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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Aug 10. 2018

리젠트와 포시즌스

럭셔리 호텔 브랜드의 탄생

토큐 호텔 인터내셔널


1970년 3월의 어느 한 저녁 번즈(Robert H. Burns)는 케이할라 힐튼(Kahala Hilton) 호텔에서 지인들과의 모임을 막 마치고 집으로 향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앞에 거대한 검은색 리무진 한대가 멈춰 서더니 차의 뒷문이 열리고 한 동양 노신사가 그에게 정중하게 동승을 제안했습니다. 이 동양 노신사는 일본 토큐(Tokyu) 그룹의 회장 고토(Noboru Gotoh)였고 이 리무진 미팅을 계기로 럭셔리 호텔의 역사적인 도전이 닻을 올리게 됩니다.

1800년대 말 도쿄 인근에서 철도 사업으로 성장한 토큐 그룹은 1970년대 들어 호텔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는 중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당시 세계 최대의 호텔 시장으로 성장한 미국에 임직원들을 파견하여 체계적인 호텔 경영의 노하우를 배워오도록 했습니다. 당시 번즈는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케이할라 힐튼 호텔 총지배인으로 하와이 대학(University of Hawaii)에서 관광개발 과목을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제자들 중에는 토큐 그룹에서 보낸 임직원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로버트와 노보루의 리무진 미팅은 바로 이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리무진 미팅의 1차적인 결과물은 토큐 그룹과 번즈의 JV로 설립된 토큐 호텔 인터내셔널(Tokyu Hotels International)이었습니다. 외형적으로 합자의 형태이긴 했으나 실질적인 자본의 투자는 전적으로 토큐에 의한 것이었고 번즈는 사업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실행하는 대가로 30%의 지분을 할당받았습니다. 즉 초기의 사업 목적은 호텔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던 토큐 그룹의 해외 진출에 있었던 것입니다. 토큐 호텔 인터내셔널은 1972년에 그들의 첫 호텔인 하와이 리젠트 호텔(Hawaiian Regent Hotel)을 개관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토큐 그룹의 이사회가 이 결정을 뒤집고 자국 내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파트너십은 고스란히 번즈의 손에 남겨지게 됩니다. 번즈는 토큐 그룹으로부터 사업을 넘겨받은 후 고민 끝에 이 사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였던 홍콩으로 근거지를 옮겨 본격적으로 사업 확장의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젠트 인터내셔널


그는 새로운 회사명을 만들어내는 대신 첫 호텔인 하와이 리젠트 호텔로부터 딴 리젠트 인터내셔널(Regent International)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또한 업계의 오랜 동료였던 라파엘(Georg Rafael)과 제카(Adrian Zecha)를 그의 사업 파트너로 끌어들였습니다. 1981년 리젠트는 홍콩의 대표적인 부동산 투자회사 중 하나였던 신세계 그룹(New World Group)과 합작으로 당시 아시아 지역 최고의 럭셔리 호텔이었던 페닌술라 앞 부지에 리젠트 홍콩 호텔을 신축하게 됩니다. 이 호텔이 최초의 리젠트 호텔로 현재 인터콘티넨탈 홍콩입니다. 여기에서 번즈는 페닌술라 호텔을 의식하여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객실 화장실의 규모를 당시의 일반적인 호텔들의 두 배 규모로 확장하여 대형 욕조를 설치하는 한편 샤워부스와 욕조를 분리했습니다. 당시 아시아 지역의 호텔 객실에 설치된 욕조는 너무 협소하여 덩치가 큰 서구인들에게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둘째로, 로비를 키워 제대로 구색을 갖춘 라운지 공간을 설치하였고 프런트 오피스를 프런트 데스크와 별도로 구획함으로써 로비 공간을 훨씬 쾌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고객들은 체크인 또는 체크아웃할 때마다 직원들의 시끄러운 전화 통화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었고 자신들의 정보를 찾느라 어지럽게 널린 서류 더미를 뒤지는 호텔 직원들을 지켜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대신 쾌적한 라운지에서 차를 마시거나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며 우아하게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이러한 로비 공간에서 연결되는 최고급 레스토랑을 만들어 호텔 투숙객뿐만이 아닌 지역민들에게도 매력적인 만남의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활기찬 도시의 부유한 사람들은 멋진 조망과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는 레스토랑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낯선 곳을 찾은 이방인들에게 또한 별다른 노력 없이 그 도시의 가장 생동감 있는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습니다.

