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처음 비에이에서 우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호스트가 내게 말했다.
"키라야, 언제든지 네가 오고 싶을 때 이곳에 와도 좋아."
그때는 몰랐다. 그 한마디가 정말로 일본에 우리집을 만들어줄 줄이야.
다시 우프 시작
한국으로 돌아와 귤밭 안에 책방을 열고 바쁜 일상을 보내다 어느 날, 코로나가 왔다.
몇 년간 그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잊지 않았다. 비에이 호스트가 내게 했던, '우린 가족이잖아'라는 말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다 하우스노마드의 삶을 살기로 했다.
집이라는 공간을 장소에 규정하지 않고, 언제든 우리 집처럼 지구 위의 그곳을 오가며 살아보자고.
그렇게 나는 다시 비에이에 갔다.
이번엔 일본 우프 홈페이지에 등록하지 않았다. 호스트에게 직접 연락했다.
"6월에 비에이에 가고 싶은데, 가도 될까요?"
호스트는 너무 좋아하며, 키라라면 언제나 환영이라고 했다.
그렇게 일정을 조율하고, 다시 일본 우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기는 키라네 집
작년 6월엔 우프들을 위한 비에이의 오래된 집을 수리했다.
벽지를 뜯어내고, 새 벽지를 바르고, 페인트칠도 했다. 손에 페인트가 묻고, 어떤 재료를 쓰면 더 좋을까 매일 고민도 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마음은 꽤 즐거웠다.
호스트가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건 키라네 집 2층에 있을꺼야"
키라네 집?
기분이 참 묘했다. 키라네 집이래!
매년 6월, 나는 일본 집에 간다
이제 나는 매년 6월이면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에 있는 우리 집에 간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오곤 한다.
6월이면 비에이는 여름을 준비한다. 풀들이 제법 자라서 잡초를 뽑아야 하고, 텃밭에 모종도 꽃도 심기 시작한다. 정말 해야할 일들이 가득이다.
비에이에서 나의 하루
새벽 3시 반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한국에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 조차 너무 힘이 드는데 이곳에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난다.
그건 바로, 벌써 날이 밝았기 때문이다.(홋카이도는 북쪽에 위치해 있다보니 날이 일찍 밝아진다.)
아침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쓴다.
7시, 민박집 손님들 식사 준비를 돕는다.
7시 반, 우리 가족들도 모두 모여 아침을 먹는다.
8시 정각, 다들 NHK 아침 드라마에 쏙 빠진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손님들을 챙기고, 식탁을 치운다. 좀 쉬다가 집 앞 텃밭에 간다. 채소 모종을 심거나 꽃을 심기도 하고, 잡초를 뽑기도 한다.
12시 땡, 점심 시간이면 소면이나 우동 같은 면으로 가족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날이 너무 더우면 3시 이후에 다시 밭에 간다.
점점 더 풍요로워지는 우프 생활
가끔 가족들과 점심을 먹으러 밖에 나가기도 한다. 이때는 내가 외국인이 아닌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도 가족들과 마음이 통하면 오후에 온천을 가기도 하고, 쉬는 날에 가족들과 다른 도시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도 한다.
나의 우프 생활이 점점 더 풍요로워지고 있다.
작년 여름, 사케 양조장도 2곳이나 갔고,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 마을로 낚시도 갔다. 호스트의 친구들도 하나둘 더 알아가기 시작했다. 함께 바비큐를 해 먹고, 동네 현지인들이 가는 작은 이자카야에서 외식도 함께 하면서.
왜 비에이인가
어느 날, 집 앞 마당에서 바비큐를 먹는데 호스트 친구가 내게 물었다.
키라야, 매년 비에이에
이렇게 오는 이유가 뭐야?
음... 아... 글쎄...
그건 아마 이 곳에 있는 사람, 장소, 자연 때문인 거 같아.
비에이 이 집에 함께 있는 이 사람들과 이 집, 그리고 비에이의 초록초록한 자연이 나를 자꾸 이곳에 오게 만들거든.
그렇게 내게 지구 위의 우리집, 비에이가 생겼다.
첫 우프에서 "언제든지 와도 좋아"라던 그 말이 진짜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매년 6월 홋카이도 우리집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