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치료사 박민근이 들려주는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
이제 윤동주의 시를 한 편 읽어볼까요?
먼저〈병원〉이라는 시예요.
참고로 제가 십 대 때 가장 좋아했던 시였어요.
〈병원〉을 읽은 시은이는 자신의 마음을 꼭 닮은 시라고 했다. 그리고 ‘지나친 시련’이라는 시어가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윤동주의 〈길〉을 읽었다.
시은이는 이번에는 내가 시킨 대로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 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어느새 시은이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시를 읽고 나서 지금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마지막 연의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고 했다.
치유서 읽기가 거듭되면서 시은이의 아픈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어갔다. 시은이는 상담에도 차츰 적극적으로 변했고, 밝은 표정으로 상담실을 찾는 날이 잦아졌다.
- 혹시 시은 양,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을 읽은 적 있나요?
"아뇨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아요."
- 지금쯤, 이 소설을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왜요. 어떤 이유에서요?"
- 그건 일단 읽은 후에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시은이는 단숨에 〈마지막 잎새〉를 다 읽었다. 마지막 부분을 읽는 시은이의 얼굴 표정은 마치 연극배우 같았다.
"선생님이 왜 지금 읽어야 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죽음을 함부로 말하는 건 참 어리석은 일이에요. 그렇죠."
- 우리 각자는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 한 존재예요. 이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두의 소중한 생명은 하나하나가 그 무엇으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걸작이기 때문이죠. 자신의 걸작을 걸작으로 대접하는 지혜가 필요해요. 아니 그건 우리 모두의 정당한 권한이지요. 우리는 삶의 존엄성을 이해해야 해요.
시은이는 그 어떤 내담자보다도 숙제를 잘 해왔다. 특히 뛰어난 독서능력이 독서치료에도 놀랄 만한 효과를 가져올 때가 많았다. 시은이는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이런 아이가 그토록 깊은 우울의 방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시은이에게 '결정타'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였다. 나에게 〈데미안〉이 그랬던 것처럼 시은이에게는 〈생의 한가운데〉가 인생의 책이 되었다.
시은이는 〈생의 한가운데〉의 마지막 문장들이 자신을 전율하게 만든다고 했다. 마음의 지진을 일으킨다고 했다. 전율의 문장이 담긴 인생 책을 찾아낸 것은 참으로 축하할 일이었다.
시은이는 차츰 입시나 내신 공부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공부는 억지로 하던 예전과는 달랐다. 대학에서 철학, 사회학, 심리학, 문학을 모두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짐짓 심각하게 한국에서는 아직 그러기 쉽지 않으니 미국을 가야 할 거라고 했다.
시은이는
“그럼 미국에 가면 되죠”하며
또 깔깔 웃었다.
- 박민근, <살아갈 희망이 살아갈 희망이다> https://c11.kr/az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