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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속의집 May 19. 2020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는 ‘고통’을 말해야만 한다.

나는 내 상처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팠지만, 아팠다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내 상처가 부끄럽고 싫었다.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 자존심을 깎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 내가 처음 상처를 고백했던 사람은 내 스승 마광수다. 그는 내 상처를 진지하게 듣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내가 그에게 특별한 심리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오랜 후에야 깨달았다.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우리가 함께한 날들을 떠올리며 그가 건넨 치유와 위안에 또다시 감동했다. 나는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인생은 불완전한 것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내게도 시련이 있었다. 어릴 적 옥상에서 떨어져 사경을 헤맨 일, 그 때문에 몇 년이나 심한 불안장애와 함묵증으로 고통스러웠던 일, 그리고 목숨 같았던 미술을 포기하며 십 대 시절 어둠 속에서 보낸 일. 나는 그 일들을 마광수에게 솔직히 고백했다. 그는 내 아픔을 편안하고 가장 받아먹기 좋은 말로 풀어주었다. 마치 어미 새가 삼킨 먹이를 먹기 좋은 반죽으로 녹여 내어놓듯이. 



나의 데미안, 마광수


그는 나의 소중한 치유자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섬세한 사람,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사람, 인간의 감정에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그의 육성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목소리가 특히 한 사람을 향할 때, 더할 나위 없이 울림이 있다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서른 무렵, 다니던 학교에서 큰일을 겪으며 나의 마음은 지옥에서 지냈다. 목숨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그것은 마광수와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상처를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었다. 마광수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인이 가장 혐오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 까닭에 당시 내가 왜 그토록 우울했고, 또 심하게 무너졌는지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솔직할 수가 없었다.



10년 가까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그의 제자였고, 그 때문에 마음의 병을 앓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와의 일로 죽음까지 기도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언젠가는 책에서 밝히고 싶다고 하자, 사람들은 극구 말렸다. 나도 역시 주저했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머리와 꼬리는 자른 채, 서른 즈음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상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일 역시 고통스러웠다.




상처를 건너 희망으로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는 고통을 말해야만 한다. 그것은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한 생존의 선택이다. 나는 상처 받은 나를 흙, 책, 사랑으로 되살렸다. 그 시간이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이제야 나는 온전해질 수 있었다. 이런 나의 고통과 치유의 시간을 여기에서 솔직하게 고백했다.



내 치유의 중심에는 언제나 책이, 문학이 있었다. 깊은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전에 했던 책 읽기와 글쓰기와는 사뭇 다른 일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수용하며, 좋은 삶을 탐색하는 일이었다. 오직 매일 다시 깨어나고, 다시 자신을 돌보고, 자기 삶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문학치료사가 되었다.


15년째 나는 9시에 잠들어 새벽 3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 새벽 시간은 치유의 근육들이 단단해지는 시간이다. 그러는 사이, 삶을 치유하는 책들을 알게 되었고, 문학의 거대한 치유 능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상처에 바르는 연고와 같은 책과 문학이 존재한다. 나는 이제 제대로 책을 읽고, 제대로 글을 쓸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문학치료사가 되었다.          

                                 

아픔의 순간이든 기쁨의 순간이든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삶이 비록 비루한 것들 속에서 방황할지언정 언제나 삶을 희망한다. 당신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아니 잘 견뎌왔다. 그것이 살아갈 힘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힘들고 아픈 나를 위한 상처회복 에세이 <살아낸 시간이 살아갈 희망이다> https://c11.kr/94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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