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까' 미리 결정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란 사람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일단 저지르는 사람이니, 그런 결정을 하고 왔을 리가 없다.
J언니 집을 지키며 제주에 산 지 3개월이 되고 나니, '나도 제주에 한 번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무엇을 하며 살지? 고민하게 됐다. 물론 내가 육지에서 하던 직업을 해보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일을 계속 할 거면 그냥 육지에서 살지 이곳 제주까지 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육지에서 특목고 입시를 강의했던 화학강사 출신의 학원 경영자였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처럼 대한민국 사교육 최전선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 당시 내가 느끼는 제주는 똑같은 대한민국이지만 언어가 다르고 문화도 다른 한국 속 외국 같은 곳이었다. 일단 이곳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겪어보자. 1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번 살펴보고 그때 무엇을 할지 결정하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나는 집주인 삼춘에게 부탁했다.
"혹시 귤 따러 가실 때 귤 따기 자리 생기면 저 좀 끼워주세요"라고.
사실 나는 귤 따기 멤버에 들어가기엔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귤 따기 초보에다 제주에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젊은 '육짓것'이었다. 그런데 주인 삼춘이 나를 예쁘게 봐주셨는지 나를 딸처럼 데리고 귤을 따러 다니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귤가방을 챙긴다. 귤가방 안에는 귤가위, 마스크, 귤모자, 장갑, 팔토시, 앞치마, 혹시 모를 비옷까지 들어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서 위미 우체국 앞으로 간다. 잠시 후 반장 이모의 귤트럭이 도착한다. 제주 삼춘들과 함께 트럭에 껴 타고 귤밭으로 향한다. 하루가 시작될 때쯤이면 두 명씩 짝을 지어 귤을 따기 시작한다. 참고로 귤밭에는 귤을 따는 사람, 따놓은 귤을 나르는 사람, 귤을 선별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속해있던 귤 따는 팀은 제주 토박이 할머니들로만 구성된 최정예 멤버들이었다. 평생 귤농사를 지어왔던 귤 따기 전문가들이다. 아마 귤 따기 대회가 있다면 세계 최고가 아닐까 싶은 전문가들. 그런 귤 따기 전문가들 사이에 어느 날 육지에서 온 젊은 여자아이가 나타난 거다.
삼춘들은 신기해하면서 약간 경계하는 듯했다.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 "양~(저기)!"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내 귀에는 "야!"로 들렸다. 나 이름 있는데, 왜 자꾸 '야'라고 부르는 거지? 그래서 어떤 날은 목구멍까지 "저 이름 있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주 삼춘들 눈에 내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느 날부터 내 이름을 불러주셨고, 삼춘들은 이것저것 챙겨주시기 시작했다. 집에 가는 길에 차로 데려다 드리면, 다음날 바다에서 직접 캔 돌미역을 빨아서 먹기 좋게 주시고, 또 어떤 분은 오일장에 가서 작업 바지를 내 것까지 사서 몰래 챙겨다 주시고, 직접 기른 콩이며, 밑반찬까지 챙겨주셨다.
귤 따는 건 생각보다 그리 힘들진 않았다(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귤가위로 꼭지를 귤의 별 모양이 있는 곳까지 바짝 자르면 된다. 꼭지가 나와 있으면 다른 귤에 찔려 상처가 되어 썩게 되니까. 그리고 내가 손이 꽤 빠른 편이라서 삼춘들과 함께 귤 따는 데 피해를 주진 않을 정도는 됐다.
하지만 귤 따는 것보다 힘든 게 있었으니 그건 '언어'였다. 외계어 같았던 제주사투리. 특히 함께 귤을 땄던 제주 삼춘들은 제주 토박이들로 제주사투리의 끝판왕이었다. 처음에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귤만 땄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내게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이어폰 끼고 팟캐스트를 듣는 게 나을 거라 했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말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삼춘들과 어울리려면 그들의 언어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삼춘들이 얘기할 때 들리는 모르는 단어들을 삼춘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고랐어~'가 뭐예요?
