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자존감 열풍이 불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존감은 무엇일까? 쉽게 말해 누구의 평가나 기대에 의지하지 않고 내가 나를 존중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존감의 원천이 외부가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뻗어 나온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 이슈에 공감과 지지를 보냈을까? 어쩌면 삶의 현장에서 자존감이 무너졌던 상처가 그만큼 많았다는 반증은 아닐까.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할 때, 흔히 겪는 문제는 나를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가 숨어버린 삶. 스스로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그을린 의식이 사사건건 나를 왜소하게 만든다. 이런 자존감 결핍은 대인관계에서 그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가족이나 친구, 심지어 연인 사이처럼 친밀한 관계라도 나를 드러내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지인 중에는 20년 이상 만나온 남자 친구에게 “그건 싫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가장 가까운 사이에도 나의 감정이나 생각도 말하지 못한다면, 나 스스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태도는 직장생활에서 더 도드라지기도 한다. 상사나 동료의 요구나 제안에 거절하지 못하고 애써 받아들인다. 조금은 부담이 되고 무리가 따르더라도 그 편이 차라리 편하다. 그런데 이런 태도, 정말 괜찮은 걸까? 물론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나를 잃어버리는 이유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태도가 습관이 된다는 말도 있으니까.
심리학자 칼 융은 40대를 ‘제2의 사춘기’라고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자기탐색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이 여정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헤세의 말처럼 자기 자신에게 가는 길은 좀 더 수월해진다.
바로 이런 자기탐색의 여정에서 헤르만 헤세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자, 그의 대표작 《데미안》은 자기결핍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치유의 언어였다. 그는 우울증을 겪을 정도로 심한 자기결핍을 경험했고, 이를 칼 융과의 만남과 그의 제자로부터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조금씩 치유할 수 있었다. 또한 그림과 산책, 여행과 글쓰기는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데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그의 작품들 속에는 이러한 자기발견의 여정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는 진정 자아탐구의 대가였다.
나를 찾아가는 데 동행자가 되어준 헤세의 문장들, 짧지만 강렬한 그의 문장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헤세의 잠언집 《내가 되어가는 순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헤세의 말은 단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치유적이었다. 잠언집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헤세의 문장은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청춘기록>에서 주인공 혜준(박보검 분)은 집안의 반대와 주변의 무관심에도 배우라는 자기만의 길을 꿋꿋이 지켜나간다. 무명 배우에서 라이징 스타로 우뚝 선 그에게 주변에서는 더 큰 성공을 위한 제안을 시작한다. 그러자 그는 제동을 걸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 이름 없을 때도 나였어.
스타가 되었든 안 되었든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며 소신을 굳히지 않는다. 자존감은 이렇게 자기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아닐까.
주변을 돌아보면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존재의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믿는다. 고민 없이 자기만의 길은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만약 헤세가 살아 있다면 자기만의 길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도 해주었을 것 같다.
“당신은, 언제 당신이 되어가는 순간을 만났나요?”
어쩌면 이 책이 ‘내가 되어가는 여정’에 동행자가 되어줄지 모른다. 아니 그리 되기를 소망한다. 온전히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꿋꿋이 걸어가는 당신에게 동행자 헤세가 늘 함께하기를.
- <내가 되어가는 순간> 닫는 말 중에서
헤르만 헤세 잠언집, <내가 되어가는 순간> https://c11.kr/kc3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