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와 치앙마이에서 여러 번의 한 달 살이,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모로코 사하라 사막까지 다녀오고 나니 여행하는 재미가 없어졌다. 아니 뻔한 여행이 싫어졌다.
이제 정말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다 발견한 게 호주의 워킹홀리데이였다. 그런데 그건 나이 제한에 딱 걸렸다. 그러다 우프를 발견했다. "우프?" 프랑스, 독일, 영국의 우프 경험기를 읽게 되었다. 그러다 일본에도 우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이 한국과 가깝기도 했고, 어디선가 일본 우프가 안전하다는 문장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럼 여자 혼자 가도 되겠다.'
여행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늘 "안전"이다.
그런데 이 일본이란 나라가 한국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몹시 애매한 나라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이지만 가까이 하기엔 뭔가 마음이 불편한 나라. 그들의 기술력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인들에게 일본과의 역사는 가슴 아픈 대목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낯선 곳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내가 책에서 읽은 일본은 나쁜 나라였고, 없는 나라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우연히 간 일본 여행에서 그들이 만든 제품과 배려심 깊은 서비스를 접하면서 내가 가진 편견들이 깨어지고 있었다.
역시 직접 경험한 것과 말로만 전해 들은 건 다른 거다.
내가 서울에 살 때 나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가 일본 영화, 드라마와 소설을 보는 거였다. 특히 음식과 관련된 영화, 드라마, 소설.
그것들을 통해 내 가치관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좁은 대한민국에 살려면 무조건 남을 이겨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가치관에서 남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특히 홋카이도는 내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 드라마의 배경이었다.
도시에서 충분히 살았기에 일본 드라마와 영화에서 봤던 홋카이도는 왠지 마음에 더 끌렸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영화 <해피해피 브레드>의 배경이 도요우라였고, 드라마 <자상한 시간>의 배경이 비에이였다.
<해피해피 브레드>에서 시골에서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젊은 부부가 자신의 삶에 만족해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평범한 일상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봤다.
정말 수십 번은 본 영화와 드라마였다.
도요우라에서는 드라마 세트장은 가지 못하고 마을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충분히 드라마가 떠오를 만큼 마음이 푸근해지는 곳이었다.
일본 우프를 가기로 결심했던 시기가 제주에 산 지 1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하고, 제주 할머니들과 귤을 따러 다닌 지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 이제 진짜 제주에 살아봐야겠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을 하지?'
그 힌트를 일본의 시골에서 얻고 싶었다.
제주에 버려진 귤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이용해 뭔가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어볼까, 아니면 귤이 일본에서 왔다는데 일본은 제주보다 더 많은 귤에 관련된 다양한 상품과 색다른 서비스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홋카이도의 지도를 클릭하고 있었다.
결국 일본 우프로 홋카이도에 다녀온 후 나는 우연히 귤밭 안에 오래된 돌집을 얻게 되었고 그곳에 음식 이야기 책방을 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방의 두 번째 카테고리에 일본에서 내가 쓰고 경험했던 부엌 안의 작은 소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막상 일본 우프를 가서 생활하다 보니 홋카이도가 제주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제주는 치유의 섬이자 깨끗한 공기와 자연, 신선한 먹거리가 있는 곳이다. 홋카이도가 일본 사람들에게 그런 섬이다.
나는 일본 우프를 통해 단순히 일본을 경험한 게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한 집에 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아닌 그 곳에 사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일본 우프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시부야 스타벅스 창가에서 쇼핑백을 덮은 투명 비옷을 보며 그들의 배려와 디테일에 대한 감동하고, 일본드라마 <자상한 시간>을 수십 번 보며 꿈꿔왔던 삶, 그리고 제주에서의 1년.
모든 것이 결국 나를 홋카이도로 이끌었다.
그렇게 일본 우프는 내게 소중한 삶의 조각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