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얏트 CEO의 뉴욕타임스 인터뷰
하얏트의 CEO인 호플라마지안(Mark Hoplamazian)은 실무 경력의 대부분에 걸쳐 한 가문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는 하버드에서 학부를 마쳤고 시카고 대학에서 MBA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First Boston과 Boston Consulting Group에서 짧게 근무한 후, 1989년에 프리츠커(Pritzker) 가문의 뻗어가는 비즈니스 제국에 합류했습니다. 프리츠커의 조직 내에서 그는 가문의 영향력 있는 가장, Jay Pritzker를 위해 일하며 하얏트나 마몬 같이 다양한 사업 분야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1999년 Jay Pritzker가 사망한 후 몇 년이 지나자 가문에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호플라마지안과 그의 팀에게 프리츠커 제국을 해체하여 분쟁 중인 파벌들을 달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호플라마지안은 하얏트의 CEO가 되었습니다. 이 인터뷰는 명확한 전달을 위해 요약 및 편집된 것으로, 뉴욕의 하얏트 센트릭 타임스 스퀘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필라델피아 외곽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조경 사업을 하셨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돌보셨기 때문에 어머니가 가족의 연결고리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두 유년시절을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13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가 제 유년시절의 변곡점이었고 학교에 대한 저의 모든 초점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다섯 아이들 중 막내였고 생계는 아버지가 전담하셨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고 살아남을 것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첫 직업이 무엇이었나요?
조경 사업에는 어린 나이에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담쟁이덩굴을 작은 화분에 옮겨 심어 재배하거나 심긴 나무를 파내는 것과 같은 노동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제가 10살 혹은 더 어렸을 적부터 여름과 주말에 해왔던 일들입니다. 13살, 14살, 15살 때에는 트랙터와 트럭을 운전해야 했습니다.
그게 합법적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15살이었을 때 처음으로 트럭을 몰고 나간 도로에 엄청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1978년이었다는 것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 눈보라는 동부 해안의 모든 지역을 강타했습니다. 당시 제 형은 이 거대한 주차장에 있는 눈을 치우기로 계약을 했었는데 그곳에 트럭들 중 하나를 가져다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그냥 트럭에 타. 어린이집 근처에서 운전을 했었으니 운전할 수 있다는 거 알아. 넌 그냥 날 따라오면 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차에 올라 눈으로 덮인 도로로 나갔고 불법적으로 운전을 했었습니다. 다행이었던 것은 도로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프리츠커에 합류하게 되셨나요?
이미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던 친구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우리는 너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을 고용하기로 했어. Jay를 한번 만나보는 게 어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를 만나기 위해 갔고 그곳에는 Jay, 이스턴 항공의 기계공 조합장, 변호사가 앉아있었습니다. 당시 이스턴은 파산 상태였고 그들은 Jay에게 항공사를 인수하라고 설득하는 중이었습니다. 첫 번째 만남이 끝날 때 Jay는 그들이 가져온 서류 상자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이때가 화요일이었습니다. 그는 "금요일에 다시 와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얘기해주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저는 항공 산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파산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어쨌든 이것이 제 면접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저는 금요일에 돌아가서 더듬거리며 준비해 간 것들을 얘기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도 Jay가 "이 아이가 완전히 바보는 아니군"이라고 말할 정도는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는 이스턴 항공의 인수를 접었습니다.
프리츠커에 합류하고 나서 어떤 일이 주어졌나요?
그들의 포트폴리오는 매우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직 자체는 매우 작은 규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영진의 멤버를 뽑는 것에서부터 사업을 위한 운영 계약을 협상하는 것이나 자금 조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부서들과 사업 영역들에 걸쳐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종류의 사업에 대한 훌륭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조직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키워낼 수 있었나요?
새로운 상업용 제트기를 출시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한 회사와 합작으로 진행한 매우 복잡한 계약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거래였고 제가 담당이었습니다. Jay는 "이것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한번 알아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내부의 반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인내를 요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저는 "나는 이것을 실제로 믿는다. 그리고 이것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 그 일을 완수해내고 말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매우 성공적인 거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조직에서 제 위상이 바뀌었습니다. 어떤 장벽을 통과할 때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자세를 갖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프리츠커 가문이 흐트러지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곳에 계셨었죠.
