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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Feb 19. 2018

[20] 떠날 준비.

2부-강원도 속초


1.

여권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누가 어딜 공짜로 보내 준다 해도 갈 수 없다. 새 여권은 속초에 가서 만들 생각이다. 십 년 전에 찍은 사진을 인터넷 인화 업체를 통해 뽑아 두었다. 십 년 전 나는 참 예뻤다. 시청에서 가서 일단 우겨 보기로.


2. 

서울에서 죽전으로 이사올 때 1톤 트럭 세 대로 왔다. 그러니 우리집의 살림살이는 총 3톤. 사는 동안 많이 버려서 지금은 3톤보다 적을 텐데 견적을 내러 온 이삿짐센터마다 5톤을 기준으로 금액을 매겼다. 3톤으로 왔다고 설명을 했는데도 속초는 멀어서 어쩌고... 포장이사 비용이 무려 183만원. 끙.


3.

그래도 뒤져 보면 버릴 것, 나눌 것, 팔 것이 있는 고로 한동안 중고 장사에 열을 올렸다. 지금은 옷장의 서랍 하나가 텅 비었다. 파는 것은 지역 맘 카페와 당근마켓을 이용했다. 여기서 잠깐, 당근마켓을 처음 들어 봤다면, '우리 동네 중고 직거래 어플'. 내가 살고 있는 곳의 GPS 인증을 받으면 이 근방의 사용자와 연결된다. 우리 동네 당근마켓에는 정말 별의별 것이 다 '중고'로 올라와 있다. 590,000,000원짜리 동천동 주택에서부터 350원짜리 유리 그릇까지. 살림이 10톤은 되지 싶은 한남동 친구에게 당근마켓을 알려 줬더니 한남동에는 사용자가 별로 없다고 한다. '그렇군, 그렇겠군.' 우리 동네 당근마켓에 올라 온 것들 중 인상 깊은 것을 두 가지 소개하자면,


"다섯 번 밖에 사용하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통이예요. 3천원!"

"양키 캔들, 딱 한 번 태웠어요. 5천원!"


알뜰한 동지들. 반가워요. 어렸을 때 같았으면 궁상스럽다고 생각했을까? 하여간 지금은 그 알뜰살뜰한 마음이 예쁘고 좋다. 


당근마켓에서 나도 이것저것 팔았다. 마지막으로 판 것은 스무 살 겨울에 산, 그러니까 22년 된 양털 무스탕. 요즘 입어도 전혀 구리지 않은 예쁜 디자인이다. 색도 무려 베이지. 이만 원에 내 놓았다. 무스탕을 보고 어떤 사람이 입어 보고 사도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된다고 대답했다. 삼십 분 후, 인도인처럼 보이는 남자와 한국 여자가 집 앞으로 찾아왔다.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예쁜 여자는 아파트 일 층 엘리베이터 앞에 달린 거울 앞에 서서 십여 분을 고민하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돌아갔다. 잘 어울렸는데... 그 다음날, 분당에 사는 삼십 대 중반의 아이 엄마가 무스탕을 사겠다며 한걸음에 달려왔다. 꼼꼼히 확인해 보시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가격이 이렇게 싼데 보고 말고 할 것이 어딨어요. 너무 너무 고마워요." 


라고 말하고는, 이만 원이 담긴 돈봉투를 건네고 돌아갔다. 그녀와 헤어져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오는데 그녀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싸게 줘서 너무 고마워요. 잘 입을게요. 죄송하지만 부탁이 있는데요, 당근마켓에 올린 사진 좀 지워 주실 수 있어요? 동네 엄마들도 당근 많이 보거든요." 


아하! 나였으면 동네 엄마들에게 이만 원에 득템했다고 자랑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배웠다. 잽싸게 사진 먼저 지우고 지웠다고 답장을 보냈다.  


4.

