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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속의집 Jul 21. 2020

나의 ‘속마음’은 누가 알아줄까?

어린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낮 동안에도 수시로 아이가 궁금하고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친 몸으로 퇴근해 친정에 가면 어린아이가 드라마에서처럼 달려 나오며 "엄마!" 하고 매달리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는 엄마를 반기기는커녕 언제부턴가 "스티커!" 하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얼굴은 외면한 채 말입니다. 스티커를 사 가지 못하는 날이면 아이는 이내 토라져서 작은 일로도 투정을 부리거나 떼를 썼습니다. 스티커에 대한 끈질긴 집착은 오랫동안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외국에 출장을 갔다 오면서도 엄마는 스티커를 사 와야 했습니다. 아이는 왜 이렇게 스티커에만 집착했던 것일까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스티커를 달라는 아이의 투정은 바로 "엄마, 하루 종일 어디 갔다 왔어? 엄마가 날 두고 가버렸을까 봐 얼마나 불안했는지 알아?"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 내면의 그런 두려움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저 스티커가 엄마의 '사랑의 표시'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합니다. 어쩌면 스티커는 부재의 시간 동안 엄마가 자신을 기억했다는 증거품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을까?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도 그 욕구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다른 곳에 그 욕구를 전이시켜 거짓 욕망에 집착합니다. 배가 부르면서도, 비만으로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초콜릿이나 군것질을 달고 살거나, 술이나 게임 등에 집착하는 경우입니다. 그 순간 아무리 초콜릿을 먹지 말라고 한다거나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진정 원하는 것을 탐구하도록 도와주고 그것을 먼저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짓 욕망에 대한 강박증은 사라집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앞에서 말한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자신이 낮에 무엇을 하는지 직장에 데려가 보여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가 안 보이는 동안 불안하지 않고 '엄마가 지금쯤 어디 있겠지' 하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스티커는 물론 사랑도 열심히 '표현' 해주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와 함께 뒹굴며 놀아주고 꼭 안아주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때부터인가 아이는 그렇게 집착하던 스티커를 달라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내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날이면 새삼 삶이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칼 융 Carl Jung 은 "고독은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말 너머 말없이 침묵하는 말에도 귀 기울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서로의 욕구를 읽어주고 들어준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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