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물'에 대한 일이 생기기 전까지 음식에서 물이 중요하다는 말을 나는 책에서 글로 배웠다. 한국에 살 때는 사실 음식에서 물의 중요성을 알 리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은 물 걱정 없이 마실 수 있는 곳이니까. 심지어 내가 사는 제주는 삼다수가 유명한 곳 아닌가.
요즘은 발리에 갈 때마다 한국 음식을 챙겨가는 양이 점점 늘어간다. 맨날 나시고랭(인도네시아 전통음식)만 먹을 수 없으니까.... 역시 더운 나라에서는 입맛 없을 때 한국의 쫄면이 최고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가져간 쫄면을 만들어본다. 그런데 맛이 이상하다. 뭐지? 이 맛이 아닌데... 이건 내가 한국에서 먹던 그 쫄면 맛이 아닌데… 이때까지만 해도 내 요리실력이 부족해서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신라면을 끓여본다. 신라면을 끓이는데 맛이 왜 이래??? 이거 한국에서 가져온 신라면인데... 뭐가 문제이지? 신라면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에서 가져간 국수를 삶는데도 국수가 뭔가 이상하다. 분명 똑같은 국수인데 면발이 왜 이러냐?
어느 날,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 관련 유튜브를 보는데 거기서 물이 엄청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 그냥 다 똑같은 물 아니야??? 굳이 저렇게 필터까지 설치해가며 정수된 물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 그때, 갑자기 쫄면과 신라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발리의 신라면이 맛없던 게 '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발리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 발리에 오래 살았던 한국인 G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본인도 발리에 살 때 물 때문에 너무 고생했다면서, 샤워하는 물뿐 아니라, 음식에 사용하는 물까지, 집 수도 전체에 산소통 같은 정수기 필터를 설치했다고 했다.
한국인 G와 전화를 끊고, 제주 돼지고기가 유독 맛있는 이유가 '물' 때문이란 이야기가 떠올랐다. 육지 돼지랑 제주 돼지는 종자가 같은데 제주 물이 좋아서 제주 돼지고기가 훨씬 더 맛있는 거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게 기억났다. 물은 음식의 맛을 달리 할 만큼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안전하고 맛있는 물을 먹고 살고 있기 때문에 물이 음식에 끼치는 영향을 모른다. 발리에서 쫄면과 신라면 덕분에 음식에서 물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너무 흔해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물이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였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문득, 과거 홋카이도에서 라멘집을 운영하던 일본인 M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M상은 "똑같은 프랜차이즈 라멘집인데 지역의 물 때문에 지점마다 라멘맛이 다르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는 단순히 '그렇구나' 하고 넘겼었는데,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주변에 너무 흔하고 익숙하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난 또 이렇게 '물'이 음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일상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