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와 물과 시간으로 이스트를 만들고 그 이스트에 또 밀가루와 물만 넣어 빵을 만들게 되었어요. 정말이지 근사한 일이예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궁금했던 것, 마땅히 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했던 것을 간략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저처럼 '아리송해~' 노래를 부르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1. 사워도우 스타터를 키우기 시작한 지 3-4일째 되는 날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난관.
두 배 혹은 세 배로 신나게 몸을 키우던 밀가루+물 반죽이 3일째 혹은 4일째 되는 날 비리비리할 거예요. 이 놈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싶지요. 스타터는 이 날은 기준으로 드디어 효모, 이스트가 된대요. 이전까지 부피가 커졌던 이유는 순전히 박테리아 때문인데, 3,4일째에 이르면 박테리아가 죽고 그 자리에 효모가 생겨납니다. 그러니 하던대로 꾸준히 밥을 주세요. 이런 사실을 모를 때에는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밀가루 많이 버렸어요.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있어 가져왔습니다.
2. 100g vs 10g ???
위 그림에서는 1/2컵 밀가루에 1/4컵 물로 시작을 하잖아요? 최첨단기술력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아직도 부피 계량을 한다는 것이 몹시 유감스럽지만 이건 차치하고요, 대략 60g의 밀가루와 60g의 물로 시작해 같은 양으로 밥을 주라고 하네요. 절반을 버리라고 하니 제일 첫 시작을 제외하고 매번 60g의 밀가루를 버려야 해요. 오노. 게다가 이론적으로야 일주일만에 스타터가 완성되지만 빵을 만들 만큼 튼튼하게 키우려면 제 생각에 최소 열 흘에서 넉넉히 이 주는 키워야 하는데, 그럼 버려지는 밀가루가 한 포대! 작년에 사워도우 스타터를 키웠을 때에는 많은 양의 밀가루로 밥을 줬고, 올해는 적은 양으로 밥을 줬어요. 결론은? 차이 없다. 저는 10g+10g 으로 시작해 계속해서 가능한 최소한의 밀가루로 밥을 주며 키웠습니다.
3. 르뱅을 반죽에 언제 투하할 것인가?
서양의 베이커들이 최고점에 넣는 걸 추천하는 반면 우리나라 홈베이커들은 두 배만 넘으면 된다라고들 하더라고요. 결과물을 '사진으로만' 비교해 본 제 선택은 최고점이에요. 제 스타터의 경우, 부피가 보통 서너 배 부풀고 기분 좋은 날은 다섯 배까지 커지기도 하는데 두 배에서 스타터를 사용하는 것은 좀 아까운 생각이 들거든요. 최고점에 도달하면 빠른 속도로 스타터가 가라앉기 때문에 최고점에 도달하기 직전 아직은 커지고 있으나 곧 끝날 그 지점에서 반죽에 넣습니다. 자신의 스타터의 상태를 잘 알고 있으면 얘가 언제 최고인지 아직도 커지는 중인지 알 수 있어요. 제 스타터는 이렇게 생겼어요.
4. 밥 주기.
대개의 레시피가 100%수분율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밀가루와 물의 양을 동량으로 하는 것이지, 어떤 쿨한 외국 아저씨는 그냥 숟가락으로 밀가루 듬뿍 떠 넣고 그러면서 카운터에 질질 흘린 밀가루 손으로 쓸어담아 그것도 넣고 생수 또로록 부어 밥을 주더라고요. 몇 십 년 된 스타터라고 하니 진짜 멋지죠? 여하튼 비율은 중요하지 않지만, 100% 수분율을 유지한다는 가정 하에 스타터:밀가루:물의 비율이 1:1:1일 수도 있고 1:10:10일 수도 있어요. 본인 스타터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스타터가 필요한 시간에 맞게 스타터를 완성시킬 수 있는 거지요.
예를 들어, 제 스타터의 경우 봄 가을 포근한 날 1:2:2로 밥을 주면 7시간만에 최고점에 달해요. 아침 7시에 밥을 주면 오후 2시에 최고가 되는 거예요. 그럼 거꾸로 아침 7시에 스타터가 최고의 상태에 있으면 좋잖아요? 그렇다면 전날 밤 12시에 1:2:2로 밥을 주면 되는데, 밤 10시가 됐는데 졸려 죽겠어서 도저히 12시까지 못 기다릴 거 같다!하면 10시에 1:2.5:2.5 정도쯤 되는 비율로 밥을 주는 거예요. 쉽죠잉?
또 예를 들면, 제 스타터는 5:40:40(1:8:8)으로 밥을 주면 15시간 동안 몸을 키워요. 아침에 밥 주고 나갔다가 하루 종일 놀고 돌아와 샤워하고 느긋하게 다시 밥을 주면 돼요.
4-1. 밀가루 아끼며 밥 주기와 계산법.
저온 발효로 굽는 사워도우 빵들은 대개 밀가루 대비 20%의 르뱅(스타터)를 넣잖아요? 예를 들어 레시피에서 요구하는 밀가루가 500g이라고 했을 때 필요한 르뱅(스타터)의 양은 100g인 거지요.