넷째로, 호텔 투숙객에게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도록 했습니다. 이를테면, 고객이 체크인할 때마다 룸 보이가 그 고객의 짐을 객실까지 옮겨주는 것은 물론 추가 요금 없이 짐을 풀어 옷장에 정리해주도록 했습니다. 또한 옷장의 옷들은 항상 말끔하게 다려져 있었기 때문에 투숙한 고객이 업무상 회의에 참석하고자 할 때 입을 옷을 다려 달라고 미리 요청하지 않아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객실 내에서 업무를 보게 되는 경우에는 따로 요청하지 않은 차나 샌드위치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지금 이러한 서비스들은 꼭 럭셔리 호텔이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들이었습니다.


InterContinental Hotel Hong Kong


리젠트가 제공했던 새로운 차원의 시설과 서비스는 리젠트를 일약 아시아의 대표적인 럭셔리 호텔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당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서구인들의 발길이 잦았던 홍콩에서 리젠트 홍콩은 서구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호텔이 됩니다. 그리고 번즈는 리젠트를 경험한 서구인들이 분명 자신들의 고향에서도 리젠트를 경험하기 원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실제로 그는 당시 서구 지역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일본 자본의 도움을 얻어 적극적으로 해외 확장에 나섭니다. 그리고 리젠트가 이러한 투자자들을 위해 위탁 운영하는 호텔은 1992년 17개까지 이르게 됩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의 부동산 개발업자인 제켄도프(William Zeckendorf)는 맨해튼 센트럴파크 남단, 매디슨가와 파크가 사이에 위치한 2천3백 제곱미터 규모의 필지를 매물로 내놓습니다. 번즈는 친분이 있었던 일본의 자본가 타카하시(Harunori Takahashi)에게 이 부지를 매입해 호텔로 개발할 것을 제안합니다. 물론 리젠트 호텔로 그가 운영하는 조건이었고 아시아에서 리젠트가 보여준 성과를 익히 경험한 타카하시는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아시아에서 시작한 럭셔리 호텔 브랜드가 세계 최대의 호텔 시장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호텔이 미국 최초의 리젠트 호텔로 현재의 포시즌스 뉴욕입니다.


포시즌스 호텔 앤 리조트


그러나 리젠트의 야심 찬 미국 진출 계획은 결국 무산되고 맙니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회수가 가능한 자금들을 자국으로 거둬들이게 됩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신규 개발 프로젝트를 일본 투자자들과 진행하던 리젠트의 확장 계획은 난관에 봉착합니다. 여기에서 번즈는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개발 중인 호텔들이 개관하고 나면 성공적인 결과를 안겨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그가 끌어들일 수 있는 자금을 모두 동원하여 일본으로 빠져나간 자본을 채워 넣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1년이 채 되지 않아 리젠트는 유동성의 위기를 맞게 되고 1992년 서구 지역에서 럭셔리 호텔 브랜드로 성장하던 포시즌스 호텔 앤 리조트(Four Seasons Hotels & Resorts)에 인수되었습니다. 포시즌은 리젠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흡수함으로써 럭셔리 호텔업계의 명실상부한 왕좌에 오릅니다. 그러나 포시즌은 1998년 중저가 호텔을 주로 운영하던 칼슨(Carlson)에 빈 껍데기만 남은 리젠트를 매각했고 2010년 칼슨은 다시 대만의 포모사(Formosa)에 이를 매각했습니다. 결국 아시아에서 시작한 세계 최고의 럭셔리 호텔 브랜드는 야심 차게 서구 시장 정벌에 나선 지 20년 만에 빈사 상태가 되어 아시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인터콘티넨탈 호텔 그룹


2018년 3월, 객실수 기준으로 세계 3위 호텔 브랜드사인 '인터콘티넨탈 호텔 그룹(IHG)'은 리젠트의 지분 51%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인터콘티넨탈 홍콩을 다시 리젠트 홍콩으로 변경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리젠트는 그 전설이 시작되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호텔 브랜드사 중 하나에 올라탄 리젠트는 다시 부활을 꿈꿀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럭셔리 브랜드가 없어 세계 최대의 브랜드사라는 타이틀을 매리엇과 힐튼에 내주어야 했던 IHG는 그토록 기다리던 럭셔리 브랜드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전투력을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중저가 브랜드들 위주로 구성된 IHG의 라인업이 리젠트의 찬란한 과거를 되찾아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만 최초의 리젠트 호텔이 다시 그 이름을 되찾은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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