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에는 나만 사는 게 아니었어

초가집 이사오던 첫날, 나는 제주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집주변에 막걸리를 뿌렸다. 미신인걸 알면서도 이들의 방식을 따라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막걸리를 집주변에 뿌리면서 내가 들었던 생각은 '이게 이 집에 인사를 하는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초가집아! 이번에 새로 이사온 키라야. 잘 부탁해! 뭐 이런 인사? 나는 이 초가집에게 신고식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초가집에서 첫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뭔가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자꾸 신경이 쓰여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낯설고 무서운, 시골 밤이 어색한데 말이다. 결국 나는 일어나 방안의 불을 켰다. 머리맡에 한뼘정도 크기의 지네가 지나가고 있는 거다. 그날 밤 너무 무서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마저 방 천장에서 수십 마리의 지네가 떨어지는 꿈을 꿨다. 초가집에서 첫날 밤은 지네와 첫 만남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아침에 금잔디가 깔린 앞마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니, 이 집에 나보다 벌레들이 먼저 살고 있었잖아. 벌레들 입장에서는 내가 침입자일수도 있지 않을까? 벌레들도 나를 보며 얼마나 놀랬겠어? 그렇다면 벌레들에게 그렇게 얘길해야겠다. 안녕, 반가워! 이번에 이 집에 살게된 키라라고 해. 같은 집에 살게 됐으니 앞으로 잘 지내보자. 그런데 난 니네가 무섭거든, 그러니 우리 서로 마주치지는 말자고 말이다.


이 시골집에는 나만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래된 초가집에는 지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벌레들이 자주 등장했다. 그렇다, 시골집에 산다는 건 벌레와 동거한다는 것. 그렇게 또 한지붕 아래 벌레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집안에 벌레들이 있다면, 집 밖에는 길고양이들이 있었다. 어느날부터 집 주변에 고양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고양이들인줄 알았다. 그러다 요녀석들이 길고양이인 것을 알고 나는 매일 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다. 어느날, 길고양이는 쥐를 잡아왔다. 아니, 이게 뭐야? 내가 처음 지네를 만났던 그날처럼 나는 무섭다고 난리가 났다. 알고 보니 오래된 초가집 주변의 쥐를 고양이들이 잡아 우리집을 지켜주고 있었던 거였다. 벌레들과는 서로 마주치지 말자는 했다면, 길고양이들과는 서로 도우며 사는 관계가 된 셈이다.


이렇게 나는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기 시작했다. 사실 육지에 살았을 때는 공간이 주는 의미도 모르고 살았었다. 그냥 깨끗하고 편리하고 안전하기만 하면 됐다. 내게 집은 그저 잠만 자고 나가는 영혼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제주에 살면서 집이 달리 보였다. 사람들은 집을 마치 인간만의 공간인 것처럼 생각한다. 내 집, 내 공간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집이란 건 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존재들과 함께 나누는 공간이었다. 벌레들, 길고양이들, 그리고 나.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작은 초가집에 5년을 살았다. 아니, 젊은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집에 살 생각을 했냐고 가끔 묻는 사람들이 있다. 집이 너무 낡아 보여서 하는 말이다. 나는 이 아늑하고 오래된 초가집이 특별한 이유없이 그냥 좋았다. 여전히 벌레도 많고, 지네도 무섭다. 하지만 내게 이 집에 머물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이 초가집에게 매일 말을 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처음 이사오던 날 집주변에 뿌렸던 막걸리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었다. 그건 집에게만 건네는 인사가 아니라 이 공간에 이미 살고 있던 모든 존재들에게 건네는 인사였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자는 약속이었다.


그런 게 바로 제주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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