위와 같은 컨디션의 제 스타터를 가지고 스케쥴을 짜 볼 게요. 다음날 낮 2시에 스타터 100g을 오토리즈한 반죽에 넣을 거예요. 최소한의 밀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목표예요.
22:00 - 4:10:10 (1:2.5:2.5) 총 무게 24g
07:00 - 위의 24g 중 2g 덜어내고 22:44:44(1:2:2)로 밥을 줘요.
14:00 - 총 110g의 스타터 중 100g은 반죽에 넣고 10g을 남겨 밥을 줘요.
2g 덜어내는 것에 대해 망설이지 마세요. 2g 덜어내지 않고 24g 그대로 진행한다면 결국엔 밀가루를 더 쓰게 되니까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렇게 덜어낸 스타터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크럼펫이 있습니다.
계산법은 간단해요. 최종적으로 필요한 스타터 양을 먼저 계산해요. 빵 만드는데 필요한 100g, 남겨서 계속 키울 거 10g, 총 110g을 스타터:밀가루:물 비율의 합으로 나누는 거예요. 7시간 후 최고점에 달하게 하려면 1:2:2로 밥을 줘야 하니까, 비율의 합 1+2+2=5로 나누는 거예요. 110÷5=22g, 스타터의 무게예요.
4-0. 빵 굽는 스케쥴 짜기.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스케쥴 짜기라고 생각해요. 낮 2시에 반죽을 시작하면 도대체 빵은 언제 굽는 다는 거야? 일단 간략히 제가 빵을 만드는 순서를 나열해 볼게요.
오토리즈 - 2시간~4시간
르뱅 넣고 - 30분
소금 넣고 - 30분
늘여접고 - 30분
라미네이션 - 45분
당겨접고1 - 45분
당겨접고2 - 45분
당겨접고3 - 1시간~1시간30분
성형해서 - 20분
냉장고에서 - 12~16시간.
굽기 - 35분.
이렇게 써 놓고 보니 헉 소리가 나오지만 힘들지 않고 즐거움이 더 커요. 암튼 우리의 목표는 소금을 넣는 것도 아니고 당겨접는 것도 아니고 '빵을 만드는 그 자체'이므로 오븐에 반죽이 들어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거예요. 그래서 반죽을 오븐에 넣는 시간을 먼저 생각하고 스케쥴을 짜야 합니다. 본인 사정에 맞게요. 저희는 아침식사 빵을 데우느라 오븐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침 8시 이전에는 오븐을 사용할 수 없어요. 그러니 그 이후에 빵을 구워야 하지요. 기왕이면 남편 보내 놓고 9시 무렵이 제 생활 패턴에 좋아요. 이제 거꾸로 해 볼 게요.
+10:00 - 나가 놀기
+09:35 - 오븐에서 꺼내기
+09:00 - 굽기
+08:30 - 오븐 예열
20:00 - 저녁밥 먹고, 성형하기
14:00 - 르뱅 넣기
11:00 - 오토리즈
07:00 - 밥주기 1:2:2
스케쥴을 머릿속에 생각해 놓지 않으면, 반죽을 오븐에 넣느라 밖에 나가 놀지 못하거나, 밥을 먹다 말고 저녁밥 준비하느라 폭탄이 된 어수선한 주방에서 빵을 성형하거나, 접기도 다 못했는데 반죽을 냉장고에 던져 놓고 볼일을 보러 나가게 되는 거예요. 예전에 제가 그랬어요.ㅎ
5. 냉장고에 언제 넣을 것인가? 냉장고에서 꺼낸 다음에는?
빵을 만들고 나서 2-3일 안에 빵을 만들 계획이 없으면 스타터를 냉장고에 넣어 보관해요. 2-3일인 이유는, 냉장고에서 꺼낸 스타터에 2-3일(급할 때는 혹은 냉장고에 넣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1-2일) 동안 밥을 줘서 스타터가 건강해지면 빵을 만들기 때문이예요. 저는 이렇게 해요. 밥을 준 다음 여름에는 1-2시간, 겨울에는 3-4시간이면 스타터가 두 배가 되는데, 두 배가 되기 전에 병뚜껑 꽉 닫아 냉장고에 넣어요.
냉장고에서 꺼내서는 병뚜껑 느슨하게 해 놓고 최고점에 달하도록 그냥 둬요. 냉장고에서 쉬느라 그동안 하지 못한 활용을 하라고요. 여기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 자신의 스타터의 성격을 잘 알아야 한다는 건데요, 얘가 얼마만에 최고에 달하는지 알아야 밥을 주고 잘 수 있으니까요.
6. 수입밀가루에서 우리밀가루로 갈아타기 위한 고군분투기.
현재 진행형이예요. 그동안은 킹아서, 밥스레드밀 사용했고요 스타터도 이들로 키웠어요. 우리밀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에 이달 초 '산아래 토종 우리 밀가루' 조경밀과 금강밀을 무려 9kg이나 주문했고, 그걸로 빵을 구웠지요. 결과는 정말 처참했습니다. 하여 사워도우 스타터를 수입밀에서 우리밀로 변환(?) 전환(?)시키기 위해 열 흘 동안 하루 두 번 혹은 세 번씩 밥을 주웠어요. 그리고 구운 첫 빵이 이거예요.
일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