프리츠커 가문의 구성원들을 저는 어떤 면에서는 공산주의자들과 비슷하다고 묘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명히 집단적인 노력을 신봉했기 때문입니다. Jay의 철학은 자신의 일이 온 가족의 발전을 도와주는 것뿐이며 자신의 개인적 재산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조직의 구조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복잡한 신탁의 형태였습니다.
이것이 밥그릇 싸움이 시작되면서 달라졌던 근본적인 부분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투명성이 결여되었다는 것과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가족 소유 기업들은 3세대나 4세대 이후 붕괴되는데 그 이유는 사업에 관여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나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셨나요?
우리 팀은 전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신탁의 모든 수익자들이 모이는 가족 모임을 주최했습니다. 사실 그곳에는 가족들보다 더 많은 변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그 모임은 3대째 이어져온 기업이 처음으로 연차 총회를 개최하는 것과 같았고 제가 사회자였습니다. 저는 가족을 앞에서 회의를 이끌어야 했습니다. 저는 하얏트에 합류하기 위해 떠날 때까지 5년간 이 일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얏트를 경영하기 시작했죠. 작은 가족 사업체에서 거대한 회사로 옮겨간 것은 어땠나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꽤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발을 내디딘 사업 영역에 무지했습니다. 물론 하얏트의 재무 현황과 세금 구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가문의 재산 분할 당시 회사의 조직 개편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얏트의 사업 자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지함으로 인해 어리석은 질문들을 많이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강력하게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종종 왜 우리가 특정한 일을 특정한 방식으로 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토론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제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상호작용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실 질문이 이끌어낸 결과였습니다.
오늘날 호텔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요?
공유 경제가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매우 빠르게 성장해온 에어비앤비는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어비앤비가 처음 시작했을 때로부터 저희가 얻은 교훈은 고객의 경험이라는 것이 결코 훈련된 전문가가 아닌 실제 인간과 고객이 상호작용하는 매력적인 인터페이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이제 성장했습니다. 더 이상 밀리 이모와 에드 삼촌의 아파트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45세대를 보유한 아파트에서 5호실을 대여하는 것과 같아졌습니다. 이제는 제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어비앤비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초석으로서의 목적(purpose), 공감(empathy), 보살핌(care)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그간 성공적으로 일구어온 에어비앤비의 성취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이라는 말을 많이 쓰시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는 핵심역량으로서 세심함에 많은 시간과 관심을 집중해 왔습니다. 공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얼굴을 마주해야 하고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수단은 세심함입니다. 세심함은 우리가 웰빙에 투자하는 것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수한 Miraval과 Exhale은 그들의 토대가 세심합입니다. 영양, 요가, 운동 등에 대한 세심함 말입니다.
제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고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체크리스트와 제공해야 할 서비스들을 실행하는 데 너무 집중하는 것보다 그 고객에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LinkedIn의 독자인 Billy Byrne이 그러한 공감이 어떻게 기업 문화로 연결되는지 물어봐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숙련도가 낮은 사람들을 이 직업의 경로로 불러들여 진로를 개척해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주요 문제들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학교를 중퇴하고 직장을 잃은 젊은이들입니다. 저에게 있어 이 부분은 자선적인 노력만이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룩하고자 하는 목적의 측면에서도 우리가 헌신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이러한 이들을 점점 더 많이 우리 산업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우리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입니다.
* 이 글은 10월 19일 자 New York Times에 실린 인터뷰 Mark Hoplamazian of Hyatt Hotels on Airbnb and Why Stupid Questions Are Smart를 번역한 글입니다. 이 인터뷰는 상당히 흥미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우선 상장사로서 지금 하얏트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가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고 있으며, 전통적인 브랜드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에어비앤비에 대한 인식 또한 대변하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