렵한 눈매와 소년 같은 장난기가 매력적인 배우다. 각종 드라마에서 대법관, 언론사 대표, 대기업 회장 등 세련된 어른을 주로 연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좋은 아파트에 안정적인 자산을 갖춘 교회 장로 역에 딱인 인물이었다. 그렇게 아버지 역을 먼저 캐스팅하고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비를 얻는 등 착착 영화를 만들어 갔다. 완전 초짜였지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제작사 대표와 촬영 감독 등 스태프들이 있어 어찌어찌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회사를 다니며 영화를 찍는 일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연차를 내고 주말을 포함해 총 2회 차로 촬영을 진행했다. 나름 지원사업에 선정될 정도로 시나리오가 탄탄하다는 평가라 콘티 대로 진행만 한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는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간과했다. 좀 더 배우들과 소통을 했더라면, 스태프들의 업무를 좀 더 파악했더라면… 그런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삼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언젠가 나의 아이에게 보여주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그 부분만은 조금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