동네에 대한 정보는 그 지역 맘 카페가 최고다. 어느 수선집이 옷을 잘 고치는지, 어디에 새로 빵집이 생겼는지, 어느 미용실 아줌마가 실력이 형편없는지 등등. 한남동 살 때는 맘 카페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금호동으로 이사하며 아쉬운 것이 많았다. 성동구 맘 카페라는 것이 있길래 가입 신청을 했다가 (아마도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이 까임의 경험을 토대로, 죽전으로의 이사가 결정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죽전 맘 카페에 가입한 것. 죽전 맘 카페는 내가 가입한 카페 중 가장 훌륭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으로 상 받아 마땅하다. 벼룩시장은 10만원 이하의 물건만 거래할 수 있다거나, 한 번 나눔을 받으면 그 후 일주일 동안 다른 나눔을 받을 수 없다거나, 나눔은 아무 조건 없이 처음으로 손을 든 사람에게만 줘야 한다거나 등등 규칙이 철저하다. 카페에 위장 잠입해서 상업 홍보를 하면 어김없이 발각되어 강퇴 당한다. 훌륭하다. 하여 정보의 신뢰도가 높고 분란이라는 것이 없다. 지역 맘 카페를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사례 하나. 이사 온 첫 해 겨울,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는 떡볶이 집에 샵인샵(!)으로 들어가 있는 붕어빵 가게 할아버지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맛있는 집이라 언제 나오시나, 오늘은 나오셨나, 오며 가며 기웃거리게 되었는데 나처럼 궁금했던 누군가가 질문을 올렸다.


"OO 떡볶이 붕어빵 할아버지 왜 안 나오시나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할아버지 허리 삐끗하셨어요. 올 겨울 장사 못하신대요." 


저런. 할아버지는 그 해 겨울 뿐만 아니라 그 다음해 겨울에도 나오시지 않았다. 허리 많이 다치셨나 보다 다 함께 걱정. 


나눌 것이 있으면 맘 카페에 올렸다. 솔이 억세 쓰지 않는 칫솔, 사다 놓고 안 먹는 영양제, 여행 후 사 모은 (여행 전이 아니다, 여행 후다) 각종 어학서적, 복길이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복이를 데려오던 그 해에 샀던 디지털카메라, 다 읽은 책, 안 입는 옷, 신발 등등... 대단한 것 하나 없이 자질구레한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필요한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쇼핑백에 나눔 물품만 넣기 뭣해서 과자나 초콜릿 같은 집에 있는 간식거리를 함께 넣게 되는데 물품을 받으러 오는 엄마들도 마음이 같은지 그냥 오는 법이 없다. 귤 몇 알, 과자 한 봉지, 사탕 한 봉지. 그렇게 서로 봉다리를 주고 받으며 감사 인사를 나누면, 어쩐지 이 지역사회에 속해 있다는, 말 그대로 소속감 비슷한 것이 들고는 한다. 무소속 집순이로만 살다가 남편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게 되어서 마냥 좋은 것인지, 하여간 그렇다. 그리울 거예요, 죽방.


5.

중학생 때부터 사 모은 카세트 테이프가 있다. 학교 근처 버스정류장 앞에 레코드가게가 있었고 용돈이 모이면 그 집으로 먼저 달려갔다. 갖고 싶던 음반을 사서 비닐 봉투에 담아 들고 나와 버스를 기다리면 캬~ 기분이 째져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때의 그 기분을 생각하니 지금도 기분이 째진다. 고등학생 때 용돈을 모아 산 오디오를 버린 지 십 년도 넘었기에, 잔뜩 있는 음반들을 들을 방법이 없다. CD는 두고 카세트 테이프만 멀리 이사 가는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하려고 마음 먹었다. 이런 류의 것은 ‘중고나라’에서 팔아야 한다. 현명한 동네 아줌마들은 이런 것을 절대 사주지 않기 때문이다. 속지 케이스 다 멀쩡한 테이프 68개, 속지가 없거나 원래의 케이스가 아닌 테이프가 대략 20개. '일괄로만 팔아요.' 사진을 찍어 중고나라에 올렸고, 대구에 사는 중년의 남자가 카세트테이프를 몽땅 사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정성을 다해 포장을 했고 한달음에 달려가 택배를 부쳤다. 


"택배 보냈습니다. 어렸을 때 용돈 모아 산 테이프들이에요. 사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틀 후 답장이 왔다.


"테이프 잘 받았습니다. 포장에도 정성이 담겨 있고, 진짜 아끼셨던 물건으로 보입니다. 저한테 보내 주셔서 감사 드리고요, 저도 소중하게 잘 듣고 아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

우리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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