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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속의집 Oct 08. 2020

우리는 어떻게 '상실의 슬픔'을
대처할 수 있을까?

소중한 무언가를 갑자기 잃어버린 적은 없었나요?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꿈, 직업과 명예 등 삶의 크고 작은 것들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휘청거립니다. 그것은 우리를 분노와 우울함, 불안감 그리고 두려움에 빠뜨리는 위험한 불청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엄청난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언어는 병든 마음을 치료한다


신화에서 오세아누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언어는 병든 마음을 치료해주는 의사"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아파하고 그 슬픔을 언어(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 상실을 견디며 살아갈 힘을 얻게 합니다. 따라서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 가슴에 갇혀 몰래 앓는 신음소리는 아무리 작아도 결국 심장을 산산조각 내기에 "슬픔에 언어를 주어라"라고 말합니다. 워즈워즈도 "내게 찾아온 건 오직 슬픈 생각뿐 / 때맞춰 그 슬픔을 말하니 그 생각 사라지고 / 나는 다시 건겅해졌네." <영혼 불명송 : Ode , Intimations of Immortality)라며 슬픔의 언어적 표현과 치료적 체험의 연관성을 노래합니다.

셰익스피어(영국의 극작가, 1564-1616)


우리는 보통 슬픔과 고통을 '말'로 해소합니다. 하지만 '글'로 표현할 경우 그것들을 내 밖의 세상으로 해방시킬 뿐 아니라 동시에 그들이 안전히 거할 언어의 집을 마련해줍니다. 그럼으로써 언제든 다시 방문하고 찾아갈 수 있게 됩니다. 성찰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지요. 




슬프면 실컷 울어야 한다.


<섀도우랜드Shadowlands>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로 잘 알려진 영문학자이자 평신도 신학자 C.S. 루이스와 아내 조이 그레샴과의 사랑과 사별 이야기를 그린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입니다. 소울메이트였던 아내가 암으로 죽자 루이스는 큰 고통에 빠집니다. 평소에 사람들에게 "고통은 신이 귀머거리 인간에게 말하는 확성기"라고 당당하게 연설하던 그였습니다. 그의 연설은 세계의 많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살아갈 새로운 힘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당당한 그가 "엄마가 보고 싶어요"라고 울먹이는 어린 아들 곁에서 "나도 그래" 하며 함께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몸집이 커다란 어른이 어린아이 곁에서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장면은 슬픔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 <섀도우 랜드>의 한 장면
영화 <섀도우 랜드>의 한 장면
영화 <섀도우 랜드>의 한 장면


그는 자신 안의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함께 울고 있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 앞에 담대할 것 같은 어른도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고 홀로 남겨지는 두려움과 외로움도 느끼는 것입니다. 다 큰 어른의 내면에도 숨겨진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린아이를 달래주어야 합니다. 흔히 부모가 돌아가신 아이들에게 울지 말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울면 바보야. 강해져야 해. 네가 울면 하늘에 계신 엄마가 슬퍼하실 거야.

하지만 우는 것은 바보가 아닙니다. 울어야 합니다. 실컷 슬퍼하고 그리워해도 괜찮습니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에세이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https://c11.kr/bb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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