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화 자살시도를 했던 여고생의 독서치료 일기 #1

문학치료사 박민근이 들려주는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

by 생각속의집


왜 살아야 하는 거죠?


끔찍한 자살시도를 했던 18살 시은이는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어 했다. 아니 실은 그마저도 귀찮았다. 지금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 모든 고통을 끝내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라고 믿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시은이에게도 자살을 결심하게 된 마음의 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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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무렵까지만 해도 시은이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모범생이었다. 사업하는 아버지, 교수 어머니는 모두 최고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였다. 자신의 자식도 당연히 감당하리라 믿었던 부모는 시은이에게 어릴 적부터 초인적인 학습을 강요했다. 영어 유치원 시절부터 시은이는 공부기계처럼 살았다.


"다른 애들은 저보다 더 한 것도 잘 견뎌요. 저만 그걸 견디지 못한 거죠."

- 시은 양, 아닐 거예요. 누구라도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을 거예요. 사람들 앞에서 태연한 척하는 것뿐이에요.

"상관없어요. 어쨌든 걔네들은 붙었고, 전 떨어졌잖아요. 나만 패배자예요."


특목고 진학이 좌절되며 시은에게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병이 시작되었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시은이는 우울과 불안에 침식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시은이는 자주 “아무 재미도 없는 인생인데, 사람들은 왜 사는 거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고백했다.


“전 이미 패배자예요.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요.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어요.”

- 시은 양, 그 시험에 한 번 떨어진 일 때문에 자기 인생을 실패라고 단정 짓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인생은 한 번의 실패로 규정할 수 없는 존엄한 것이에요. 아무리 그 실패가 큰 것이라도 자기 인생에 낙인을 찍을 만한 것은 없어요.

“무슨 말로 위로하셔도 소용없어요. 패배자들에게 사람들은 그렇게 위로하죠. 하지만 패배는 결국 패배예요.”



시은이는 어릴 적부터 삶의 과정을 승리와 패배로 나누는 것에 길들여졌다. 그러니 자산이 그토록 원하던 특목고 진학에서 떨어진 좌절을 지우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시은이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말로 자주 좌절감을 표현했다. 일반고에 들어온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공부할 힘을 잃어버린 시은이는 그곳에서도 원하는 성적을 얻을 수 없었다. 시은이는 고등학교에 들어오며 자신을 패배자라고 규정하는 일을 수도 없이 겪었다. 그러는 사이 자책과 수치심, 자기혐오와 자기비판이 시은이의 마음을 찢고 또 찢었다.


삶의 의욕을 잃은 시은이는 도무지 상담에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늘 시큰둥하거나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불면으로 밤을 꼴딱 새운 다음 날은 상담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힘이 없다며 피곤해하는 시은이에게 함께 노래라도 몇 곡 들어보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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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은 양, 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 하나 같이 들어볼래요?

“오늘은 너무 힘들어요. 그런 거 하고 싶지 않아요.”

- 그래도 이야기하는 건 힘이 든다고 하니까, 노래라도 들어보자는 거예요.

“맘대로 하세요. 전 누워 있을래요.


나는 상담실 책상에 팔을 베고 엎드린 시은이에게 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들려주었다.


진짜.jpg 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가사


신해철의 노래는 시은이에게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기운 없던 시은이는 반응을 보이며 가끔 신해철의 영상을 쳐다보았다. 노래가 퍽 흥미로웠던 모양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조금 생기를 되찾은 표정을 지었다.


“노래가 마음에 들어요. 사람들이 저 사람 천재였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봐요. 하나 더 들어볼래요.”

- 시은 양도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저도 스무 살 때부터 늘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음 노래는 이번 것과는 좀 다를 거예요. 어쩌면 시은 양을 위한 노래일 것도 같아요.


다음으로 나는 시은이에게 신해철의 <길 위에서>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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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세상 사람들은 모든 걸 성공과 실패로 나누죠. 정말 지금 내 맘 같아요. 정말 이 사람 천재인가 봐요.”



그날 이후 시은이는 상담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큰 도화지에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문장과 낱말들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그러니까, 특목고에 가고 싶었던 게 진짜 나의 바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죠?”

-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짜 욕구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시은 양의 부모님이나 이 사회가 심어준 가짜 욕구일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럼 전 정말 뭘 원하는 걸까요?”

- 그건 차차 알아가야겠지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모르고 머리에 얼른 떠오른 욕심이나 욕망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기 쉬워요. 그래서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깨닫는 건 참 중요한 일이지요. 어쩌면 평생 가장 중요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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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정한 자기 욕구와 삶의 방향에 대해
탐색하는 독서치료의 시간을 이어갔다.



08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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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근, <살아갈 희망이 살아갈 희망이다> https://c11.kr/az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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