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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Aug 13. 2018

두 호텔 이야기

호텔 산업의 융합형 상품

이스라엘 태생의 이민자인 그로스(Harry Gross)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의류 판매업을 하며 미국에 안착했습니다. 사업과 삶의 기반이 안정되어가던 1970년대 중반 그는 부를 키워내기 위해 본격적으로 한창 붐이 일고 있던 부동산 개발 사업에 눈을 돌리고 뉴저지의 멘덤에 단독 주택지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빠르게 성장하던 그의 부동산 사업은 점차로 맨해튼의 중심부까지 확장해 갔고 1998년에는 타임스 스퀘어에 매리엇 계열의 코트야드 호텔을 개관하면서 호텔에까지 발을 넓혀갔습니다.


전통적으로 뉴욕, 특히 맨해튼은 높은 부동산 가격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럭셔리 호텔들 위주의 시장이 형성되어 왔습니다. 이는 강성 노조의 오랜 전통으로 기본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높기 때문에 높은 객실 요금을 받을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하는 것이 유일한 승부처로 인식되어 온 시장이었던 데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지속적으로 상승한 맨해튼 호텔들의 객실 요금은 이곳을 찾는 여행객이나 비즈니스맨들에게 부담을 가중시켜왔고 시장을 출렁이게 하는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다른 어떤 시장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객실 요금 인하에 대한 압력이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동기가 발생할 때마다 객실 요금이 큰 폭으로 하락했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호텔들이 더 높은 객실 요금을 받을 수 있는 럭셔리 호텔들에 집중하게 되면서 호텔의 공급이 불균형적으로 뒤틀리게 된 측면이 존재했습니다. 즉 합리적인 수준의 요금에 묵을 수 있는 호텔들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면서 일부 임대주택들이 비공식적으로 중저가 호텔 영업을 하는 상황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2001년 그로스는 타임스 스퀘어와 콜럼버스 서클 사이에 위치한 900 제곱미터의 부지를 3천2백만 불에 인수했습니다. 당시 이 부지 위에는 세 개의 작고 별 특징 없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는 이곳에 고급 주거와 호텔을 복합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초고층 고급 주거 시장이 한창 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계획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협소한 부지로 인해 전체적인 개발의 규모 자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데 비해 인허가와 건설에 소요될 비용은 만만치 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뉴욕은 제한된 면적에 비해 넘쳐나는 부동산 수요로 인해 가히 살인적인 부동산 가격을 형성한 시장입니다. 즉 전 세계에서 신규 개발이 가장 어려운 시장들 중 하나인 셈입니다.


이러한 부담을 완화시키는 방안의 하나로 뉴욕시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잔여 개발 규모가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즉 특정한 부지에 주어진 개발 규모의 한도 중 사용하지 않은 잔여 한도를 시장에서의 거래를 통해 다른 부지로 이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로스는 수년에 걸쳐 주변의 미사용 개발 한도들을 사들임으로써 협소한 부지의 제약을 해결해 갔습니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로부터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맨해튼의 주거 시장은 붕괴 직전으로 치닫게 됩니다. 아울러 그의 개발 계획에서 큰 축을 이루는 고급 주거 또한 그에게 대출을 해준 은행으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나마 9/11을 겪으며 맷집을 증명한 맨해튼 호텔 시장 덕에 호텔 부분이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Courtyard + Residence Inn Manhattan Central Park


이제 그로스에게 남겨진 과제는 거대한 건물을 오로지 호텔로만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거대한 건물의 일부를 Select Service 또는 Limited Service 호텔로 개발하는 것과 전부를 호텔로 채우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제까지 확보한 개발 규모는 단일 호텔로 600실이 넘는 호텔이 가능했습니다. 일반적으로 600실이 넘는 호텔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연회장과 식음 시설이 완비된 Full Service 호텔이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통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식음 시설이나 연회 시설이 늘어날수록 호텔의 운영 효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객실 요금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객실의 사양을 상향하여 럭셔리 호텔로 포지셔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해리가 애초에 구상했던 호텔 사업의 방향성과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었습니다. 그는 이 거대한 규모의 건물을 두고 거품을 뺀 효율적인 호텔을 개발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찾아낸 해법은 운영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호텔을 서로 다른 수요군 대상의 두 유통망에 배급하는 듀얼브랜딩(Dual Branding)이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호텔의 수요군을 대상으로 제한적인 식음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코트야드(Courtyard)였고 다른 하나는 장기체류 수요군을 대상으로 객실 내에서 간단한 취사설비를 제공하는 레지던스인(Residence Inn)이었습니다. 특히 레지던스인은 애초에 계획했던 고급 주거와 호텔의 절충적 형태로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주거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갖고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대규모의 호텔에 있어 배제시킬 수 없는 미팅 시설은 최소화하여 두 호텔이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1층에 배치했고 식음 시설은 외부 임대를 전제로 저층부에 배치된 리테일에서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378실의 코트야드와 261실의 레지던스인으로 이루어진 68층 규모의 호텔은 2014년 1월 세계 최대의 호텔 시장인 맨해튼의 중심부에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사실 듀얼브랜딩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이 아직 완전하게 검증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소비자 집단이 한 건물 내에 있게 되면서 서로 상충하게 될 위험 또한 다분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호텔의 신규 개발에 있어 가장 큰 리스크 요소의 하나인 영업 안정화를 두고 보면 소비자군을 다각화 시킴으로써 투자의 리스크를 상당 부분 제거해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그로스의 듀얼브랜딩 호텔은 지금까지의 현금흐름을 봤을때 높은 생산성을 보이는 객실 위주의 두 브랜드를 동시에 도입함으로써 안정화 이후에도 현금흐름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성공적인 호텔 개발 프로젝트였다고 볼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남아있는 숙제는 듀얼브랜딩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속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검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개관하고 나서 시장의 주기가 한번은 지나가야 검증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그로스는 차익의 극대화를 위해 2024년 이후를 매각 시점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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