'동드래, 서드래' 그건 뭐예요?
'영장'은 뭔데요?
삼춘들은 손녀딸에게 말을 가르쳐주듯 친절하게 제주사투리를 하나씩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귤 따러 다닌 1년 동안, 삼춘들 덕분에 제주사투리를 빨리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알아들어 통역은 가능한 데 말하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리스닝은 되는데, 스피킹이 안되는 상황이랄까?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이 하는 한국말이 여전히 어색한 상태 말이다.
내가 귤 따면서 첫 번째로 배운 게 제주사투리였다면, 두 번째로 배운 건 '찐찐 제주음식'이었다. 절대 제주 향토음식점에서는 돈주고도 사먹을 수 없고, 맛볼 수도 없는 제주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주는 진짜 제주음식 말이다.
귤을 따면 세 번의 쉬는 시간이 있다. 오전 8시쯤 오전 간식, 오후 12시에 점심, 오후 3시쯤 오후 간식 시간이 있다. 어느 날 오전 간식 시간, 해녀 삼춘이 직접 잡아온 성게로 끓인 성게 칼국수를 끓여주셨다. 귤밭 한가운데서 먹는 성게 칼국수라니.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또 어떤 날은 집에서 직접 담가오신 살얼음 동동 좁쌀 쉰다리를 꺼내기도 했다. 쉰밥과 설탕을 이용해 유산균 가득한 달달한 술을 만든거다. 시장에서 파는 쉰다리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내가 특별히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오후 12시에 먹는 점심 시간이었다. 직접 싸온 도시락을 다 모여 함께 밥을 먹는다. 이때 삼춘들이 도시락 반찬을 쫘악 하고 펼치는 순간, 삼춘들 도시락 반찬에 제주의 사계절이 담겨 있었다. 고사리철에는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고사리 반찬을 싸오고, 양애철에는 양애무침, 호박잎철에는 호박잎국을 만들어온다. 그렇게 나는 제철 재료로 만든 할머니들의 도시락으로 제주의 계절을 먹고, 진짜 제주의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영장'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보통 육지에서는 '초상났어'라는 말을 쓰는데, 제주에서는 '영장났어'라고 말한다. 삼춘들과 귤을 따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단어가 '영장났어'였다. 제주에서는 마을 사람이 죽으면 가족이 아닌데도 가족처럼 모두 나서서 장례 준비를 돕는다. 다들 약속이나 한듯 마을회관에 모여 음식을 만들고, 장례일을 돕는다. 이게 바로 제주만의 문화이다. 가족도 아닌데 가족처럼. 이들에게 공동체란 그냥 말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귤밭에서 싸우다가도 도시락을 함께 나눠 먹고, 누군가 아프면 걱정하고, 누군가 돌아가시면 함께 슬퍼하는 것. 그게 제주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었다.
내가 제주에서 1년 동안 귤 따러 다녔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게 대단하다고 한다. 사실 나도 내가 1년이나 귤 따러 다닐지는 몰랐지만, 대체 뭐가 대단한 건진 의문스럽다.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이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내가 택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건 언어였고, 그들의 음식이었고, 그들의 문화였다.
예전에 발리에 살아보겠다고 갔는데 그곳에 정착하지 못했던 이유를 제주에 살면서 알게 되었다. 난 영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를 배웠어야 했고, 그들의 음식, 그들의 문화를 배워야 했다. 그런데 나는 영어를 사용했고, 그들의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 제주에서처럼 살았더라면 발리에서의 삶이 훨씬 풍요로웠을텐데 말이다.
난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신이 나를 일부러 제주에 던져놓은 게 아닌지. '키라야, 너 안되겠다. 제주에 가서 좀 배우고 와야할것 같아.' 발리에서 적응 못했던 이유를 제주에서 직접 경험하고 찾으라고 말이다.