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발칸
소피아를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 준비해 간 우편물을 보내는 것이었다. 일 년 전 불가리아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을 인화했고,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한 면에 인쇄된 엽서에 인사를 적었다. “번역기로 쓴 것이니 엉터리 같아도 양해랍니다.”라고 시작하는 짧은 편지였다.
주소를 받은 것은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만난 아기를 데리고 선선해진 저녁바람을 쐬며 집 앞 골목에 나와 있던 할머니뿐이었다. 내 카메라를 보고 사진을 찍어 달라기에 내가 먼저 집에 가면 보내주마 약속했었다. 일 년이나 걸렸으니 미안할 노릇이다.
멜닉의 란코 아저씨는 여전히 마리오네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불가리아에서 가장 작은 마을에 살고 있으니 일을 그만두었다 해도 마리오가 전해 줄 거라 생각했다.
두쁘니짜 버스터미널 아저씨의 주소는 정말로 짧았다. '두쁘니짜 버스터미널 앞'. 소피아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며 우체국 아줌마에게 이렇게만 써도 괜찮을지 물으니 그녀는 "다다다."라고 답하고는 우편번호를 덧붙여 적었다.
벨리코 터르노보의 세탁소 아줌마가 가장 어려웠다. 도심에 있는 제법 큰 규모의 쇼핑몰 건물을 돌아 건물 옆면에 숨어 있는 입구를 통해 지하로 내려갔기에 그것이 쇼핑몰과 같은 건물이었는지 옆 건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지도를 아무리 크게 키워 보아도 아리송했다. 구글에서 '벨리코터르노보, 빨래방'으로 검색했지만 동그란 유리문을 가진 세탁기 사진만 수두룩. 불가리아어로 검색하니 어느 여행자가 올린 '벨리코 터르노보 개똥이 쇼핑몰 지하에 빨래방 있음.' 정도 되는 오래된 글을 찾을 수 있었다.
발칸을 여행하며 '허허, 그것 참 이상하군.'이라고 생각한 것 중에 하나가 숙소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무언가를 물으면 도대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의 두 명의 직원에게 "우체국 몇 시에 여니?"라고 물으니, 둘 다 모른다고 답하며 그런 시시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재스쳐를 취했다. 만국 공통의 업무 시작 시간 9시에 맞춰 소피아를 떠나던 날 아침 드드드득 트렁크로 온 동네를 깨우며 요란스레 우체국에 갔다. 우체국은 이미 문을 열고 성업 중이었다. 여러분, 다른 곳은 몰라도 소피아의 중앙 우체국은 아침 7시에 문을 연다네요. 띠용.
우편을 보낸 것이 월요일 아침이었다. 수요일, 불가리아 남부 데빈이란 작은 마을에 저녁 늦게 도착해 이메일을 확인하니 불가리아어로 된 짧은 편지가 와 있었다. 두근두근. 누가 제일 먼저 받았을까? 구글 번역기에 복사해 넣은 뒤 변환을 시켰다.
"디어 희영, 아름다운 사진들 정말 정말 고마워요. 나랑 우리 식구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당신과 당신 가족의 건강을 빌어요!"
글만 보면 누가 보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사진들'이란 말로 미루어 벨리코 터르노보의 할머니와 아기네 집인 것 같았다.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낸 것은 그들이 유일했다.
그리고 이틀 후, 목이 멜 만큼 아름다운 릴라 산에서 내려와 싸빠레바 반야의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두 번째 편지를 받았다. 제목은 'Hello from 벨리코 터르노보'였다. '구글 번역기가 돕고 있어요!' 라는 꼬릿말을 달고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 버젼으로 쓰여 있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기쁘게도 세탁소 아줌마였다. 놀람과 반가움, 기쁨과 감사의 인사였다. 다시 오라고,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어설픈 영어 문장과 나열에 가까운 한국어 편지에, 나처럼 고심하며 편지를 썼을 아줌마의 얼굴이 그려져 가슴 한가운데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이 사르르륵 온몸으로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신이 서지 않았던 세탁소 아줌마가 편지를 받았으니 나머지 곳들도 잘 도착했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또 마음이 좋았다.
즐거운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면 즐거운 일을 만들면 된다는 것을 이렇게 조금씩 배운다. 사진을 고를 때 즐거웠고, 맨질맨질한 종이에 예쁘게 인화된 사진을 찾았을 때도 즐거웠다. 엽서를 고르면서, 엽서에 편지를 쓰면서, 봉투에 풀칠을 하면서 즐거웠고, 여행가방에 짐을 꾸리며 봉투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넣을 때도 즐거웠다. 상쾌한 아침 공기 속에서 우체국으로 향하던 그 길이 즐거웠고, 수많은 우체국 창구 사이를 헤맬 때도 즐거웠으며, 드디어 우표를 붙인 봉투들이 아직은 텅 빈 노란 우체통 속으로 떨어지며 톡 톡 소리를 낼 때는 최고로 즐거워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그러니, 비록 변변찮은 사진이지만 그것과 함께 나의 즐거움이 그들에게도 전해졌으리라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